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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인식의 학문
현실 인식의 학문
  • 배경아 동국대·경주캠퍼스 불교학과 전문연구원
  • 승인 2018.12.03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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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현실의 철학이자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현실에 있고 그 해결점도 현실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교의 관점은 개인의 수행이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학문하는 기본적인 자세와도 연관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선 알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필자가 처음 불교학을 시작했을 때는 한국불교를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동양철학과 연관성이 깊은 동아시아 불교의 특성상, 불교한문뿐만 아니라 일반한문도 읽고 해석할 수 있어야 했다.

석사 과정에 들어가서는 인도불교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한문은 물론이고 인도의 범어 텍스트와 이에 대한 티베트어 번역을 읽을 수 있어야 했다. 나 자신이 명쾌하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일본으로 유학하게 됐고,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일본의 카츠라 쇼류 선생님의 지도 아래 인도불교의 인식론·논리학 관련 범어 원전들을 번역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약 4~5년간 쿄토대의 야기 선생님에게 고전 범어 문법학서와 그 주석서를 배웠고 티베트어 문법의 권위자인 쯔루팅 선생님에게 티베트어 고전문법서를 배우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필자는 어느 분야든 학문엔 끝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결국, 박사란 자신이 선택한 제한적인 분야 내에서도 부족한 부분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지속해서 연구해야 하는 사람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처럼 필요한 부분들을 연구해 나가다 보니 부족하나마 전문가로서 명함을 새길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국내연수 사업 등을 통해 연구를 지속해 나갈 기회도 얻었다. 이를 통해 중국에 전해지지 않았던 인도불교의 범어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같은 주제를 다루는 한국불교의 저서와 비교 연구하고 있다. 범어 원전을 중국의 한문 번역서들을 통하지 않고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는 일은 아직도 불교 한자용어를 어렵고 낯설게 느끼는 한국의 독자들이 더 쉽게 고전에 다가가도록 도울 것이다. 이 또한, 범어 원전 연구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의 불교학계 현실에서 필요한 일 중 하나다.

사실 한국 위인들의 저서도 중국의 번역용어를 거치지 않고 현대 한국어로 바로 번역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많은 불교용어가 이미 불교한자용어로 정착됐기 때문에, 혹은 한자가 아니면 많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단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독자가 현대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역사적인 불교논사(論師)들이나 학자들은 중국불교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조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유학할 때 의아했던 점 중 하나는 일본 정토진종의 조사라고 할 수 있는 신란을 언급할 때 꼭 성인(聖人)이라는 말을 붙여 ‘신란 성인’으로 부른다는 점이었다. 정토진종의 신도가 아니라면 이 호칭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생각해 보면 공자는 성인이고 원효나 신란은 감히 성인일 수 없다면 사실은 그 또한 타당하지 않다. 성인이 아닌 것과 감히 성인일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맥락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는 하나 신란이 일본어로 저서를 남긴 것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원효를 포함한 역사적인 불교 위인들의 저서를 현대 한국어로 재조명하는 일은 그런 점에서 한국불교연구의 의미 있는 업적이 될 것이다.

 

배경아 동국대·경주캠퍼스 불교학과 전문연구원

일본 류코쿠대에서 인도불교의 인식론·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의 올바른 인식론과 논리학, 언어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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