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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총장실] 과감한 구조조정을 제안한다
[열린총장실] 과감한 구조조정을 제안한다
  • 정운찬 서울대 총장
  • 승인 2003.06.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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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미래는 바로 한국의 미래이다. 대학이 살아 움직이며 제 역할을 다할 때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 한국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왜 그런가? 대학은 사람들에게 지식·지혜·자긍심·자기통제력·사명감·타인에 대한 감수성·비판정신 등을 교육하여, 창의성을 계발하고 경륜을 키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과거 3∼40년을 뒤돌아보면, 한국의 대학은 선진과학이나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데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선진국가들과 지식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대학은 교수들이 외국대학에서 습득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역할로 충분했다. 학생들은 졸업 후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서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확산시켰고, 경제전체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자본과 자원이 모두 부족했던 나라에서 연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주요인 중의 하나는, 한국이 사람을 길러내는 데에 비교적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선진국가들과 지식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은 지식을 전수‘만’ 할 것이 아니라 창출‘까지’ 해내야 한다.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아직도 지식창출이 아니라 지식전수 중심대학으로 남아있다. 한국경제가 성장한 양상과 비슷하게 대학 역시 양적으로는 성장하였으나 질적으로 부실한 상태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한국경제는, 중복투자로 인한 과잉시설로 몸살을 앓아왔다. 실물부문에서는 수익률이 낮고 금융부문에서는 부실채권이 많이 쌓여왔다. 그 결과가 바로 1997년에 겪은 경제 위기이다.

대학도 그 동안 지속적으로 팽창하며, 한국경제와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교육시설부문에 과잉투자가 일어났고 대학생 수는 시설투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대학은 구조조정면에서 한국경제보다도 한 발 뒤쳐져 있다. 한국경제는 좋건 싫건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미진하나마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투명성도 상당히 제고됐고, 수익을 못 올리면 업계를 떠나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교육분야는 구조조정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한국에서 대학의 부실팽창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 근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경제와 마찬가지로 대학도 소위 ‘나도주의(me-tooism)’에 젖어 팽창을 계속해 왔다. 대학들은 '나도주의에 따라 다른 대학이 종합대학을 하면 우리대학도 동참해야 손해를 안 본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한국의 거의 모든 대학들이 커다란 종합대학이 되어버렸고 과잉규모로 고생하고 있다.

둘째, 대학도 한국경제처럼 규모의 경제 -좀 더 넓게는 범위의 경제- 를 과신했다. 규모의 경제란 규모가 커지면 기업의 단위당 생산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학은 이러한 논리에 따라 ‘대학을 키우고 학생 수가 많아지면 원가절감이 된다’는 생각에 집착해왔다. 그래서 대학은 계속 팽창노선을 걸어왔다.

셋째, 국가 정책목표에 따라, 대학은 사회의 장기적인 수요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기적으로 공급측면만을 따라 학생 수를 늘려왔다. 예를 들면, 정부가 고급 노동력이 부족하므로 공대의 학생 수를 늘리자고 하면, 한 대학이 공대 정원을 늘렸다. 그리고 다른 대학이 모두 따라 했다. 지방경제를 육성한다고 해서, 한지방에서 지방대를 키우니 다른 지방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학원 중심대학을 한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대학원생 수를 늘렸다. 우리나라의 대학원생수가 인구 1000명당 6.1명을 상회하는데 반해, 미국은 3.9명, 일본은 1.7명에 불과하다. 그 결과, 경제와 마찬가지로, 대학 역시 너무 커져서 좋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이 지식전수 단계를 넘어 지식창출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과도하게 팽창해 있는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다. 대학의 학생수를 줄이는 것을 포함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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