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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퇴직교수의 사명
어느 퇴직교수의 사명
  • 심우경 고려대 명예교수·조경식재학
  • 승인 2018.11.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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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심우경 고려대 명예교수·조경식재학

이곳 원로 칼럼을 읽어 보면 대단한 고수님들이 많이 계셔 人間到處 有高手란 말이 실감 납니다. 칼럼 글을 부탁받고는 유식한 글을 쓰자면 밑천이 딸리니 어설프게 아는 채 하느니 차라리 진부하지만 퇴직 교수의 사명이 무엇일까를 제 나름대로 피력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판단했습니다.   

1967년 촌놈이 고려대 원예학과에 덜컥 합격해 촌티 나게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게시판에 산악부 모집 포스터를 보고는 여학생들과 하이킹 가는 줄 알고 입회했습니다. 하지만 매주 집회 때마다 야구 방망이로 얻어맞았고, 일요일마다 도시락 싸서 서울 주변 산으로 바위 타러 가는 힘들고 위험한 써클 활동을 2학년 때까지 이어갔습니다. 결국 성적 관리가 안 되는 바람에 2학년 2학기 때 ROTC 시험에 성적 불량으로 떨어졌습니다. 논밭 팔아 유학 보내주신 부모님께 죄송해 3학년 1학기 때 산악부를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당시 농대생들에게 최상의 취직은 농협에 들어가는 것이라 4학년 때 시험을 봤지만 낙방하고는 참담한 심정으로 대학원 입학시험만 본 뒤 군대에 갔습니다. 

제대 후 정신 차려 대학원에 복학해 다니는데 1학기 마칠 무렵 한 선배가 韓國綜合造景公社가 창립되니 시험 보러 가자고 원서를 가져와 영문도 모른 채 시험장에 갔습니다.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지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다행히도 50:1이 넘는 경쟁을 뚫고 합격해 조경설계부에 배치됐습니다. 대학 재학 시 造園學이라는 선택과목을 수강했지만, T자도 구경 못 한 형편이라 건축학과 나온 선배들로부터 기초 제도를 배우며 조경 설계를 하게 됐습니다. 1974년 8월 1일 창업식이 있은 직후인 8월 15일 육영수 여사의 피격으로 당장 동작동 국립묘지에 묘지를 조성하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떨어져 바로 현장으로 나가 측량 pole대 메고 뛰었던 경험도 있죠.

정부 일을 대행하는 국영회사라 국립묘지, 국회의사당, 국립공원 집단시설지구,  공업단지, 고속도로, 왕릉을 비롯한 전국 史蹟地 정화 등 엄청난 일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 열심히 일했습니다. 실무를 하면서도 꿈은 대학교수였는데 마침 전남대에서 조경학 교수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해 합격했습니다. 1981년 3월부로 전남대 전임강사 발령을 받고 근무하다가 1988년 3월 고려대로 옮긴 후 원예학과(후에 환경생태공학부로 바뀜)에서 조경식재학과 한국전통정원문화를 가르치다 2015년에 정년퇴직했습니다. 조경학과가 없는 대학에서 더부살이의 서러움을 많이 받았고 보직은 학과장 2년밖에 못했습니다. 물론 처장 제의도 있었고 국영기업체 감사 자리도 제의받았지만, 보직은 일체 사양하고 오로지 학생들 지도하고 논문 쓰다가 퇴직한 셈입니다. 학과도 없는 상황에서 석·박사 130여 명 배출했고, 한국전통조경학회 발기인 및 회장, 한국 식물·인간·환경학회 창립인 및 회장,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조경식재연구회 설립인 및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想像환경학회(Research Institute for Spiritual Environments; RISE)를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으며, 내년에는 삼천리금수강산 보전 국민운동 및 沈淸 孝文化연구원을 창립하기 위해 준비 위원장을 맡아 부지런히 뛰고 있습니다.

퇴직 후 동료들은 대부분 해외여행 다니고 골프 치며 취미생활을 즐기는데 소생은 퇴직 후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 이유는 교수로서의 사명감 때문입니다. 어느 대 선배님이 교수가 되는 데는 본인이 잘나서 된 것 같지만 국가의 엄청난 지원이 있었으니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꾸중하시는 말씀이나, 고 최태영 교수님은 법철학을 전공하셨는데도 85세에 우리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韓國上古史 공부를 시작해 『한국상고사』(유풍출판사, 1997)를 출간하시고 90세까지 학부 강의를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느낀 바가 커 일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아직은 교수 대접이 괜찮은 한국 사회에서 65세 정년퇴직하면 鷄肋 신세가 되니 억울하기도 하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사회에 쓴소리를 서슴없이 해야 하는 게 퇴직 교수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고향인 곡성에 혼자 살고 계시는 93세 아버님 진지 해드리며 저술 활동과 함께 고향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 너무나 행복합니다. 

 

심우경 고려대 명예교수·조경식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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