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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 정문연 25주년 기념 학술대회
학술대회 : 정문연 25주년 기념 학술대회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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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학문적 접근...'노무현 화법' 분석 눈길

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 25주년을 맞아 6월 26일과 27일 양일간 큰 학술대회를 열었다.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적 정체성'이란 대 주제를 6개 패널로 쪼개 1패널에서는  '한국의 근대문화 수용과 형성'을 다루고, 2패널에서는 '민족주의와 민족정체성'을 논하며, 3패널에서는 '한국 사회변화와 현대문화'를 다루는 식으로 총 25편의 발표와 약정토론이 있었다.

이번에 디자인된 주제들은 한국의 사회, 문화, 정치가 근대적 시스템을 형성하는 과정을 먼저 보고, 그런 일국적 시스템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지형 속에서 어떻게 재배치돼야 하는가를 염두에 둔 듯 보였다. 여기엔 세계화를 등에 업고 범람하는 잡종문화에 시달리는 전통의 논리를 어떻게 지켜내는냐 라는 '정문연'의 학문적 위기감과 다짐이 실려있었다.

인접학문 젊은 학자들의 대화

대회 참가자 50여명 가운데 정문연 학자들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눈길을 끄는 논문에서 정문연의 활약은 3할에 그친 감이 있었다. 1패널은 역사학자들의 참신한 소재와 관점이 돋보였다. 박현모 정문연 연구교수(정치사상)는 천주교를 구제하려 한 황사영의 '백서'에 대해 기존 역사학자들이 "숭고한 좌절"로 바라봤던 것을, "무분별한 대응으로 천주교 탄압의 논리를 제공했다"라며 정치학적 관점에서 읽어내 논란을 던졌다.

정성희 정문연 책임연구원(역사학)은 고종의 대한제국이 서양달력을 들여와 그곳에 국가이념을 조각해 넣었고, 이로써 천황의 신민을 조직하려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두 교수는 역사학에 정치학의 관점을 도입하고 역사학의 사료로 과학의 영역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박 교수에게 질문을 던지는 허동현 경희대 교수의 논리도 일리가 있었다. 허 교수는 정치학적 관점이라 새로울 줄 알았는데, "식민주의 사가의 당파성론과 무슨 차이가 있는 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시했다. 정 연구원의 경우는 실증적 작업은 됐지만 고종의 국가전략이 서양의 모방이라는 근본적인 맥락을 언급하지 않은 채, 그것의 기획적 측면만 부각시킨 점은 아쉬웠다.

2패널에서도 눈에 띄는 논문들이 있었다. 최종렬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사회학)의 발표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이론화모델을 선보였는데, 정치경제학 이론과 정신분석학적 담론이론을 융합시켜서 양자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주체구성의 역사를 구조화하는 작업이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와 한도현 정문연 교수(사회학)는 세계화 시대의 민족 정체성을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했는데, 신 교수는 월러스타인 류의 세계체제론이 20세기 모델인데도 아직도 이것을 문제틀로 삼는 사회학의 대안적 모델에 대한 대책부재를 꼬집었으며, 한 교수는 이른바 '이중국적'이라는 이슈를 양심적이지 못한 일부 정치인, 교수들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글로벌 시대가 진행될수록 보편적으로 나타나게될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걸 강하게 주장하면서 주요하게 고려할 카테고리로 인종, 종교, 성별, 연령, 신념에 의한 차별 금지를 내놓았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노무현 화법을 고도의 정치성이 깔린 것으로 분석한 정윤재 정문연 교수(정치학)의 글이었다. 정 교수는 노 대통령의 직설과 유머가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화법을 대중정치 시대에 맞게 바꿔나가려는 시도로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선 전재호 서강대 사회과학원 연구교수(정치학)는 "노무현을 논하면서 언론의 노무현 깎아내리기를 언급하지 않고 있어 이상하다"라고 지적하며 추가답변을 요구하기도 했다.

초반 문제의식 끝까지 살리진 못해

이에 비해 제목만 그럴 듯 할뿐, 내용이 별로 없는 글도 많았다. 이호영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주류의 재생산과 주류문화의 위기'는 주류라는 말에 상으하는 인간집단, 기능, 정치적 파워 등에 대한 분석없이 부르디외의 권력장 이론만 늘어놓는 용두사미의 전형을 보여줬고, 다섯 번째 패널 '20세기 전통예술의 변화'에서 발표된 일련의 논문들은 근대라는 문제틀을 무기력하게 덧씌운 지루한 글들이었다.

가령 '신상옥 영화에 나타난 전통'을 살핀 김호영 정문연 교수(영화학)는 전통을 찾아내려는 노력보다는 그것을 쉽게 부정하고, 형식미학적 미장센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소극적 태도가 아쉬웠고, 196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본받자는 계몽적 취지의 발언으로 글을 마감해 혼란감을 줬고, 약정 토론자인 이성미 정문연 교수(미술사)는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평범하고 표피적인 질문을 던져 준비의 미비함을 느끼게 했다.

이에 비해 최종렬 연구원에 대한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의 논평은 발표문의 실험적 성격을 충분히 평가하면서 놓친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발표문의 설득력을 오히려 높여줬다. 김 교수는 라캉적인 정신분석학 담론에 정치경제학 범주들을 도입하는 시도가 "개인주체적이고 역사회피적인 정신분석적 논의에 충분한 자극이 되지만 정신분석학 자체를 역사적 범주로 승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부분이며, 이론적 모형이 앞서다 보니 다섯가지 주체유형과 시기구분이 특수사인지 보편사인지 충분히 성찰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1패널은 역사학자, 2패널은 사회학자, 3패널은 정치학자, 4패널은 인류학자, 5패널은 예술관계 학자, 6패널은 철학자 등 분과별로 구성된 이번 대회는 전체적으로 참신한 소재를 발굴하거나 다른 영역에 과감히 도전하는 모습은 돋보였지만, 개원 25주년을 자리매김할 성찰의 담론의 부족한 듯 느껴졌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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