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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지식 없이 문학 강의하기
배경지식 없이 문학 강의하기
  • 교수신문
  • 승인 2018.12.0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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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오지 않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대학에서 전공과 교양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질문이자 강의실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책을 읽어오지 않는 혹은 배경지식이 없는 학생을 대상으로도 강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문학 강의를 할 때는 이른바 스토리부터 등장인물, 시간적 공간적 배경 등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작품의 분석과 토론이 가능한데 강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기 일쑤다.

고교 교실에서 문학작품 읽기가 오락거리였고 남학생들은 연애편지 말미에 ‘당신의 히스클리프로부터’라고 쓰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세계문학전집의 인기가 시들해진 지 오래여서인지 한 강의실에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어문계열 전공의 문학 강의 시간에도 원서 대신 번역서로 강독이 시작된 지 오래다. 교양강의는 전공보다 쉬어야 하고 손쉽게 학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학생들에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읽어오라고 하기는 괜히 미안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많이 이루어지는 강의방식 중에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과 ‘사전 학습(pre-class)’이라는 것이 있다. 학생들은 미리 제공되는 강의 자료나 동영상을 통해 해당 단원과 관련된 공부를 강의실 밖에서 하고 강의실에서는 토론이나 질의응답, 문제 해결 등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문학 강의 시간에도 ‘사전 학습’ 방식을 도입해본 적이 있다. 책의 내용을 대략 소개해주고 주요 주제와 논점, ‘생각할 거리’를 알려주는 것이다. 배경지식이 없이 강의가 이루어졌을 때와는 달리 바로 논점을 제시하고 토론을 끌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요약된 소설로 문학 공부를 하고 책을 읽지 않았어도 지문만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수능세대 학생들의 학습 방식에 영합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강의실의 현실은 학생들이 히스클리프와 줄리앙 소렐을 알든 모르든 비평 이론들을 소개하고 문학작품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해 전에 교양과목으로 개설하여 수강 신청이 가장 빨리 끝나는 과목이 된 ‘뮤지컬로 읽는 문학작품’이라는 강의가 있다. 사이버 대학에도 같은 과목을 개설하여 수많은 수강생을 두고 있으니 적어도 ‘흥행’ 면에서는 성공한 셈이다. 원래 강의 개설 취지는 뮤지컬이라는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을 통해 학생들에게 책을 읽을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다. 교양강의로서 최소한의 품격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에서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와 『레 미제라블』, T. S. 엘리엇의 『노련한 고양이들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만든 인기 뮤지컬을 2주에 한 작품씩 감상하고 소개하는 강의를 개발했다. 나름 뮤지컬 전문가로서 공연예술로서의 뮤지컬의 특징과 오페라와의 차이를 설명하고 뮤지컬의 역사를 소개한 뒤에는 곧장 개별 작품을 다룬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는 직접 편역한 소설을 소개하고 ‘이성과 정념의 대립’부터 ‘미녀와 야수’, ‘팜므 파탈’의 주제까지 다룬다. 대표곡인 ‘아름답도다(belle)’와 ‘너는 나를 파멸시킬 거야’까지 듣고 나서는 ‘콰지모도와 프롤로 신부에게서 정념이라는 주제가 각기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가?’라는 토론이 가능해진다. 강의 중반부에는 좀 더 나아가 고딕 건축물인 노트르담 성당이 하늘 높이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이유가 ‘플라잉 버트레스’와 ‘버트레스’라는 구조물 덕분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인다. 이쯤 해서 문학작품에 대한 설명을 본격적으로 끼워 넣는다. 빅토르 위고가 실은 소설가보다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시인으로 문학사에서 더 알려져 있고 희곡 「크롬웰」의 서문을 썼는데 그것이 낭만주의 운동의 선언서가 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도 설명한다.

솔직히 말해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 대부분은 ‘뮤지컬로 읽는 문학작품’에서 되도록 뮤지컬만을 취하려 하지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버거워한다. 그래도 학기 말에는 뮤지컬의 배경이 된 문학작품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과제를 어김없이 부과한다. 학생들은 공연 후기를 쓰겠다고 버티지만, 책 읽기만큼은 양보하지 않는다. 사실 참고문헌의 책까지 읽어오라는 말을 꺼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원전을 읽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이해해서도 그렇지만 신입생 때부터 취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히는 것이 선생의 욕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이다. 책을 읽지 않고 혹은 요약된 지식만으로도 학문하는 것과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하다면 학생들에게 책 읽기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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