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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웅신화 탐험하며 오늘의 우릴 되짚다
옛 영웅신화 탐험하며 오늘의 우릴 되짚다
  • 이선아 서울대·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18.11.12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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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귀환은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힌 부분이다. 기꺼이 이 일을 맡든, 어쩔 수 없어서 맡게 되든, 우리가 영웅의 행위를 이해하자면 이 잊힌 부분의 탐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중에서 언급한 이 말은 오래전 신화 속 영웅의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요즘의 나에게 미노스의 미궁 속 실마리처럼 아련하면서도 든든하게 다가온다. 

지난해부터 몽골 민족의 영웅서사시 「게세르칸」의 전승 자료 연구를 중심으로 한국연구재단에서 박사후국내연수지원사업을 수행하며 그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북방 유목민의 신화 현장들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었다. 다른 잡다한 근심 걱정 없이 온전히 자신의 연구에만 매진할 기회가 연구자 평생에 몇 번이나 찾아올까? 그만큼 이 연구를 수행하는 2년이라는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나의 이 행복한 탐험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수록 해답을 찾아가는 탐사가 아니라 오히려 정처 없는 모험으로 변해가는 듯했다. 지상세계에 내려와 치열하게 살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영웅들의 땅과 그것을 대대로 기억하는 지역 이야기꾼들을 대면하면서 그 신화적 생생함은 강렬해졌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당황하는 내가 보였다. 환상과 마법으로 채워진 상징의 화법 안에 감춰진 신화의 실체와 마주할 때 드는 첫인상이 당혹감일 것이라는 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현장에서의 신화는 기존에 내가 믿어왔던 신화와는 너무 달랐다. 신화가 정작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상은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곳이며, 인간을 수호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왔다는 영웅은 알고 보면 너무나 볼품없고 때로는 나약하기까지 했다. 명쾌했던 신화적 신념은 지금은 알 수도 없는 누군가에 의해 우상화되고 왜곡된 이상이었음을 목격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런 방황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그렇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원론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며 이미 정해진 영원불변의 답은 애당초 없다는 것을 각성하게 된 오늘날 우리···. 이런 당혹감은 현대인의 정체성을 되묻고 탐색하는 문제와 직결되며, 나아가 시대적 당면 과제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탈-경계, 초연결 시대에 적응하는 인문학적 담론이 절실하게 제기되는 지금, ‘구술문화’ ‘민속문화’ ‘무형문화’ ‘문화원형’ 등의 표제어와 함께 아직 제대로 발굴되지 않은 ‘살아있는 원형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토속적 이야기와 역사, 컨템포러리를 한 데 융합한 환상적 리얼리즘을 표현해 노벨상을 받은 중국의 작가 모옌의 경우처럼 ‘살아있는 원형 문화’의 가능성은 한층 더 시사되고 있다. 특히 북방의 영웅 신화처럼 다채로운 모습으로 날것의 원형성을 갖춘 문화가 제 모습 그대로 소통하는 순간, 치열하게 방황하는 현대인은 어느새 미궁과 같은 비극적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오히려 동병상련의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답을 찾은 테세우스처럼 미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애초 신화 속 영웅들은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낯선 황무지를 새로운 터전으로 다시 일궈야 하는 오이라드 민중을 표상화한 영웅 ‘장가르’처럼 유구한 역사를 관통하면서 늘 민중의 비극과 함께했던 평범한 우리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선아 서울대·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고려대에서 「단군 신화」와 몽골의 「게세르칸」 영웅서사시의 신화적 성격 비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북방신화에 대한 자료 발굴과 조사 분석을 통해, 그 현대 문명에서 갖는 의의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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