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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반감기가 짧아진 시대, 대학의 역할은?
지식의 반감기가 짧아진 시대, 대학의 역할은?
  • 양도웅
  • 승인 2018.11.26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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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대교협 주최_「2018 국제 교양교육 포럼-변화의 시대, 교양교육의 재발견」

“지식의 반감기,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절반이 무력해지는 기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7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짧아질 것이다.” 지난 2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국제 교양교육 포럼」의 첫 번째 섹션 ‘미래사회와 대학교육’의 좌장을 맡은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김용학 총장이 이끈 첫 번째 섹션에선 김도연 포스텍 총장이 ‘미래사회와 대학교육’을, 게오르그 크라우쉬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대 총장이 ‘미래를 위한 대학교육’을 기조 강연했다. 발표 후에는 토론과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 포럼은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진행됐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에서 많은 대학 관계자들이 참석해 ‘변화의 시대, 교양교육의 재발견’을 대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교양교육이라는 카테고리로만 묶을 수 없을 만큼 내용이 풍성했다.   

지난 2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국제 교양교육 포럼」에서 ‘미래사회와 대학교육’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 김용학 연세대 총장(左), 김도연 포스텍 총장, 게오르그 크라우쉬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대 총장(右). 사진 출처=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 길러야”

과거에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꽤 오랫동안 유용했다. 시대의 변화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회사가 곧 ‘평생직장’인 시대엔 그랬다. 하지만 지금처럼 직장을 자주 옮기고 심지어 직업(직무)도 빈번히 바꾸는 시대엔, 대학 4년 동안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을 논하는 것 자체가 궁색하다. 

혹자는 ‘그래서 대학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배움)이 여전히 인간과 사회에 불가결하다면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도 불가결하다. 단, 변해야 한다. 어떻게? 

이 물음에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결론적으로 대학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 혹은 배울 사람을 기르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김 총장은 배움을 단절된 것이 아닌 연속된 것으로,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교육을 강조한 셈이다. 흔히 말하는 ‘평생교육(배움)’의 자세를 갖춘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김 총장은 “SES 교육을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김 총장이 말하는 SES는 Social Emotional Skills(사회 정서적 역량)의 준말로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이해하고 다스리는 능력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는 능력을 총칭한다. 이 가운데 김 총장은 특히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강조했다. 왜 그럴까?

“평균수명이 100세로 늘어나 학생들은 이제 70~80년 동안 사회에서, 그것도 초연결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서를 다스리는 능력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지식과 함께 지혜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 총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SES를 위한 SES(Summer Experience in Society)”를 소개했다. 현재 포스텍은 여름방학을 기존 2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기업, 연구소, 사회단체 등에서 SES(사회 정서적 역량)를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총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방학 때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의 제언을 종합하면 이렇다. 사회가 빠르게 변한다는 건 우리가 관계 맺는 사람이 매우 다양해진다는 걸 말한다. 특히 초연결사회에서는 그런 관계 맺기가 언제, 어느 때든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학생이 대학에서 길러야 할 건 다른 사람, 혹은 모르는 사람과 관계 맺는 능력이다. 그럼 ‘평생 배움의 자세’는 곧 ‘평생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자세’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아울러 김 총장 제언의 근저(根底)에는 ‘배움은 홀로 불가능하다’가 있다.

“좋은 지식 가져야 좋은 질문 한다” 

평생 배우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는 김도연 총장의 제언에 크라우쉬 총장도 동의를 표했다. 그는 “이제 사람들은 90세, 100세까지 살기 때문에 평생 학습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게 교육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크라우쉬 총장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크라우쉬 총장이 강조한 건 ‘질문하는 능력’ ‘고민하는 능력’ 등이었다. 

“제가 현재 목표로 하는 건,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의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다. 바로 질문하는 능력,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 말이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문을 품고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양자 이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했다.”

이런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크라우쉬 총장이 고안한 교수법은 ‘Research Oriented Teaching’이다. ‘연구 중심 교육’으로 번역 가능한 이 교수법은, 학부 과정의 학생이 직접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연구실에서 석·박사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며 배우는 걸 말한다. 

이 교수법은 국내 여러 대학에서도 채택한 교수법인데, 크라우쉬 총장이 여기서 강조한 건, 이 교수법과 함께 으레 등장하는 창의나 통섭, 협동 등이 아니라 지식이었다. 그는 “이 시대의 교육이 지식 기반에서 (질문하는) 역량 기반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면서도 “좋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제 갓 입학해 특정 분야의 지식이 부족한 학생이 좋은 질문을 하고 좋은 연구를 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크라우쉬 총장의 지적은, 최근 창의력이나 통섭 능력 등이 지나치게 강조돼 배움의 기본 중 하나인 지식 습득이 다소 평가절하된 사실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배움의 시작점은 어디까지나 지식 습득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마인츠대학은 독일 대학 가운데 몇 안 되는 캠퍼스중심대학이다. 크라우쉬 총장도 이날 포럼에서 "아무리 IT기술이 발달해도 사람들은 직접 만나 소통하는 걸 바란다"고 말했다. 마인츠대학과 크라우쉬 총장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려다.  위는 마인츠대학에서 진행하는 교사 연수 프로그램의 모습. 사진 출처=http://www.uni-mainz.de/

뉴미디어, 수용해야 vs 경계해야

한편, 두 총장은 플로어에서 던진 뉴미디어를 활용한 교수법에 대해선 입장을 달리했다. 

김도연 총장은 “우리 대학과 교수들의 변화에 대한 무감각은 심각할 정도”라며 “현재 10대·20대는 활자가 아닌 동영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세대라는 점을 고려해 뉴미디어를 교육 현장에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총장은 “뉴미디어를 활용한 교육 현장을 만드는 데 교육부가 주도하지 못한다면, 우리 대학들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히려 이것이 대학이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크라우쉬 총장은 “뉴미디어는 가르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며 “위키피디아나 유튜브라는 도구를 통해 학생들이 과연 질 좋은 지식을 배우고 있는가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인츠대가 나치주의자에게 명예박사를 줬다는 잘못된 정보가 위키피디아에 실려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바로 시대 변화 속에서 교육이 함께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또 무엇일까. 현재 각 대학과 교수들이 답해야 할 질문 가운데 하나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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