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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호] 저자의 말말말_'일본적'인 것에 저항한 일본의 참 지성인
[946호] 저자의 말말말_'일본적'인 것에 저항한 일본의 참 지성인
  • 전세화
  • 승인 2018.12.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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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 슈이치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적’이라는 것은 ‘봉건적’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일본의 모든 것을 대표했던 저 가난한 농민의 존재는 그야말로 메이지유신이 예정하고 실행한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절대왕제를 중심으로 해서만 가능했고,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화를 영구히 막으려는 봉건주의를 그와 같이 강고하게 보존하게 위해서는 천황제가 필요했으며, 오직 천황제여야만 했다는 사실을. 빛이 동쪽에서 오는 것처럼 모든 불합리주의는 천황제로부터 왔다.

이 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정치가와 재계 지도자, 고급관료와 학자, ‘미디어’의 간부들의 본의 아니게도 조직 속에서 조직으로부터 할당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말로 하자면, 조직과 개인을 준별하고, 당연히 필요한 타협이니 책략이니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서의 의견·판단·이상·도의심을 조직의 입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나츠메 소세키도 시사하고 있듯이, 도의란 국가에게가 아니라 개인에게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으로부터의 개인의 독립, 다시 말해 온갖 조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필요불가결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위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치고, 그것을 해결할 대책은 어떠한가? 수많은 대책 가운데 특히 일본 사회가 좋아하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언어학적 대책이다. 돌아보면 일본에서 위기의 언어학적 해결법의 세련됨은 ‘패전’을 ‘종전’이라 부르고 ‘점령군’을 ‘진주군’이라 부를 때부터 시작되었다. ‘종전’이라는 낱말은 싸움의 승패를 명시하지 않는다. 진 싸움은 위기겠지만, 싸움이 끝난 것은 평화의 희망일 것이다. ‘점령군’은 일본의 법률과 천황의 권위를 초월하니 두렵지만, 만약 그것이 ‘진주군’이라면 일본과 천황제의 안전을 지켜 줄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많은 위기가, 단어를 뒤바꾸는 비교적 단순한 언어학적 조작에 의해 단박에 해결된다. 혹은 해결된 듯이 보인다.

카토 슈이치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돌베개, 2018.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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