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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대명사이자 ‘곡식밭의 암’
잡초의 대명사이자 ‘곡식밭의 암’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8.11.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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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10. 바랭이

세상에 나는 잡풀 중에서 가장 검질기고 악질인 것이 바로 바랭이란 놈이다. 그리고 김을 매고 뒤돌아보면 잡초가 꽁무니를 뒤따라온다는 말이 있다. 잡초가 득시글득시글 금세 자란다는 뜻일 터이다. 암튼 우리 몸에도 바랭이 잡풀 같은 고약한 암세포가 생기는 수가 있다.

사실 지난 한여름에는 20여 일을 병원에서 지냈다. 건강검진을 받느라 밥 굶고, 위와 대장을 홀랑 비워 내시경으로 속을 들여다본다. 대장은 5년 전처럼 茸腫(polyp)이 없었으나 위가 까탈을 부린다. 지름 2cm에 못 미치는 조기 위암은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ESD, endoscopic submucosal dissection)’이라는 시술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는 내시경을 통한 조기 위암 시술법으로 위벽 암 조직 하부에 약물을 주입하여 조직을 부풀려 붕 뜨게 한 후에 특수 내시경으로 들어낸다. 말해서 병변(病變) 주위를 생선회 뜨듯 벗겨내는 시술이다. 지금 와서 이렇게 남 이야기하듯 하지만 누구나 입원한 환자들은 이만저만 서럽고 불쌍할뿐더러 서로 同病相憐하는 마음 그지없다.

처음엔 ‘癌(cancer)’이란 말에 기절초풍했지만 알고 보니 조기암이라 깨끗이 치우고, 경과도 좋아 안심을 한다. 그러던 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하게 배앓이를 해서 CT(컴퓨터 단층촬영, computed tomography)를 찍어보니 커다란 膽石(gall stone)이 담관(쓸개관)을 틀어막고 있지 않는가. 담낭(쓸개)을 떼 낸 지 20년이 넘었고, 또 10년 전에 담석을 들어냈는데도 또 담석이 생겨서 난리를 피운다. 죽어 화장하면 사리가 될 담석이.

이렇든 저렇든 간에 어떤 액운을 넘기거나 다른 고생으로 대신 겪는 일을 땜이라 한다. 다른 말로 앞으로 닥쳐올 나쁜 운수를 미리 다른 고난을 겪어서 대신할 때 수땜이라 한다. 그럼 그렇지. 올해 내 나이 79살이라 ‘아홉 수땜’하느라 개고생을 했나 보다.  

‘곡식밭의 암’이라 할 수 있는, 잡초의 대명사인 검질긴 바랭이를 보자. 바랭이(Digitaria ciliaris)는 외떡잎식물, 볏과의 한해살이풀로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산들에 자생하는 푸새이다. 잎(葉身)은 길쭉한 바소꼴(線狀披針形)이고, 길이 8~20cm, 나비 5~12mm로서 연한 녹색이며, 양면에 털이 있고, 가장자리는 물결치듯 하면서 껄끄러우며, 어긋나기(互生) 한다. 밭이나 평지의 길가·해안모래언덕(砂丘)·묵정밭 등지에 난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아주 거친 종이라 한 포기만도 사방 1m를 덮을 정도로 자라고, 따라서 미국 등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서양에서는 일부러 잔디밭처럼 널찍하게 심어서 헬리콥터 이착륙장을 만들기도 한단다.

바랭이(tropical crabgrass)는 매우 건조해도 살아남는, 수분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는 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바랭이屬에는 바랭이·민바랭이·좀바랭이 3종이 있다. 그중 바랭이가 가장 흔하고, 줄기는 벼처럼 속이 텅 비었으며, 약간 반질거린다. 땅바닥을 기면서 줄기가지를 뻗고, 괴팍하게도 줄기 마디에서 헛뿌리(不定根)를 내어서 40~70cm 높이로 곧추선다.

바랭이. 사진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바랭이. 사진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해마다 판판이 속으면서도 썩혀 거름이나 할 요량으로 애면글면 맨 바랭이를 밭둑이나 고랑에 모아둔다. 그들 중 땅바닥에 닿은 놈들이 살아남아 다시 손도 못 대게 세력을 펼쳐 바랭이 밭을 이루니 놈들을 시쁘게 여겼다가는 큰코다친다. 그러므로 바랭이는 뽑아서 멀리 밭가에 버려버리는 것이 상수다. 줄기가 온 사방으로 뻗고, 줄기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양분을 빨아 제칠뿐더러 땅바닥에 착착 달라붙어 매기 힘들다. 길길이 자란 바랭이는 줄기를 두 손으로 붙잡고, 이를 앙다문 채로 체중을 다 실어 대들어도 힘에 부치는 판이다.

꽃은 8~9월에 피고, 작은 꽃 이삭은 길이 3mm 정도로 연한 녹색 바탕에 자줏빛이 돈다. 바랭이 꽃대는 늦가을 볏논에서 잡은 벼메뚜기 목을 끼는데 안성맞춤이다. 길고 질긴 꽃줄기를 쑥 뽑아서 메뚜기의 가슴(목)을 꿰는데, 그때마다 입에서 토해낸 황록색 진이 손에 물을 들인다.   

여름 한 철 병원에 머물렀던 동안에는 물론 밭일을 손 놓고 있었고,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정신없이 병마와 싸울 적에는 아무 생각도 없다가 조금 살만해지니 마침내 밭 걱정이 나더라.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 왔다. 힘 빠진 다리로 맥없이 터벅터벅 걸어 밭에 이른다. 사방을 둘러보니 이만저만 몰라보게 자란 바랭이에 눌려 곡식들이 처참한 꼴을 하고 있다. 여러 잡초끼리도 피 터지게 싸움질을 하니 바랭이가 가장 거칠어서 優占種(dominant species, 식물군집 안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종)으로 온통 제 세상이다. 

입원하느라 한마디로 남새밭은 쑥대밭이 됐다. 비닐을 씌운(mulching) 고구마와 고추밭을 제하고는 모두 바랭이가 차지했으니 마디호박·수박·참외 등 어지간한 따위들은 모두 바랭이에 파묻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결딴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바랭이가 가슴팍까지 길길이 자란지라 범 새끼 치게 생겼고, 멀칭(덮기)하지 않은 곡식들은 한마디로 처참하게 몰살되고 말았다. 

“곤충 벌레와 잡초가 사람의 천적이다”란 말이 참으로 실감 났다. 늘 하는 말이지만 해충 잡는 농약과 풀 죽이는 제초제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래서 밉상 취급받는 이 두 가지는 최고로 알아주는 문명의 산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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