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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전략 필요…일본, 영국 사례 '타산지석'
치밀한 전략 필요…일본, 영국 사례 '타산지석'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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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대학 구조조정과 M&A 방향' 논의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원탁회의

대학 M&A, 임시방편으로 활용 말아야…합리적 목표 설정 관건 "교수들의 대학간 이동에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대학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추진하면, 반대에 부딪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출연재산을 설립자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사립대의 통폐합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지난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원탁회의에서는 대학가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대학의 구조조정과 M&A'가 다뤄진 만큼, 박용수 강원대 총장, 신극범 대전대 총장, 송봉섭 한국대학법인협의회 사무총장 등 이해를 달리하는 국·사립대 총장, 법인협의회 사무총장, 재계·언론계 인사들의 미묘하게 엇갈린 주장들이 장시간 이어졌다.

미증유의 학생 모집난과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 구조조정과 M&A가 불가피하다는 데 모두들 공감했지만, 그 대안들이 각기 달랐다. 비슷한 학과(부)로 이뤄진 국립대간의 통폐합은 교수·직원·학생·지역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사립대의 퇴출 경로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립대 보다 국립대간의 과감한 통폐합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교수·직원의 인력 감축이 용인돼야 제대로된 대학간 통폐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 뒤에는, 학내 구성원들의 극심한 반발로 구조조정에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는 이견이 제시됐다. 그만큼 대학 구조조정과 M&A는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이미 다른 대학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대학간 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대학도 나름대로 '통합 후유증'을 겪고 있기도 하다. 영산대·부경대 등 대학간 통폐합을 추진한 바 있는 대학 교학·기획처장들이 이날 원탁회의에서 입을 맞춘듯 '치밀하고도 장기적인 전략에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 명확한 통폐합 사유, 뚜렷한 교육목표, 가시적인 통합 기대 효과 등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학 구조조정과 M&A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통폐합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될 수도= 지난해 통합에 성공한 영산대는 동일 법인내에 있는 4년제 대학과 2년제 전문대가 통합한 사례에 속한다. 영산대와 성심외국어대학과의 '정원 감축형 통합'을 추진한 이 대학은 현재 학생정원 감축과 교원수의 증가로 인건비 비중이 급증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교원확보율 107.6%, 교수확보율 155.3%, 교지확보율 169.7%에 이르는 등 교육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박도영 영산대 교학처장은 "총 정원이 감축됐는데도, 교육부는 4년제 학생 정원의 증원으로 보고 통합인가 기준을 높이 책정했다"면서 "앞으로 4년제와 2년제간의 통합을 '증원'으로 보는 교육부의 시각은 통합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 등 4년제 국립대간의 통합을 추진한 부경대는 1996년 통합 이후, 우수한 학생 유치, 지역내 인지도 제고, 예산 규모 확장 등으로 통합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본 대학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상에 어려움도 많았다. 교수·직원·학생·지역주민에서부터 지역 대학에 이르기까지 주위 반발이 극심했고, 결국 교육부로부터 교수를 줄이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고서야 통합이 겨우 추진됐다. 예산 배정, 공간 조정 등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중간에 통합을 추진했던 기획처장단이 사임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을 결정하기 위해 7차례의 교무회의를 거쳤지만 아직까지도 정하기 못했다.

정형찬 기획처장은 "인원 감축이 없다고 해도 구조조정에 대한 불신이 학내 구성원들의 집요한 반발로 이뤄지는 것이 대개의 경우"라며 "양 대학 구성원들 모두에게 통합의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뒷받침돼야 통합에 성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원감축보다 상호 기능보완에 초점=가까운 성공사례로 일본의 국립대 통합을 보자. 박용수 강원대 총장은 "일본의 국립대 통폐합이 활발한 이유는 일본 국립대들이 기능적으로 분화돼 있어 통합이 용이했다는 측면도 있지만, 통폐합의 목표가 대학수 축소나 인원감축에 있다기 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각 대학의 기능을 최대한 상호 보완하고자 하는 목표 내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학의 위기를 임시방편적으로 해결하려는 수준에서 구조조정과 대학간 통폐합을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끝모를 갈등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난 1996년부터 대학 통합을 적극 추진한 영국의 '구조조정 및 협력기금 지원 기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은 △통합방안이 한 기관만이 아닌 학생과 두 기관에 모두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 △고등교육기관이 스스로 변화에 대처할 만한 자원을 갖고 있는가 △통합으로 직원들간의 중복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는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방법은 있는가 등을 '통합 추진 대학 지원 기준'으로 마련해 놓고 이에 따라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충분한 사전 준비와 장기적인 발전 목표, 합리적인 이유가 전제될 때에만이 통합이 실질적으로 가능하고 효과도 크다는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대학의 '위기'의 대학 개혁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인력감축과 인건비 삭감 등 미봉책일뿐인 구조조정을 통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발상과 출연재산의 절반만이라도 환수받는다면 장사가 안 되는 대학 교육에 손 떼겠다는 사학의 교육철학은 '대학 구조조정과 M&A'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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