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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허사대사전』(현암사 刊) 펴낸 김원중 교수
인터뷰 : 『허사대사전』(현암사 刊) 펴낸 김원중 교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7.0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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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의 새 틀 세운다는 마음으로 10년"

흔히들 영어해석에선 동사를 찾으면 된다고 한다. 한문해석은 동사보다는 虛辭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허사는 헛것이다. 문장의 중심의미를 받쳐주는 조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허사를 잘못 해석할 경우 번역이 헛것이 된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기지 않으려면 허사의 용례를 머리에 넣어두는 게 필수적이다.

"고전번역에서 오역의 문제는 대개 허사의 문제로 귀결되더군요. 중국에 허사사전이 10여종 있지만 영어원서 보는 거나 같으니, 틀린 부분을 계속 틀려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고전번역의 기본 틀을 세운다는 마음으로 지난 10년간 조금씩 준비해 왔습니다."

'삼국지', '사기열전', '삼국유사', '정관정요' 등 고전번역에서 꾸준히 업적을 내 온 김원중 건양대 교수(42, 중문학)가 '허사대사전'이라는 중요한 학술적 작업을 해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전은 저자가 1989년 펴낸 5백쪽 분량의 '허사사전'을 모태로 대폭 교정하고 확충한 것인데,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우리의 언어현실에 맞게 허사의 용례 설명과 해석 방법을 고려하고 사례도 1백여가지를 더 늘려(1천64쪽) 펴낸 것이라 그 의미가 크다.

'正格'의 명문들 가득 수록

허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최근 고대어법 전공자들의 논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맹자의 개사 以자 용법"이라든지 "장자의 대명사 之자 연구"라든지 글자 하나 갖고 박사학위 논문까지 내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허사연구는 일찍이 차주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효시로 허벽 전 연세대 교수의 논문이 있고, 홍인표 서울대 명예교수는 허사 20개와 구체적인 용례를 저서 '한문문법'(1976)에서 소개한 바 있다. 또한 조종엽 충남대 명예교수는 '한문통석'(1986)에서 허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허사 2백여개를 분류 일람표로 만들기도 했다. 그 외에 한문문법 관련서적들이 모두 허사를 다루고 있지만 분량 면에서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이번 작업에서 한국의 고전들에서 찾아낸 사례를 많이 넣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만, 역부족으로 흡족할 만큼은 못됩니다. '삼국사기', '서포만필', '지봉유설' 등 중국의 용법과 유사한 책들은 더러 인용했으나, 많은 한국고전들은 변격이 너무 많아 해석이 어렵더군요. 제 역량이 닿지 못했습니다."

책의 체제는 이렇다. '也'에 대한 항목을 보면 "어조사로서 문장 가운데 쓰여 어기의 멈춤이나 설명하려는 대상이나 주제를 나타내며 우리말의 주격 조사와 비슷하다. 문장 끝에 쓰이면 단정과 강조를 나타낸다"라고 그것의 기본 의미와 용법을 풀이한다. 그런 다음 기본 용례를 열 서너가지 한문 문장과 번역을 통해 보여준다. 이어서 '也哉'(감탄), '也乎'(완곡한 의문), '也乎哉'(반문) 등 관용어구를 사례와 함께 풀어주고 있어 기본적으로 철저한 용례사전이다. 동양고전의 명문들이 등장하니 그냥 읽어도 꽤 재미가 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예문을 뽑는 게 중요했다. 김 교수는 사서삼경, 제자백가서, 25사를 중심으로 문장을 뽑았는데, 위진남북조 이후의 문장들은 변격이 많아 제외했다. 문장이 아무리 아름답고 그 뜻이 좋더라도, 사전에 등장하는 문장은 '정격'이라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철학인 셈이다. '문심조룡'으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위진남북조를 전공한 그지만, 인용된 위진남북조 문헌은 '세설신어' 정도일 뿐이다.
"앞으로는 漢代 이전의 문장들 가운데 정격의 좋은 문장으로 허사의 사례를 더욱 수집해 증보판을 낼 계획이고, 아주 나중에는 우리 고전에서 쓰인 허사의 사례들만을 모은 사전을 펴내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번역은 홀로 하는 외로운 작업

20대 중반에 사전작업에 뛰어들었고 이제 20년 가까이 사전에 매달렸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생각하는 김 교수는 허사사전을 자신의 평생과업으로 삼았다. 우리 고전에 능한 다른 교수님과 공동작업으로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사전은 결국 혼자서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가 본받을 만한 고문 번역자로 꼽는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 김근 서강대 교수,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등은 모두 혼자서 번역과 역주, 참고문헌, 색인 작업을 다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김근 교수의 '여씨춘추'(민음사 刊)는 정본으로 삼아도 될 책이라고 극찬한다. "나도 색인 정도는 출판사에 맡기는 편이지만, 대학원생들을 동원하는 것은 그것 이상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그는 말한다.

아무튼 백화문 번역으로 어지러운 국내 고문번역에 김 교수의 작업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제시기를 거치며 고전과 단절된 우리에게 고전번역은 한시라도 바쁜 사업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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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선 2014-09-20 21:42:53
어디가야 살수있는지 좀 알려주세요,
여러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값은 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