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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기 느는데…외국 원작자, 인기배우만 수익
뮤지컬 인기 느는데…외국 원작자, 인기배우만 수익
  • 교수신문
  • 승인 2018.11.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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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국의 뮤지컬 전경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뮤지컬 티켓을 사고 싶은데 구할 길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연인즉슨, 올 연말 막을 올리는 디즈니의 흥행 뮤지컬 '라이언 킹'을 아이와 함께 보고 싶은데, 인터넷도 예매사이트도 구매가 도통 불가하다는 것이다. 평론가 부탁으로 구매를 할 수 없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기는 평론가라도 다를 바 없다. 티켓 예매가 오픈될 때 PC 여러 대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2018년 대한민국 공연가의 놀라운 풍경이다.

뮤지컬이 큰 인기다. '막만 올리면 돈을 번다'는 세밑 뮤지컬 공연가 풍경은 더욱더 뜨겁다. 장르와 내용, 형식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앞서 언급한,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모든 문화상품을 망라해서 가장 높은 티켓 판매고를 기록한 '라이온 킹'을 비롯해 영화를 원작으로 한 영국의 투어 뮤지컬 '플래시 댄스', 아동문학 작가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을 가져다 만든 로열 세익스피어 컴퍼니의 '마틸다', 개그맨 출신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주연으로 나오는 '팬텀', 시아준수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김준수가 제대하고 다시 무대로 컴백하는 '엘리자벳', 조승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지킬 앤 하이드' 등 정말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버거울 만큼 많은 뮤지컬이 한국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쯤이면 대한민국은 가히 뮤지컬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마탈다_When I Grow Up_photo by robin

그러나 시장은 팽창하지만 성장은 못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매일 밤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오빠부대'의 행렬은 갈수록 길어지지만, 정작 돈을 벌었다는 공연계 관계자는 만나기 힘들다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시장의 환경이나 구조나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엉뚱하게도 주인이 챙겨가는 문제가 있다.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많은 작품이 창작물이 아닌 외국의 수입 뮤지컬들이다 보니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인기 배우들의 출연료가 상승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를 띠기가 십상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돈을 벌어가는 사람은 외국인 원작자와 인기 배우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등장하는 이유다.

뮤지컬 공연장이 가진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 전체 뮤지컬 시장은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도, 개별 뮤지컬 작품의 수익구조는 악화되는 별난 상황 전개가 그 결과다. 이유는 간단하다. 뮤지컬 전용관을 건립하면서 너무 큰 객석 규모의 극장만 늘어난 탓이다. 뮤지컬의 메카라 불리는 미국의 브로드웨이나 영국의 웨스트엔드는 500석 이상만 되도 큰 규모 공연장으로 분류한다. 대형 뮤지컬이 올려지는 공연장은 대부분 1000석 남짓이다. 공연은 기간이 늘어날수록 가격이 탄력성을 지닐 수 있는 문화산업 분야다. 막을 올리기 전까지 들어가는 사전제작비인 프리 프로덕션 코스트, 즉, 극작료나 작곡료, 세트 제작비, 편곡료 등의 제작비는 고정비용들이지만 일단 막을 올린 이후에 필요한 비용, 즉, 프로덕션 코스트는 인건비나 대여료 혹은 유지보수비 등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공연기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수익구조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객석이 많다는 얘기는 하룻밤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극대화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사석(死席)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짧은 기간에 빠르게 많이 팔고 단기에 공연을 마쳐야 하는 부동산의 '떴다방'같은 환경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면 열 번째 남짓한 자리에 앉아도 뉴욕이나 런던 공연장의 맨 뒷줄에 앉은 듯한 시야와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한번 공연에 동원할 관객의 수가 많다는 의미는 대중 스타의 출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스타 마케팅에 올인해야 하는 환경적 요인도 그래서 잉태된 문제점이다.

관건은 작금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의 여부다. 일단 지금의 뮤지컬 전용관들이 지닌 문제점에 대한 효율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공적 성격의 공연장 중에 적합한 시설을 활용해 창작 뮤지컬 전용관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순수 창작물에 대해 부담이 적은 대관 비용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선별해 제작에 대한 펀딩이나 재정적 지원을 덧붙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모태펀드의 보다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운영방안을 구상해보는 것도 좋다. 특정 제작자나 콘텐츠에 대한 지원보다 환경 구축에 공을 들이고, 단계별 시장에 따른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영상물과 달리 무대를 근간으로 하는 공연은 소위 '담금질'을 할 기회와 시간이 배려돼야 한다. 세계적인 성공을 글로벌 흥행 뮤지컬들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등장한 콘텐츠라기보다 짧아도 수년, 길면 6~7여 년에 걸친 수정과 보완을 통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 과정도 제작자가 안주머니에 묵혀두었다가 느닷없이 꺼내 든 것이 아니라 때로는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또 때로는 관계자에게 검증을 받아가며 성숙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트라이아웃이나 프리뷰 제도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국적인 담금질 과정을 공공적 자본과 행정적 지원으로 모색할 수도 있다. 지역을 단순히 인기 콘텐츠의 소비시장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모색하는 방법이다.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같은 지역 축제에 창작 뮤지컬 작품에 대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지역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서울에서 흥행을 이룬 후, 글로벌 시장으로 활로를 개척하는 로드맵을 구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한류의 대안으로 공연과 대중문화 간의 유기적인 결합과 교류에 대한 실험과 시도가 절실하다. 21세기 글로벌 공연시장의 흥행 공식인 OSMU의 활용이다. '맘마 미아!'처럼 흘러간 대중음악을 가져다 무대용 콘텐츠로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 '라이온 킹'처럼 왕년의 인기 영화를 가져와 무대로 탈바꿈시키는 뮤비컬 등이 좋은 비교사례들이다. 한류의 위기를 말하지만, 우리는 원 소스의 효율적인 활용과 변신에 오히려 둔감한지도 모른다. K팝이나 한류 드라마는 이러한 변용의 중요한 자산이자 보고(寶庫)다. 발상의 전환을 고민해보기 바란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공연영상학과 교수 / 뮤지컬 평론가
한국외국어대에서 신문방송학으로 박사를 했다. 저서로는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등 다수가 있다. 대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관련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뮤지컬 동호회를 결성, 관극 운동을 시작했다. KMTV, NTV의 프로듀서와 스포츠투데이 기자, 파이낸셜뉴스 런던특파원을 거쳤으며, 주요 일간지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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