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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 “말 못 할 가슴속 신음 같은 파도소리” ··· 역사와 비역사의 무심한 공존
[최재목의 무덤기행] “말 못 할 가슴속 신음 같은 파도소리” ··· 역사와 비역사의 무심한 공존
  • 최재목 영남대·철학과/시인
  • 승인 2018.12.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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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 _ “무덤에서 삶을 생각하다” 2-④ 소록도 만령당(萬靈堂)을 찾다

‘소록도 갱생원’, 식민지의료의 전시장으로서 관광화 

소록도 내부 풍경. 왼쪽이 국립소록도병원 중앙, 큰 건물이 한센병기념관이다.
소록도 내부 풍경. 왼쪽이 국립소록도병원 중앙, 큰 건물이 한센병기념관이다.

패전 후 미쓰다 겐스케는 ‘나병관리강습회’(나가시마애생원, 1949.3.6.)에서 일제 치하 당시 소록도 갱생원 사업을 ‘조선통치의 본질을 표상하는 선정(善政)’이나 ‘조선통치에서 자랑할 만한 업적’으로 소개한다. 이러한 관점은 미쓰다 등의 식민지 조선의 한센병에 관여한 인물들의 속내를 읽기에 충분하다. 서양 열강과 어깨를 겨누며 아시아 유일의 제국의 위상을 갖던 일본이 근대 의학 분야에서 상당히 뒤처진다는 콤플렉스를 한센인 ‘관리시스템과 대중호응’에 기대어 극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 미디어(일본어와 한국어 신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것을 통하여 한센인들의 이미지를 부랑-불온-위험의 존재로 적극 부각하며, 아울러 그들을 ‘조사-색출-격리’(한국어 신문)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식민지 의학의 위엄을 홍보, 과시하려 한다(일본어 신문). 여기서 ‘위엄’이란 진보해가는 의료시설, 갱생원의 체계적 시스템, 조선인들의 황국신민으로서의 행복감, 나 예방협회의 활동과 성과를 말한다. 이런 노력은 식민지 조선 경영에서 이루어진 정보와 지식을 본국으로 회수?접적하여 제국의 의학지(醫學知)를 심화시키고, 제국의 품격을 높여가며,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확장하는 이른바 제국지(帝國知)의 선순환 설계도에 따른 것이었다(서기재 2017, 425-34).

1930년대 일본 내 미디어에서는 소록도 갱생원이 ‘별천지-천국-낙원-천혜’로서 묘사되고, 따라서 ‘황국신민으로서의 자부-천황에 대한 감사-진정한 일본이라는 공감’을 형성하려 하였다. 다키오 에이지 씨가 공들여 수집·정리한 『식민지하 조선 한센병 자료집성』(東京: 不二出版, 2002)에 따르면, 1930-40년대 일본의 잡지 및 개인 기록물에서 일본인들이 소록도를 방문한 기록은 50편 가까이에 이른다. 한 방문기에서는, 소록도를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곳으로 소개하기 위해서 ‘최승희가 태어난 곳이자 손기정 선수를 낳은 고향으로 친숙한 조선!!’이라 하며, 소록도와 관련 없는, 일본에 친숙한 유명 조선인들을 호출하기도 한다. 미쓰다 겐스케가 1940년 소록도개생원 시찰 후 쓴 감상문에는, 소록도 한센인들의 풍년춤을 ‘일본의 본오도리(盆踊り)’에 비유하기도 한다. 1939년 6월 발간된 한국최초의 관광잡지 『관광조선』은 1941년 1월에 『문화조선』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여기서는 일본 각계 인사들의 조선 방문기를 실어 실시간으로 조선의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1942년 5월에 출간된 『문화조선』 4권 3호에는 ‘소록도특집’이 구성되어, 소록도의 지도, 교통편 등 다양한 측면들을 소개한다. 흥미롭게도 일본과 경성에서 각각 해로와 육로로 소록도에 가는 경로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일제는 소록도의 관광보다는 식민지 의료의 전시장으로 대중에게 소록도를, 식민지 의학-의료의 정화로서 미화, 소개, 유포하는 목적으로 초대하려는 것이었다(서기재 2017, 434-45).

이런 내용들을 참고한다면, ‘수탄장’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아마도 이즈음 즉 소록도가 식민지의료의 정화를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미화, 관광화되는 시기가 아닐까 추정된다. 부디 이 미완의 내 호기심과 탐색에 도움을 줄 분들이 있기를 기대한다. 

조용한 해안에 공존하는 역사와 비역사

순바구길 비석
순바구길 비석

소록도의 아픔과 비극의 역사적 서사[narrative]를 싸악 지우고서, 오른쪽 옆으로 펼쳐진 깨끗하고 조용한 해안의 자연경관. 그렇게 소록도는 역사와 비역사가 무심하게 공존한다. 잔잔한 듯 거친 파문에 조심스레 생각을 묻고 묻으며, 한하운의 「해변에서 부르는 파도의 노래」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말 못 할 가슴속 신음 같은 파도소리
한시도 쉴 새 없이 쳐밀고 쳐가는 해식사(海蝕史)
(「해변에서 부르는 파도의 노래」 일부)(한하운 2010, 87)

깨끗이 조성된 데크 길을 따라 10여 분 들어가면, 왼쪽으로 국립소록도병원, 그 뒤로는 소록도 중앙공원과 구 소록도 갱생원 감금실과 검시실이, 오른쪽으로는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 박물관 등이 소록대교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먼저 한센병박물관에 들렀다. 이런저런 내용을 둘러본 뒤 만령당으로 향한다. 아뿔싸! 잘 모르고 그만 출입 통제지역에 들어서고 말았다. 소록도 자치회 어른들이 큰소리로 나를 불러낸다. 사진을 찍다 말고 길바닥에 서서 꾸지람을 당하며, 여기에 오게 된 사정을 한참 설명하고서야 겨우 허락을 얻어 언덕길을 걸어 오를 수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관광객들이 마을까지 들어와 이곳저곳 사적인 공간을 기웃대는 게 꽤 불편한 것이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

