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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 호놀룰루 해변의 어느 쓸쓸한 노정객
[장병욱의 광장] 호놀룰루 해변의 어느 쓸쓸한 노정객
  •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 승인 2018.11.19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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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_⑫ 하와이에서 인터뷰

여기서 시계를 조금 빨리 돌려 ‘혁명 법정’ 이후의 상황으로 가보자. 4-19 유혈 진압의 책임자를 색출하자는 것이 재판의 목적이었다면 그 궁극적 범인이 이승만일진대, 권좌에서 축출돼 하와이로 쫓겨난 그를 국내 언론 최초로 인터뷰한 한국일보 기자의 1961년 5월 7일자 사회면 머리기사가 주는 감회가 새롭다. 언론사 간의 치열했던 경쟁을 뚫고 인터뷰를 따낸 기자를 치하하듯 그의 사진까지 이례적으로 넣었다. 그럼, 천천히 기사를 따라가 보자.

시내에서 약 10마일 떨어진 트리폴리 육군 병원으로 입원중인 이승만 박사를 찾아간 것이 지난 3일. 안내석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닥터 승만 리를 면회하러 왔다”고 이야기했더니 잘 생기지도 않은 이 여인이 기자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그분 면회는 누구를 막론하고 금지되어 있다”고 딱 잘라버리고 만다.

그러고 보니 이 박사가 작년 4월 학생 데모에 굴복하여 대통령 자리를 내놓고 부랴부랴 서둘러 극비밀리에 이곳으로 망명해 온 이후 미국 각 통신사 신문사 기자들이 수없이 찾아와 회견하려고 노력을 다했어도 성공치 못하고 돌아간 사실이 다시 기억된다. 약 1주일 전에는 이곳 지방 신문사 기자가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없는 틈을 타 겨우 박사를 만나 몇 마디 물어보려고 하던 찰나에 어디선지 부인이 나타나 그 기자에게 “말을 하지 말라”면서 이 박사를 다른 방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그 기자는 이튿날 신문에 프란체스카의 말을 욕하는 기사를 크게 실어 화젯거리가 되었을 정도다.

나는 이 못생긴 여인에게 다시 사정했다. “내일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데 오늘 꼭 좀 만나야겠다”고 몇 번씩 설명하니까 귀찮았던지 “그러면 3층에 올라가 오른쪽으로 있는데 제16병동 간호원한테 물어보라”고 하여 일단 통과를 시킨다. 한숨에 달려 올라가 간호부장인 소령을 만나 기자라는 것을 숨기고 면회 신청을 했더니 “아무도 못 만나게 되어 있는데 꼭 원한다면 부인에게 허가를 얻어 보겠다”고 하면서 옆에 서 있는 남자 중위에게 가 보라고 명령한다.  

조금 기다리니까 프란체스카 여사가 중위 뒤를 따라 나온다. 콧날이 오뚝 서고 쑥 들어간 파란 눈이 휘둥거리며 기자에게 가까이 온다. 묻기 전에 먼저 “미국으로 가는 도중에 들렀는데 잠시 뵈러 왔다”고 말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름도 묻지 않고 “저― 의사 지시도 있고 하니 너무 오래 이야기하지 말고 잠깐만 만나라”고 하면서 입원 중인 제388호실로 안내한다.

1950년 서울 수복 기념식 중 맥아더 장군과 악수하는 이승만 대통령. 프란체스카 여사도 보인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팀
1950년 서울 수복 기념식 중 맥아더 장군과 악수하는 이승만 대통령. 프란체스카 여사도 보인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팀

다시 침대 하나가 놓여 있는 어두침침한 병실을 지나 건너편 베란다로 나서니 바로 문 옆 벽 쪽에 이 박사가 마루 의자에 걸터앉아 앞에 전개된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짙은 하늘색 환자복을 아무렇게나 걸친 데다 솔솔 부는 바람으로 엉성한 백발이 몹시 초라하게 보이는 이 박사는 기자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그래, 어디서 왔나?”하며 좀 더듬으나 똑똑한 우리말로 묻는다.

