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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생산한 빈곤과 ‘다른’ 국가로의 전환
사회가 생산한 빈곤과 ‘다른’ 국가로의 전환
  • 김윤태 고려대·공공사회통일외교학부
  • 승인 2018.12.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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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_김윤태 고려대 교수의 「빈곤, 불평등, 국가의 역할」

지난 10월 6일 김윤태 고려대 교수(공공사회·통일외교학부)가 네이버 문화재단이 개최하는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에서 「빈곤, 불평등, 국가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발표에서 “불평등이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듯 사회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발표문의 결론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오늘날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의 게으름, 무능력, 무책임을 비판한다. 관대한 복지국가가 개인의 의존을 조장해 오히려 빈곤을 악화시킨다고 공격한다. 반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고 잘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들에게 가난한 사람은 ‘루저’이고 ‘잉여’일 뿐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교육이나 기술에 더 많이 투자한 사람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경험적 증거를 수집하느라 바쁘다. 누구나 소득 상승의 사다리로 올라가기 원하면 인적자본에 투자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 그럴까?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 비율이 70%에 이르고, 학생의 80%가량이 B학점 이상을 받고, 토익 성적이 올라가도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교육 체제는 빈곤의 근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절대적 능력 개발이 상대적 지위의 개선을 이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곤층의 교육 수준이 과거보다 개선돼도 사회 불평등이 커진다면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가족 배경, 성별, 지역에 따른 불평등을 무시하고 모두가 평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한다고 보는 관점은 많은 한계가 있다. 시장에 영향을 주는 계급 구조, 사회적 지위, 정부 정책이 부와 빈곤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즈(Charles Wright Mills)가 말한 대로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다. 지금처럼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만 증가한다면 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비정규직의 절반이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불평등이 줄기는 어렵다. 치솟는 주거비와 사교육비는 결국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악화시킬 것이다. 이처럼 빈곤의 극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며,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19세기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은 “만약 가난한 사람의 불행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의 제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우리의 죄가 너무나 크다”라고 말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빈곤과 불평등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만든 문제이다. 

빈곤 해결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립심, 기업의 고용 창출과 사회적 책임 등 모든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빈곤 위험을 예방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를 만들고 구체적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는 바로 국가이다. 빈곤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이나 나태한 개인들이 초래한 불운이 아니다. 빈곤은 바로 우리가 만든 사회제도의 결과이다. 사회가 좋은 일자리와 보편적 교육, 의료와 같은 사회적 공공재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사회통합과 사회정의는 큰 위기에 부딪힐 것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수천 명의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면서 수많은 가족이 큰 고통을 겪었다. 이 참혹한 과정에서 무려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거나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고통은 그저 개인의 불행이 아니다. 기실 우리 모두를 포함한 국민이 함께 느껴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우리가 좋은 국가를 만들었다면 그들의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윤태 교수. 사진 제공=네이버 문화재단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극빈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빈곤층이 존재하며 증가하는 불평등으로 사람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간다. 좋은 사회가 아니라 점점 더 나쁜 사회로 변해간다는 징후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불평등이 지나치게 커진 사회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이런 점에서 불평등은 경제적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이다. 불평등은 과잉경쟁, 상품 물신화, 인간 소외, 정치 갈등을 야기하고 개인의 삶의 자존감과 잠재력을 파괴할 수 있다. 불평등은 심리적, 정치적 문제인 동시에 도덕적 문제이다. 국내총생산, 해외여행, 자동차,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저출산, 우울증, 불행감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나는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평등은 자연적 과정이거나 어쩔 수 없는 힘이 만든 게 아니다. 불평등이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듯 사회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기업, 노동조합, 시민사회 조직 등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 해결할 길이 열린다. 

빈곤과 불평등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듯이, 인간이 노력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정부 정책은 빈곤을 퇴치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 성과를 만들 수 있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누진세, 보편적 교육, 사회보험 등 통합적 제도의 실행이 필수적이다. 불평등을 줄이면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인 기회의 평등이 커질 수 있다. 범죄, 살인, 자살 등 사회문제도 줄어들 수 있다. 증가하는 불평등은 민주주의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사회 격차가 고정되고 불평등이 세습된다면 사회는 커다란 대가를 치를 것이다. 불평등이 적고 사회적 유대와 신뢰를 통해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좋은 사회가 가능하다. 정부가 불평등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평등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정책과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제시해야 한다. 복지정책의 실행을 위해 재정 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세부적 액션 플랜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우리의 복지국가는 생애 과정에서 겪는 사회적 위험을 극복하도록 지원하는 사회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동시에 개인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정책도 추구해야 한다.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었던 키케로(Marcus T. Cicero)는 로마 집정관 카시우스(Caius Longinus Cassius)가 항상 “퀴 보노(Cui Bono)?”라고 현명하게 물었다고 칭찬했다. 이는 “누가 이득을 얻는가?”라는 의미다. 나는 사회과학의 핵심적 질문 중 하나도 정부의 정책으로 ‘누가 이득을 얻는지’ 그리고 ‘누가 이득을 잃는지’ 따지는 일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깨어 있는 시민도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불평등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시대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힘은 바로 시민의 의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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