경천애인 비석
경천애인 비석

마을을 잇는 길에 ‘순바구길’ 비석이 서 있다. ‘순바구길’이란 해방 후 구성된 건설대(建設隊)로 50년 동안 일했던 ‘박순암’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순암의 ‘바위 암(岩)’ 자를 전라도 사투리 ‘바구’로 불러 ‘순+바구’라는 신작로 길 이름을 만들고 비석을 세운 것이다. 순바구는 참혹하게 일만 하며 학대받으며 살아온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 전체를 대신하는 별명이라 해도 좋다. 「순바구길 기념비」 뒷면, 1978년 5월 17일 국립나병원장 신정식 원장 명의로 적힌 글을 읽어본다. 

“이 동산 모든 것이 하나 같이 환자들의 손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섬에 병원 개설의 첫 삽을 내릴 때나 다음으로 확장공사가 이루어질 때도 도로, 선창, 방파제, 병원, 주택, 창고, 각 작업장의 건축, 공원 조성 등 온갖 것이 그들의 피와 땀, 살과 뼈를 깎으면서 만들어졌으니 이 섬이 있는 동안 우리는 그 공로를 잊을 수 없다. ……조국 광복 후로는 비교적 건강한 환자로 건설대를 스스로 조직하여……이제 그 책임자로 50년을 하루같이 몸을 바친 박순암의 아명을 따서 이 길을 순바구길로 짓고……비를 세운다.”(정근식·국립소록도병원 2017, 38)

아, 가만히 읽고 있으면 그냥 눈시울이 젖는다. 평생을 한센병이란 천형(天刑)에 갇히고, 다시 절대격리에 갇히고, 억압과 폭력, 감금과 수탈, 편견과 차별에 갇히고 …. 남은 것은 결국 비석인가.

‘순바구길’로 비석에서 오른쪽으로 틀다가, 뒤편 언덕 위 높은 곳을 쳐다본다. 비석 하나가 떡 하니 서 있다. 글귀를 읽어본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경천애인’이라?! 이 ‘경천애인비’에는, 자료에 따르면, 이런 사연이 있다. “일본 왕실의 정명태후가 소록도 갱생원에 여러 차례 위문금과 선물을 보내옴에 따라 1938년 공회당 정면 언덕에 구북리 십자봉에서 가져온 돌로 태후의 ‘어가’를 새겨 비석을 세웠다. 비용은 환자들의 사은갱생일 작업으로 모은 돈을 썼다. 돌의 무게가 15톤이나 되었고, 수많은 환자를 동원해 목도로 운반했다. 어가비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환자들에게 암송하게 했다. 1961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새겼다.” 한다. ‘정명태후어가비’란 “벗이 되어 위로하여라, 가기 어려운 나를 대신하여(つれづれの友となりてもなぐさめよ ゆくことかたきわれにかはりて)”라는 내용으로, 1939년 11월 25일에 세워진다(정근식·국립소록도병원 2017, 34).  『소록도 한센병환자의 강제노역에 관한 조사』를 보면, “세상에서 버림받은 전염병 환자가 세계 제일의 ‘낙천지’에 들어오는 ‘황은(皇恩)’을 입었기 때문에 황은에 보답하기 위해 최대한 전쟁 수행에 기여하여야만 한다”는 이유로 1940년 4월에 조성된 중앙공원에서는 “매월 1일 ‘신사참배일’, 10일 ‘사은갱생일(일본 왕비가 내린 하사금기념일), 20일 ‘보은감사일’의 행사 등이 행해졌다”고 한다(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6, 14).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로 경천애인을 새겼다’라고는 했지만, 과연 그런가? 경천애인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긴 하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말이 일본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의 좌우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삼걸(三傑)의 한 명으로, 도쿠가와 막부 시대를 종언시키고 천황 중심의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성공시키는데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후 사무라이들의 입지가 좁아져 그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그것이 반란으로 표출되기 전에 조선을 정벌하는 전쟁을 일으켜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을 그는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필연성 같은 ‘하늘의 힘’을 의식하면서 ‘경천애인’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소록도에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경천애인’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하늘 천’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소록도의 많은 교회가 찾는 기독교의 하느님? 천황? 한센병자들의 운명? 역사적 필연성? 자연? 도대체 어떤 하늘을 경외하란 말인가.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라 하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사랑하라는 말인가. 아, 맥락을 일탈한 말이 왜 해방 후에 다시 소록도에 세워졌단 말인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어, 전동휠체어로 다니는 주민들만 길을 물어가며,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길을 헤매다가, 다행히 고요한 해변에 닿는다.


<참고문헌>
* 서기재, 「한센병을 둘러싼 제국의학의 근대사: 일본어 미디어를 통해 본 대중관리의 전략」, 『의사학』 제26권 제3호 (대한의사학회, 2017.12)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소록도 한센병환자의 강제노역에 관한 조사』 (서울: 국무총리소속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6),
* 정근식 책임편집, 『한센병 그리고 사람, 백년의 성찰: 1916-2016(사진으로 보는 소록도 100년)』 (고흥: 국립소록도병원, 2017)
* 한하운, 『한하운 전집』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0)

 

최재목 영남대·철학과/시인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에서 문학 석·박사를 했다. 양명학·동아시아철학사상 전공으로 한국양명학회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등이, 시집으로 『해피 만다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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