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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을 택하는 책, 擇里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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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
  • 승인 2018.11.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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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완역 정본 택리지』 (이중환 지음, 안대회·이승용 외 옮김, 휴머니스트, 2018.10)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과)는 옛글을 학술적으로 엄밀히 고증하면서도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들에게 고전의 가치와 의미를 전해온 한문학자다. 그가 2012년부터 6년의 작업 끝에 200여 종에 이르는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 이본 중 선본 23종을 추려 교감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본 텍스트를 확정한 뒤 한글로 옮긴 ‘완역 정본 택리지’(휴머니스트)를 펴냈다.

조선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인문지리서로 꼽히는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남인 명문가 엘리트 출신이었지만 노론이 경종(景宗)의 독살을 기도했다는, 이른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에 휘말려 30대 나이에 죽을 지경까지 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축출됐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 이중환은 경제적 요건을 갖춘 지역을 최적의 주거지로 꼽고, 행정 중심지보다 경제 중심지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소개하는 등 끈질기게 ‘어디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답을 던졌다. 그는 전 국토를 지역과 주제로 나누고 행정과 교통, 물산, 풍속, 인심, 역사, 인물, 산수 등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특히 살 만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기준을 농지의 비옥함, 물자의 유통, 교통의 편리함, 특용작물의 생산, 시장의 활성화 등 실리적인 요건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처럼 그는 『택리지』에서 자신이 겪은 고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택리지』는 국가가 국토지리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 개인이 지리를 논했다는 점에서 아주 획기적인 저작이다. 이전의 지리서는 모두 관이 주도해서 나온 관찬 지리서로서 18세기 이후 크게 바뀐 조선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했다. 반면 『택리지』는 당대의 산업과 교통, 문화의 구체적 현실과 변화된 실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팔도의 정치와 역사, 경제와 사회, 문화와 전설, 산수와 명승 등을 인문·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평론한 이중환 개인의 독특한 관점이 잘 드러나 있어 인문지리의 명저로 꼽힌다.

‘어디서 살아야 하나’라는 실존적 문제를 담고 있는 『택리지』는 궁극적으로 당파와 차별 없는 사회를 희구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중환이 가장 주안점을 둔 기준은 바로 생리(生利)였다. 생리란 생계를 유지하고 생명을 지키기에 적합한 장소가 최적의 거주지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택리지』의 원래 이름은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 즉 ‘사대부가 거처할만한 곳’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조선 천지에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이 없다”는 『택리지』의 결론에는 지식인의 절망감과 자괴감이 드리워져 있다. ‘예(禮)는 부(富)를 쌓지 못하면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당대 조선 현실에 대한 처절한 토로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국토 원형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한국 고전의 당면과제로 정전화(正典化)와 정본화(定本化)를 든 안대회 교수는 정확한 판본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연구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라 지적한다. 정본화 작업은 고전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초이자, 제대로 된 학술연구와 역주 작업을 위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번역된 『택리지』는 거의 1912년 최남선이 편집·간행한 광문회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광문회본은 수많은 이본 중의 하나에 불과해 대표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오탈자나 후대 첨가된 이야기 등이 적지 않았으며, 최남선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내용을 일부 편집하기도 했다.

『완역 정본 택리지』는 지금까지 잘못 통용되어온 편목과 구성을 원본에 맞게 고치고, 내용상 잘못된 부분을 상당수 바로잡아 최초로 정본화 작업을 수행한 결과물로서 문장가로도 이름을 떨쳤던 이중환의 글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는 한편, 최대한 한자어를 풀어쓰고 이해하기 쉽게 부연 설명을 달아 택리지 본연의 텍스트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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