안면 신경통 때문인지 한쪽 눈을 잘 뜨지 못하며 가끔 오른쪽 뺨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신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닷새 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일보 기잡니다”하고는 문득 기자라는 말을 꺼내버린 사실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부인은 방 안으로 들어가고 없어 한숨을 내뿜었다. 하기야 부인이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지만.

“저― 병환은 좀 어떻습니까?” “뭐 별로 염려할 정도는 못 돼…. 등에 무엇이 나서 그 치료를 하고 있지”하고 두 손으로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정은 요사이 어떻지?”하며 퍽 궁금한 표정으로 의자에 자리를 권하며 묻는다. “그저 잘 되어가고 있으나 봄철을 당해 세궁민(細窮民)들의 생활이 나빠져 무척 고생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참 어려운 고비일 텐데…”하며 멀리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그래 어떻게 해결책이 있겠나?”하며 연달아 묻는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을 풀어 국토 개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뭐 아직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자세히 듣는 이 박사의 두 무릎 위의 양 손가락이 자꾸 경련을 일으킨다. “유엔에서 미국 스티븐슨 대표가 한국통일 문제를 토론하는 데 북환 괴뢰를 참석시키자는 제안을 해서 국내외에 적지 않은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데요…”하고 환자에게는 좀 무리한 질문을 했더니 다시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대답을 하지 않는다. 5초, 10초, 20초 기다려도 말을 꺼내지 않는데 옆의 문이 열리면서 프란체스카 여사가 종이와 만년필을 가지고 들어와 기자에게 내민다. “이름과 직업을 적어 달라”고 한다.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보통 방문객을 거절하고 있으나 이렇게 면회를 한 분은 꼭 방명록에 기록한다”고 덧붙여 설명한다. 하는 수 없이 영어로 이름과 기자라는 것을 적어 보이자 갑자기 눈이 동그래지면서 놀라는 표정이다.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목소리를 가다듬어 ”하와이가 참 아름답지 않으냐“는 둥 엉뚱한 소리를 한다. “서울 소식 들으셨습니까?”하고 묻는 말에 “신문을 통해 들었는데 춘궁기 농촌 사정이 형편없다고요” 하며 선뜻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 박사에게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다. “본국으로 돌아가실 의향은 없습니까?”하고 불쑥 물었더니 진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아이 위쉬 투(돌아가야 하겠는데)”하고 이상하게 말끝을 흐려버린다.

이때 이곳 외과과장 휴스 박사가 와서 아침 인사를 하면서 “2~3일 안에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돌아간다. “퇴원하면 낚시질하러 해변에 나가시겠지요?”하고 이번에는 영어로 물었더니 이 박사는 껄껄 웃고, 부인이 가로채 “이젠 낚시도 안 한다”고 대답한다. 녹색 원피스를 젊은이처럼 차려입은 프란체스카 여사는 벌떡 일어나 베란다 가장자리에 놓인 대여섯 개 되는 화분을 가리키며 “이 꽃은 브라질산인데 참 비싼 겁니다. 예쁘지요?” 하며 울긋불긋한 꽃잎을 어루만진다.

대꾸도 하지 않고 일어서면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까 다시 한번 놀라면서 망설이더니 마지 못해 옆자리에 가서 나란히 앉으면서 “오픈 유어 아이. 오른 유어 아이”하며 극성스러운 소리로 감긴 한쪽 눈을 뜨려고 야단이다. 그러니까 억지로 왼쪽 눈을 떠 보이며 포즈를 취하는 그 모습…. 만 20년 동안을 두고 천하를 다스리던 독재자가 이제는 2천 마일이 넘는 태평양 한복판의 이 작은 섬으로 와서 이렇게 서글픈 생활을 하는 것이다.

상오 10시 20분 서울로 돌아갈 때, “또 들러 달라”는 이 박사의 당부를 뒤로 병원을 나오는 길에 병실을 살펴보니 작은 책상 위에 붓글씨로 표지가 씌어져 있는 작은 기록책과 두 세권의 이름 모를 책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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