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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돌아오지 못할까? 
그들은 왜 돌아오지 못할까? 
  • 양도웅
  • 승인 2018.11.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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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동북아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문제 해결 위한 국제심포지엄」 열어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는 단순치 않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받은 이춘식 씨처럼 일제가 패망한 뒤 조선으로 돌아온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있고, 일제 패망 전 일제가 지배하던 지역에서 노동자·군인·군무원 등으로 강제노역하다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있다. 

이 문제는 한국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일제가 식민지로 삼았고, 삼으려 했던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다. 이번 한국 대법원판결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기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 대법원판결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에 나서지 않는 국가들의 태도를 바꿀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동북아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가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문제 실태 및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특히 군인·군무원으로 복무한 이들의 유골 송환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한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발표가 예정돼 있어 개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심포지엄 참가자들은 우선 유골 문제의 역사적 경위를 논의했다. 일제가 조선인을 포함한 식민지인을 대대적으로 강제 동원한 건 태평양전쟁(1941~1945) 때문이었다. 따라서 동원된 사람 대부분은 군대 소속이었다. 그들은 당시 차별받는 조선인이었지만, 국적은 엄연히 일본이었다. 국적이 일본인 상태에서 그들은 전쟁하다 전사했다. 이후 일본은 패망했고, 일본의 식민지는 독립했다. 문제는 이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다. 

남상우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은 “유골 문제는 일제가 국가 정책에 따라 조선인을 군인·군무원으로, 노동자로 강제 동원했음에도, 전쟁 종료 후 국적이 바뀌었다는 이유 등으로 유골을 유족에게 돌려주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여러 전쟁터에서 사망한 조선인 군인·군무원은 명부상 2만1천919명인데,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한국 정부를 통해 송환한 유골은 4천5백여 위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 일본 정부가 제정한 ‘전몰자의 유골 수집 추진에 관한 법률’은 대상을 일본인으로 한정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유골 문제를 둘러싼 어려움 중 하나는 사망자가 어느 나라 사람이었느냐는 질문 때문”이라며 “사망 시점과 발굴 시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은 이 맥락에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 위원은 “하지만 국가 변동 등의 여러 변화가 있었다 해도, 더 이상 자국민이 아니라고 방치하는 것은 국제인도법, 국제인권법 등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따라서 최근 강제동원 피해자 4인에 대한 한국 대법원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한 日 아베 총리가 오히려 국제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유골의 모습. 오른쪽은 전투 중 잠시 몸을 숨긴 병사가 불행히도 포탄을 맞고 사망한 상태 그대로 발견된 유골의 모습이다. 두 사진 모두 일본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구시켄 다카마쓰 씨가 유골 발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유골의 모습. 오른쪽은 전투 중 잠시 몸을 숨긴 병사가 불행히도 포탄을 맞고 사망한 상태 그대로 발견된 유골의 모습이다. 두 사진 모두 일본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구시켄 다카마쓰 씨가 유골 발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위 유골의 주인이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손 놓으면, 한국 정부도 놔야 하나

유골의 국적 문제 외에 유골 송환을 어렵게 하는 건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이다. 조약의 4개 부속 협정 중 하나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일본은 한국에 3억 달러의 무상자금,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했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배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입장이다. 유골 송환 문제 해결도 자신(일본 정부)을 탓할 게 아니라 한국 정부를 탓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탓이 마냥 없는 게 아니다. 이춘식 씨 등의 판결을 지지부진하게 만든 건 한국 정부였다. 일본 정부가 아니었다.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다케우치 야스토 씨는 “한국 정부의 일제강점기 희생자에 대한 사후 처리는 소극적이었다”며 “한국 정부 내에 외교통상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의 벽을 넘은 전문 담당 조직을 꾸릴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이미 발굴돼 현재 일본 내 절에 보관된 유골의 미반환 문제는 일본 정부의 책임이기보다 한국 정부의 의지 부족이 초래한 결과”라며 “한국 정부의 조속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6년 10월 국민 생활 보장과 향상을 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의 시오자키 국무대신은 한국과 미국 병사의 유골 발굴 및 송환 문제에 대해 “출신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대응을 검토해야 하는 입장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만약 한국 정부 등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이를 검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1년여가 지난 올해 2월 한·일 양국 시민단체가 문의했을 때도 후생노동성은 “재일 한국인, 조선인의 DNA 감정 신청에 대해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제안이 있으면 검토한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위안부 합의 전면 재검토,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으로 설령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에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해도, 우리 정부가 마냥 일본 정부의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어선 곤란하다. 일제강점기는 강해진 국력을 이웃 국가에 잘못 사용한 일본 정부의 책임도 있지만, 이웃 국가만큼의 국력을 키우지 못해 자국민을 몇 대에 걸쳐 희생시킨 한국 정부(정확히는 조선의 왕과 관료들)의 책임도 마땅히 있기 때문이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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