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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연(硏) 40여 년
혼연(硏) 40여 년
  • 전효택 서울대 명예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
  • 승인 2018.11.1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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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전효택 서울대 명예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

나 홀로 즐기는 삶을 표현하는 ‘혼밥’이나 ‘혼술’이라는 용어가 있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술 마시기’라는 나 홀로 문화를 뜻한다. 

나는 대학에서 40여 년 연구실 생활을 하였으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혼연(硏)한 셈이다. 연구실에는 무엇이 있을까. 연구실 양 벽 사이즈에 맞게 제작한 책장에는 전공 원서와 석·박사 학위 논문, 학술지와 파일 박스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이외 소형 오디오 및 CD, 암석 광물 관찰용 편광현미경이 사이드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편광현미경은 암석과 광물의 감정에 이용하며 현미경 시야에 보이는 현상을 사진 촬영하기도 한다. 현미경 시야에서 보이는 광물 결정의 모양과 조직, 간섭색의 아름다움은 마치 추상화를 보는듯하여 화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정도이다. 

클래식에 취미를 가져 책장 사이에 넣을 수 있는 소형 오디오를 구입하였다. 조금이라도 용돈 여유가 생기면 CD를 구입하였다. 클래식 감상의 처음 시작은 단순하고도 가볍고 즐거운 모차르트였고 차츰 베토벤, 브람스, 슈만, 슈베르트, 브루크너, 차이콥스키 등으로 옮겨 갔다. 테너와 소프라노 성악곡을 좋아하였으나 합창곡은 별로였다. 클래식에 대한 전문 지식은 많지 않음에도 CD 구입에 욕심을 내며 여러 해 과다 지출을 하였다. 연구실 의자에 기대고 앉아 십여 분 이상 듣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곤 하였다.

학생들이나 방문객과의 면담은 사이드테이블에서 서로 마주 보며 하곤 하였다. 연구실이 상담이나 면담에 좋은 점은 약 일 미터 폭의 사이드테이블을 경계로 떨어져서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점이다. 전화보다는 대면하여 대화를 이끌고 상담함이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기 쉽고 진정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년 전 정년을 맞이하며 연구실을 비워 주었다. 전공원서, 행정 서류, 보고서, 학회지, 과제물, 출석부와 성적 평가 자료, 암석 광물 시료 등이 이 작은 여섯 평 공간에 이렇게도 많은가 놀라울 정도였다. 심지어는 이런 자료나 책자도 가지고 있나 할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요즈음은 이미 출간된 학회지나 보고서가 모두 파일로 되어 있어 굳이 공간을 차지하는 종이 책자가 필요 없어진 시대이다. 연구실의 많은 책과 자료들을 옮기려면 같은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고 이삿짐으로 옮긴다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가장 큰 결정은 과감하게 미련을 버리고 폐기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대학 정년 이후 중소기업체에서 전공분야의 상임고문을 맡으며 개인 사무실 공간을 배정받아 근무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내 개인 사무실 공간의 경계는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사원들과 함께 넓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서로를 항상 볼 수 있다. 교수 연구실은 독립된 공간이어서 그 안에서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음악 감상이나 독서 등 취미생활의 여유도 있고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혼연 생활은 특별하게 주어진 나 홀로의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교수 재직 시절에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혼연의 특수한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모교에서 마련해 준 명예교수실 공간에서 서너 분의 교수님들과 함께 생활하며 과거 혼연의 고마움과 혜택을 감사하고 있다.  

 

전효택 서울대 명예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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