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7 11:07 (월)
30년 후에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 ·
30년 후에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 ·
  • 교수신문
  • 승인 2018.11.26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넘다 보면 멀미를 하게 된다. 핸들을 왼쪽으로 틀면 관성 때문에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고 오른쪽으로 틀면 왼쪽으로 쏠린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균형감각을 잃고 어지럽다가 메스꺼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길을 달리면서도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운전자와 잠자는 사람이다. 운전자는 가려는 방향을 미리 알아 핸들을 꺾으면서 동시에 몸을 그쪽으로 기울이기 때문에 몸이 반대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자는 사람은 회전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몸은 흔들리지만, 멀미하지는 않는다.

고갯길보다 더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운전자일까, 잠자는 승객일까, 멀미하는 승객일까? 상황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을 ‘봉변逢變’이라 하고, 변화에 잘 대처하는 사람을 ‘능변能變’하다고 한다. 미래 세계에서 능변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30년 후를 상정해 보자. 이 미래에 살아가려면 새로운 생각과 상품을 발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의 의미 자체가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살이 되어 데이트 사이트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는 ‘서울에 살며 패션숍에서 일하는 25세 이성애 여성’이라고 적고, 서른다섯 살이 되어서는 ‘젠더 불특정 인간으로, 나이 조정 시술을 거쳤으며, 신피질 neocortex 활동은 주로 뉴코스모스 가상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평생 목표는 어떤 패션디자이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가보는 것’이라고 소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토지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정치는 땅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독재는 땅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나타났다. 지난 200년간에는 기계가 중요한 자산이었다. 정치적 투쟁은 기계를 통제하는 데 집중되었다. 21세기에는 데이터가 자산이다. 정치는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 너무 많은 데이터가 정부나 소수기업에 집중되면 그 결과는 디지털 독재로 나타날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AI와 생명공학이 결합하면 인류는 데이터를 독점한 소수의 슈퍼휴먼 계층과 그렇지 못한 호모 사피엔스 대중 계층으로 양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21세기를 위한 21가지 조언』, 전병근 옮김, 김영사, 2018). 만약 대중이 경제적 중요성과 정치적 힘을 잃으면 국가는 이들의 건강과 교육, 복지에 투자할 동기를 적어도 일부는 잃을 수 있다.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는 기술이 그것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앞으로는 기술이 나를 대신해 내 목표를 정하고 내 삶을 통제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특히 기술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기술이 내게 봉사하기보다 내가 기술에 봉사하게 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 사람들에게 외쳤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교훈은 21세기에 와서 더없이 다급한 것이 되었다. 소크라테스나 노자 시대와는 달리, 우리 앞에 여럿의 디지털 독재자 후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마존과 구글, 코카콜라뿐만 아니라 정부조차도 모두 우리를 해킹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 내가 어느 곳에 가고 무엇을 사느냐에 관한 데이터가 아니라 내 몸과 두뇌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해킹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들에게 해킹당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의 운영체제를 AI보다 내가 더 잘 알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운영체제, 그러니까 ‘정신’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가장 좋은 출발점은 ‘고통pain’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주장한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것은 너무나 거칠고 참을성이 없다. 숨결이 콧속으로 드나드는 것과 같은 제법 뚜렷한 감각을 집중해서 관찰할 때조차, 정신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초점을 잃고 생각과 기억과 꿈속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조언』에서, 이러한 정신을 탐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뜻밖에도) ‘명상’을 추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신화 아래에서 수많은 정보와 논쟁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것들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차릴 겨를이 없다. 출근해야 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고 나이 든 부모님도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역사에는 에누리가 없다. 당신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느라 너무 바빠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인류의 미래가 결정된다 해도, 당신과 당신 아이들이 그 결과에서 면책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돈이나 부동산, 교육이나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인생이 뭔지, 나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은 ‘잠자는 승객’이거나 ‘멀미하는 승객’일 것이다, 해킹당하기에 십상인.


김정규 서평위원/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