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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금 이 순간의 마법
뮤지컬, 지금 이 순간의 마법
  • 교수신문
  • 승인 2018.11.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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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춤·무대·배우·관객, 뮤지컬을 만드는 5가지 요소

뮤지컬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로 시작되는 노래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이 바리톤 배우가 절규하며 부르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대표 넘버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은 국민 뮤지컬 곡이라 불릴 정도다.

뮤지컬은 뮤지컬 코미디, 뮤지컬 씨어터의 약자다. 이름 그대로 음악극, 음악 코미디이다. 오페라와 오페레타가 음악이 주인인 드라마라고 한다면 뮤지컬은 음악, 춤, 연기, 무대 테크놀로지가 결합한 20세기형 종합예술이다. 사실 음악극은 극 전통의 가장 오랜 곳에 닿아있다. 신에게 춤과 노래로 인간의 두려움과 간절함을 표현한 제사에서 연극사는 시작됐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영화를 단체 관람하던 날을 기억한다. 작곡가는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정도만 알고 극장에 갔다. 근사하고 우아한 러브 스토리를 기대하고 객석에 앉아있던 나는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날 때까지 '대체 이건 뭐지' 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배우들이 아무런 대사도 하지 않고 다 같이 손가락을 튕기며 길바닥에서 군무를 추더니 목이 터지라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격정적으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출신 마리아와 이탈리아 이민자 토니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부르는 이중창 '투나잇'에 빠져들었고 제롬 로빈스의 멋진 안무에 손뼉을 쳤다.

나의 당황스러웠던 30분의 경험은 뮤지컬 장르의 핵심이다. 아무리 껄렁껄렁한 청소년들도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면서 단체로 춤을 추거나 목청껏 합창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욕에 적응하지 못하면서도 미국을 부러워하는, 청춘을 내놓고 즐기지 못하면서도 성인의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이민자 뉴요커 10대들의 폭발하는 에너지는 뮤지컬 관습(convention)만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춤으로 에너지를 표현하고 노래로 말하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관객을 설득하는 장치가 뮤지컬이다.
 
뮤지컬 매력의 처음은 음악이다. 지킬 박사의 간절함을 알지 못해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운 선율과 격정적인 멜로디만으로도 감동할 수 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쓰면서 '메모리' 한 곡을 쓰고 나서 흥행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씻어버렸다고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아름답고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을 썼다고 확신한 것이다. 뮤지컬 음악의 전형은 쇼튠 스타일의 세미클래식이지만 최근에는 로큰롤에서 힙합, 랩까지 당대 음악들이 다양하게 쓰인다.

다음은 춤이다. 오페라 시대의 춤은 전문 무용수의 역할이었다. 화려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삽입되는 부수적인 장치였던 춤은 뮤지컬에서 노래와 함께 감정을 고조시키고 줄거리를 전개하는 핵심 기능을 맡고 있다. <캣츠> 출연진들은 오디션 선발과 함께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무브먼트' 훈련을 오랫동안 받는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탭댄스, <시카고>의 끈적끈적한 안무는 뮤지컬의 주인공 그 자체이다.

화려한 무대 디자인과 테크놀로지는 또 다른 뮤지컬의 마술이다. 베트남전에서 퇴각하는 미군을 실어 나르던 <미스 사이공>의 대형 헬리콥터와 <오페라의 유령> 시작과 함께 극장 천정에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샹들리에는 이제 너무 당연한 장치가 됐다. 20세기 후반 뮤지컬이 대규모 투자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무대 디자인은 상상력과 테크놀로지의 결정체가 되었다. <라이온킹>은 2차원 평면의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깨끗이 지우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면극과 그림자극 전통에 익숙한 연출가 줄리 테이머를 통해 무대 테크놀로지를 극대화한 '수공업적 무대기술'의 최고를 3차원 공간에 펼쳐놓았다.

청춘을 내놓고 즐기지 못하면서도 성인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는 이민자 뉴요커 10대들의 폭발하는 에너지는 뮤지컬 관습만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음악과 춤, 무대 디자인과 놀랄만한 연출 기법은 배우를 통해 구현된다. 1980년대 이후 뮤지컬의 대형화가 진행되면서 배우들은 춤과 노래, 연기 세 가지가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하는 트리플 쓰렛(팔방미인)의 존재가 됐다. 대형 스크린에서 배우의 연기를 깊숙하게 만나는 영화가 배우가 아닌 감독의 예술인 것은 촬영한 순간순간들이 감독의 의도에 의해 새롭게 편집되어 만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과 같은 공연예술은 모든 연출과 안무,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를 현전하는 배우의 '몸'으로 만나게 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연출을 비롯한 모든 크리에이터들은 사라지고 배우만 무대에 남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극장에 현전하는 또 다른 존재는 관객. 지킬 박사가 '지금 이 순간' 넘버를 다 부르고 나면 다음 차례는 관객이다. 멋진 노래에 관객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대답한다. 이것은 또 뭔가. 지킬 박사의 엄청난 계획의 성공을 숨죽이며 지켜봐야 할 순간에 관객들은 박수로 흐름을 끊는다. 드라마는 멈추지만, 뮤지컬은 이어진다. 지킬 역의 조승우는 노래가 끝나면 잠시 호흡을 멈추고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즐긴다. 그리고 객석을 향해 지킬이 아닌 배우 조승우의 가벼운 미소로 만족한 사인을 보낼 수 있다. 다시 관객은 발을 구르고 그다음 장면 배우는 더 열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 연극도 관객과 호흡하며 만드는 장르이지만 뮤지컬의 관객 역할은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드라마는 멈추지만, 뮤지컬은 이어진다. 음악의 감동과 배우의 연기에 보내는 갈채는 계산된 연출이기도하지만 예측을 넘어서는 새로운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손안에서 우주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무대도 스마트폰 하나로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극장에서 뮤지컬을 무대에 등장한 배우와 수많은 다수와 함께 경험하는 것은 다른 세계이다. 티켓 값이 비싸지만 직접 극장에서 경험해보기 바란다. 손발이 오글거리듯 '투 머치'한 감정을 폭발시키는 뮤지컬의 매력은 극장 안에서 왜 '너무 넘치는 것'이 감동이 되는지 느낄 수 있다. '조선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는 명성황후의 노래는 여러분을 객석에서 일으키고 손뼉을 칠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 틈에 눈물 흘리며 나라 잃은 설움을 다시 겪지 않겠노라고 결심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웰컴 투 뮤지컬 월드!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연극전공으로 박사를 수료했다. 역서로 『뮤지컬 워크북』이 있다. 현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국립극단과 한국뮤지컬협회, 서울예술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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