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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학술서 형식의 역사와 오늘
기획 : 학술서 형식의 역사와 오늘
  • 전영표 신구대학
  • 승인 2003.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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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편집형식은 어떻게 등장했나

책은 내용이 핵심이고 형식은 부속물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책을 책답게 만드는 건 오히려 책의 형식이다. 내용이 끊임없이 자유로운 상상력에 추동되면서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원심력에 지배된다면, 책의 형식은 그런 내용을 안으로 모아주는 구심력을 발휘한다. 형식은 내용을 진리의 자율적 체계성과 완결성으로 표현해준다. 이런 위력은 사유의 건축술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머리말과 각주, 찾아보기와 책날개 등은 모두 이 건축물을 지탱하는 골조들이다. 그래서 책의 기초적인 형식은 사회적 약속으로 제도화돼 있다. 요즘은 이런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않거나 변형시키는 책들이 많다. 없애고 바꾸더라도 그것의 원래적 의미와 기능을 생각해보는 일은 필요하다.[편집자주]
 
전영표 / 신구대학, 출판학

정보시대를 맞이하면서 책의 존재가 위협을 받고 있다. 종이책에 대한 미래의 전망이 어둡고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책의 기능에서는 종이가 아닌 또 다른 매체가 등장한다고 해도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하나의 지식 정보의 전달 수단으로서의 책과 같은 기능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어떤 형태의 매체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정보시대의 진입에서 빚어진 가장 큰 문제점은 전달 속도나 양적인 증대와 반비례로 이해와 숙지라는 차원에서 크게 뒤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가 있다. 거기에는 전자에 의한 편집의 무질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책이 동과 서를 막론하고 표지와 목차, 텍스트 등을 통해 편람이 쉽고 판독과 이해가 용이하도록  편집돼 왔기 때문에 오늘의 진전된 학문 세계가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다.

책은 발행 국가나 사용 기능에 따라 편집이 다를 수 있지만 주석과 참고문헌 등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학술도서는 크게 다를 수가 없다. 그것은 학문의 연구 결과를 전 인류가 공유하고 누구나 쉽게 검색하게 됨으로써 그 편집 표현의 형식적 원칙과 통일된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중세의 학자들, 인쇄술 익혀 스스로 편집, 인쇄해

책은 내용과 외형으로 편집 형식을 구분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원고를 작성하는 저자의 몫이고 외형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 컴퓨터의 활용으로 누구나 쉽게 책을 만들 수 있게 됐으며, 앞으로는 저자 스스로가 책을 직접 편집 제작해야만 할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이미 학자들은 원고 작성시 거의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중세의 학자들이 인쇄술을 직접 익혀 손수 편집은 물론 인쇄까지 했던 역사의 되풀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세의 인쇄인들을 '스콜라 프린터(scholar printer)'라 칭하기도 했었다.

영국은 일찍이 1864년 런던신문교정자협회의 하트(H. Hart)에 의해 처음으로 인쇄 조판인과 편집교정자가 참고해야 할 기초적인 편집 용어와 룰인 '인쇄소 규칙(The Rule of House)'을 마련했다. 그는 1883년에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국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이를 다시 체계화해 그 10년 뒤인 1893년에 이르러 '조판인과 독자를 위한 하트의 원칙(Hart's Rules for Compositors and Readers)'이라는 인쇄·편집 규정의 매뉴얼 북을 옥스퍼드대 출판국에서 발간했다.
이 원칙은 학술서적의 '인쇄헌장'처럼 영문 논문 작성의 매뉴얼로 오늘까지도 학술도서의 인쇄편집의 규범처럼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의 부록에 게재한 '조판·편집 원칙(Rules for Composition and Make-up)'에서는 각주와 방주는 물론 희곡, 시문의 편집·조판 방식과 도표의 편집 실례를 제시하고도 있다. 특히 서명이나 작품 명을 이탤릭체(斜體)로 조판하도록 했는데 오늘날의 로마자 표기는 여기에 뿌리를 둔 것이라 여겨진다.

영국이 처음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을 편찬할 당시 만들어진 사전 편찬의 순서를 흔히 '옥스퍼드 룰(Oxford Rules)'이라 일컫고 있는데, 이는 책의 편집 순서의 바람직한 틀로서, 대부분의 영문 출판물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책의 본문(text)을 중심으로 앞뒤에 편집돼야 할 파라텍스트(paratext)로서 앞쪽은 집의 현관(prelims)에 해당되는 반표제, 판권지, 헌사, 머리말, 차례, 뒤쪽으로는 부록, 주, 용어풀이, 참고문헌, 찾아보기 등으로 순서를 정하고 있다.

우리 출판계는 이런 파라텍스트를 본문에 부속된 것이라 해 책의 '부속물'이라 칭하고 있으며, 일본의 출판물과 같이 양장본에서는 대개 이 순차를 지켜 학술도서 등이 편집되고 있다. 이것은 법적인 규정은 아니지만 불문율의 규범으로 굳어졌음을 알아야만 하겠다.

