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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가 꿈꾼 ‘공화제’는 무엇인가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가 꿈꾼 ‘공화제’는 무엇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18.11.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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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3.1운동과 임정 수립’ 학술대회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 한일역사문제연구소는 지난 21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국권 피탈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 한국이 공화제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조명하는 학술회의를 열었다. 학술회의 주제는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과 의의 - 사회진화론 비판과 공화주의 형성과정」으로, 재단이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진행한 기획연구 “3.1운동 전사(前史): 한국에서 사회진화론 비판과 공화주의 형성과정”의 다양한 연구 성과가 발표됐다.

1919년 4월 11일 반포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에서의 ‘민주공화제’ 선언은 역사적 사건으로, 발표자들은 3.1운동 당시 힘의 논리에 기반한 국제정치의 권력정치(Power Politics) 현상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그 대안으로 ‘정의?평화?인도주의’가 부각되었던 시대적 분위기와 정치체제로서 ‘공화주의’를 지향하게 된 과정을 다각도로 재조명했다. 

제1세션 ‘서구 사회진화론과 공화주의 사상의 전파와 한국 내 수용’에서는 구한말 이후 3·1운동 전까지 적자생존을 정당화한 사회진화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분석하고, 공화주의 개념이 한국에 소개·수용되는 과정을 논의했다. 「사회진화론과 공화주의의 동아시아 수용의 맥락」을 발표한 이병택 재단 연구위원은 한국에서의 공화, 민주, 민족 논리의 수립을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조명하면서 한국사회의 사회진화 논리의 결핍 현상에 대한 지적과 함께 혁명 논리의 생성과 그 문제점을 진단하였다. 이 연구위원에 의하면 "동아시아에서 공화주의 수용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고, 대체로 군주정의 대안적 정치체제로 이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임정의 민주공화제 선언은 구황실 우대 조항과 급진적 평등의 목소리를 함께 넣어 옛 왕조의 유산과 민주공화국의 미래 청사진이 기묘하게 뒤섞여 혼란스럽지만 한 목소리의 선언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김현철 재단 연구위원은 「구한말 개화파의 공화주의 인식과 20세기 초 계몽운동가들의 사회진화론 수용 ? 유길준과 장지연의 경우를 중심으로」란 주제 발표를 통해 1919년 임시정부가 임시헌장 제1조로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것 자체는 “역사적 사건”이라 평가하였다. ‘민주’와 ‘공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20세기 초의 시기에 헌법에다 ‘민주공화’란 표현을 쓴 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구한말이후 한국에서 서구 공화주의의 수용과 입헌정치체제의 지향」을 발표한 신철희 서울대 선임연구원 또한 그 당시 공화제란 ‘공공의 이익’보다는 “왕이 없는 정치 체제”라는 제한된 개념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왕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고 고종이 입헌군주제조차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서, 제 아무리 강력한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들이라 해도 공화제를 꺼낼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제2세션 ‘20세기 초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사회진화론 비판과 공화주의 인식의 양상’에서는 독립운동가에 초점을 맞춰 공화주의 인식의 다양한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20세기 초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사회진화론 극복과 평화사상의 형성」을 발표한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는 박은식, 이상룡, 신채호, 조소앙의 사례를 통해 구한말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비판 그리고 극복 과정을 소개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이들 독립운동가들은 그 과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으나, 1910년 국망 이후, 공통적으로 사회진화론적 힘의 논리를 배격하고 도덕주의적 평화를 지향했다. 그리고 힘에 따른 불법적 지배에 대한 무장 저항이 정의이며, 독립 이후의 국제질서는 모든 존재의 ‘평등’을 기반으로 한 세계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했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국제정세 인식과 ‘공화제’정부 구상」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해외 독립운동단체들이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해 ‘공화제’를 구상하게 된 과정을 살펴봤다. 윤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해외독립운동가들은 당시 국제정세가 독립운동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 대응방안으로 독립전쟁을 준비하면서 정치적 조직으로 공화제를 구상했다. 비록 잘못된 정세파악으로 이들의 독립운동 계획이 실패했으나 이 경험이 1917년 ‘대동단결의 선언’이 나오는 배경이 되었으며, 이후 1919년 4월 민주공화제를 정체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기존 3.1운동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던 파리강화회의나 민족자결주의 외에도 다양한 국제 정세의 영향과 당시 지식인 및 독립운동가들의 인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를 기반으로 하여 유례없는 평화 운동으로서의 3.1운동과 그 결과로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다양한 사상적, 지성사적 배경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학술대회는 국민의 복리를 위한 공공선을 함께 찾아가는 공화적 덕성으로 민주주의의 단점 극복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 시점에 우리나라 ‘공화주의’의 역사를 파고든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교수신문 편집국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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