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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인가, '필리아' 인가...희랍 정치철학의 고민
'에로스' 인가, '필리아' 인가...희랍 정치철학의 고민
  • 편집국
  • 승인 2018.11.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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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아스와 안티스테네스: 소크라테스 추종의 행동 및 사유와 희랍 정치철학의 발전』 (양승태 지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8.10)

최근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촛불혁명’으로 분출되었고 극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갑자기 폭로된 국정농단은 고질적인 적폐의 결과였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이렇다. 많이 배운 ‘잘난’ 사람들이 잘 나간 것이 그들이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운 것을 악용해서 제 배만 채우면서도 별 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조인의 일부가 법을 지키기는커녕 불법을 저지르고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서, 법 위에 군림하며 저 잘났다며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그들이 배운 것에 충실하게 법에 깃든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텐데, 그들은 그런 고귀한 가치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았고 법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자기 배 불릴 줄만 알았다. 참된 앎과 행동, 이론과 실천의 어긋남에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적폐와 희대의 국정농단이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시점에 양승태 교수의 책은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저자는 배운 대로,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사회, 정치적 문제의 근원을 서양 정치철학이 태동하는 그리스 고전기로 찾아가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 책은 전통적인 정치철학의 주제인 ‘이론과 실천이라는 대립논제’의 현대적 쟁점을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그들의 한계를 부각하며 시작한다. 한계는 그들이 씨름한 문제의 고대적 원형에 대한 연구의 미흡함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텍스트를 꼼꼼히 읽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꼭 읽어야 할 텍스트를 무시했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제2장). 이런 지적은 두 철학자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관점 일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저자가 독자들을 인도하는 곳은 기원전 5-4세기의 아테네다. 이 시기는 그리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페르시아의 두 차례 침략을 막아냈지만, 내부의 주도권을 놓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전면적인 내전을 겪었던 전란의 시기, 서양판 ‘전국시대(戰國時代)’였다. 이때 아테네는 ‘민’(demos)이 통치와 권력(kratia)의 ‘주’가 되는 민주정(demokratia)을 운영했다. 민주의 정신과 생활 방식은 급부상한 아테네의 힘이었고, 또한 역설적이게도 몰락의 원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이런 구체적 현실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내고, 그 안에서 당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반성하고 성찰하며 이론을 내놓고 실천했는가를 생생하고 풍부하게 보여준다(제3장-제4장 2절).

특히 이른바 ‘과두파 노인’의 논고를 소개하면서 아테네 민주정의 부정적 특징을 부각하는데, 그것은 무능하고 무용하고 저질적인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과 악덕에 의해 무책임하게 움직이면서 구조적으로 부패한 정치체제였다. ‘못난’ 사람들이 고상하고 덕성을 갖춘 ‘잘난’ 사람들이 잘나가는 꼴을 못 본 것이다. 참된 ‘잘남’(aret?)이 대접받지 못하던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직시하면서 아테네 민주정의 한계를 성찰하고 그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정치철학은 태동하고 완성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현상을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중심의 희랍 정치철학사는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할 가능성”(446쪽)에 대한 야심 찬 도전이다. 그가 그리는 큰 그림에서 그리스의 정치철학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태동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저자는 이 ‘학맥’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을 존중하지만, 이 세 철학자만을 고려한다면 잘못된, 또는 불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이의 큰 틈을 봐야 하고, 그 틈에 있는 중요한 ‘소크라테스의 추종자’들을 검토해야 한다. 이번 책은 그 틈을 메우기 위해 그리스의 민주파 연설가 리시아스와 철학자 안티스테네스를 상세하게 다룬다. 제4장 3절-제7장은 두 사람의 ‘정치사상’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텍스트에 천착한다. 원전에 충실해지려는 문헌학적인 노력과 중요한 연구서들을 섭렵하고 균형을 유지하려는 감각이 정말 감탄스럽다. 마지막 제8장은 고전기 그리스 지적 지형도, 특히 정치철학의 흐름과 맥락 안에서 그들의 위치와 의의를 평가하며 책을 마감한다.

저자의 연구는 새로운 접근임엔 분명하다. 연구의 큰 그림은 『소크라테스의 앎과 잘남: 대화, 아이러니, 시민적 삶, 그리고 정치철학의 태동』(2013, 이화여대출판문화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번 책은 그 후속편이며, 조만간 나올 다음 책은 이소크라테스와 크세노폰에 대한 연구로 채워질 것이다.

그의 도전의 의의는 충분히 공감할만하며, 고대 그리스의 지적 지형도를 좀 더 포괄적으로 그려내야 한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이 있다. 과연 리시아스와 안티스테네스가 탐구를 위한 최적의 인물인지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잘남이라는 번역어를 비롯한 개념어의 정확성도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이 책에 관한 전체적인 평가는 좀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이 필요하고, 이 책의 전작과 후속작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큰 부담도 있지만, 흥미로운 문제와 관점을 제시한 책이며, 자세하게 검토할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선 한 가지만 짚겠다.

저자는 리시아스의 텍스트를 검토하면서 그의 원작들을 제쳐두고 문제적 텍스트를 먼저 건드린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리시아스의 사랑의 연설이다. 이 대화편은 파이드로스가 리시아스와 헤어지고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리시아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밝히라고 파이드로스를 압박하는데, 이때 사랑의 연설이 제시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연설이 리시아스의 원작이냐, 아니면 플라톤이 만든 허구적 창작이냐를 놓고 논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플라톤의 허구적 창작이라면, 이를 바탕에 두고 리시아스의 정치사상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시작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위험부담이 큰 시도인데, 저자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파이드로스에 제시된 사랑의 연설은 리시아스 자신의 것이다. 플라톤은 이 연설을 직접 인용하고 리시아스의 사랑 개념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철학적 사유를 한 차원 높게 성숙시켜나간다(저자는 이런 해석을 통해 리시아스와 플라톤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에로스)이 아닌 우애(필리아)로 대할 때, 사회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소통에 기초한 평화로운 상호 이익의 추구가 가능하다.”(207) 이런 점에서 리시아스의 연설은 정치철학적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한 것인지를 따지고 들 학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특히 파이드로스가 제시한 리시아스 연설의 요지를 저자는 칭송받을(charisteon)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227c)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리시아스 연설 전체를 정치철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자의적 번역처럼 보인다. 그에 따르면 이 문장은 에로스(사랑)를 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고, 에로스를 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필리아(우애)를 하는 사람이 칭송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 평가적 함의를 갖는다. 그래서 에로스를 버리고 필리아를 해야 성숙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정치 공동체에 바람직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기쁨을 주어야 한다라고 번역하고, 리시아스의 논변이 사랑과 관련된 통념을 거스르면서도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의 연설의 기막힌 반전과 소피스트적솜씨에 주목하는 사람에게는 저자의 정치철학적 해석은 오해이며, 적어도 과해보인다.

사족으로 하나 더. 저자는 이 대화편에서 파이드로스가 리시아스의 사랑의 연설외워서 소크라테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기술하는데(185쪽 등등), 사정은 전혀 다르다. 작품 속에서 파이드로스는 그러고 싶었지만, 겉옷 아래 왼손에 쥐고 있던 리시아스의 원문을 소크라테스에게 들키는 바람에 결국 그것을 꺼내 읽기 때문이다(228d-e). 이 뜻하지 않는 실수가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정성스러운 독해 전체에 대해 부당한의문을 품게 만들지도 몰라 안타깝다.


김헌 서울대·인문학연구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수사학』 연구로 고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위대한 연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등이, 역서로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가 있으며, 그 외 “Isocrates’ Philosophy in Relation to Education”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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