우리 현실에 맞는 편집표준화 작업 필요

사전류를 비롯한 학술서의 경우 세계적인 유명 출판사의 책들은 이 룰을 지키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출판물이 차례를 본문 맨 뒤에 자리시켜 편집하는 것이나, 요즘의 미국의 책들이 총 차례를 앞에 놓고 그 다음에 머리말을 싣고 있는 데서도 편집 원칙에 절대성이 없음을 알 수 있지만, 아무래도 머리말은 목차 앞에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런 책의 편집 순서는 전자책이라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는 정부나 출판 관련단체가 나서지 않는다면 학술진흥재단이나 대학교육협의회 등에서 더 구체적인 편집규범의 표준화를 마련해 줄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책의 제본형식]

값싸고 편한 반양장과 무선철 선호

제본이란 인쇄된 종이를 쪽 번호순으로 접어서 책등을 실이나 철사 등으로 묶어 사용 가능하게 가공하는 작업을 말한다. 오늘날 모든 책은 서양에서 건너온 제본방식을 따르고 있다. 서양식 제본이  오래가고 무엇보다 대량생산에 적합하기 때문임은 두말할 게 없다.

서양식 제본은 매는 방식이나 표지를 붙이는 방식에 따라 크게 양장, 반양장, 호부장, 무선철로 나눌 수 있다.

양장은 흔히 ‘하드커버’로 일컬어지는 고급스러운 방식을 말한다. 주로 문학전집, 백과사전, 지리부도, 학술서, 앨범류, 영인본에서 많이 사용한다. 그 방식은 ▲표지를 제외한 본문(속지)을 실로 맨다. ▲다 맨 후 책등이 둥글게 형성되도록 한 다음 천(생사)과 면지를 이용해 책등을 붙인다. ▲여기에 가죽이나 두꺼운 고급지로 만든 표지를 붙인다. ▲표지를 따로 가공하며 표지가 속지보다 더 크다.

반양장은 ▲본문을 실로 꿰매는 과정은 양장과 같다. ▲하지만 천과 면지 없이 표지와 속지를 직접 풀로 붙인다. ▲표지와 속지를 함께 가공하며 크기가 같다. 하드커버가 아니면서 표지를 좀 고급스러운 종이를 사용할 때 대부분 반양장일 경우가 많다.

무선철은 ▲본문을 풀이 스며들게 흠집을 내서 붙인다. ▲표지와 책등을 강력한 접착제로 붙인다. ▲무선철은 자동화가 쉽고 처리시간도 신속해 많은 단행본이 이 방식을 사용하며, 만화책 제본에도 많이 쓰인다. 떡제본이라 하기도 한다.

호부장은 주로 주간지나 팸플릿 같은 얇은 잡지를 가공할 때 쓰는 방식으로 본문의 등쪽을 호치키스로 박은 다음 표지와 면지로 안보이게 덮는 방식이다. 호부장은 본문과 표지를 겹쳐서 펼친 다음 한가운데를 철사로 묶고 표지와 함께 재단하는 '중철 제본' 방식을 가장 많이 쓴다.

양장본의 둥근등은 다시 세가지 양식으로 나뉜다. 구멍등(horse back)은 책을 펼칠 때 표지는 바닥에 붙고 표지와 책등은 떨어져 그 사이에 타원형의 공간이 생긴다. 찬등(tight back)은 책등이 넓적한 양장으로 바닥과 표지와 책등이 모두 붙어 있다. 유연등(flexible back)은 책등과 표지가 붙어있지만, 책을 펼치면 오목하게 위쪽으로 올라가서 바닥과 책등에 포물선 모양의 공간이 생기는 경우다.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양장본들은 구멍등과 유연등의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책의 편집순서]

0. 표지(front cover): 사이드(side)라 하기도 하는데, 등과 배에 대응하는 말이다.

1. 반표제지(half title): 책의 맨 처음에 표제만 기록하고, 저자나 출판사명은 제외.
2. 면지(free-end paper) : 앞부분에 있는 것을 앞면지, 뒷부분에 있는 것을 뒷면지라 한다. 책을 선물할 때 이곳에 서명하면 된다.
3. 권두화(frontispiece): 책과 관련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속표지와 마주 보도록 편집.
4. 속표지(bastard title): 저자 서명자리. 저자만이 글을 쓸 수 있다. 우리 출판계에선 흔히  '도비라(扉: 일본어)'라 칭한다.
5. 판권지(colophon): 서지적 발행사항을 기록하고, 저자와 역자소개도 들어간다. 동양에서는 발문과 함께 책 뒤에 들어가기도 한다.
6. 헌사(dedication): 저자가 존경하는 스승이나 가족, 친지 등에게 바치는 글.
7. 정오표(corrigenda): 사전 등에서 본문 인쇄 후 발견된 오자나 탈자를 표로 작성, 수록.
8. 머리말(preface): 서문(foreword), 추천사, 감사글(謝辭: acknowledgement) 등으로 나뉨.
9. 본문 차례(contents): 본문의 총 목차를 쪽수와 곁들여 편집.
10. 도판 차례(list of illustrations): 내용 그림과 도표의 순차적 목차.
11. 약어표(list of abbreviation): 본문에 많이 언급되어지는 핵심 용어의 고유한 두문 약자.
12. 중간 표제지(divisional title): 본문 앞의 반표제지로서 흔히 '중간 도비라(中扉)'라 부름.
13. 본문(text): 책의 앞 뒤 부속 부문을 제외한 내용 전체.
14. 부록(appendix): 연표, 지도, 법률 조문 등 내용과 관련 있는 보충 자료.
15. 주(notes): 방주(傍註), 삽입주, 보주(補註)와 별도로 책 뒤쪽에 각주 대신 후주로 처리.
16. 용어풀이(explanatory notes): 내용에 언급된 특수 학술 용어 및 술어 등에 대한 풀이.
17. 참고문헌(bibliography): 연구와 저술에 참고했던 논문과 저서 등의 문헌 목록.
18. 찾아보기(index): 본문 중의 중요 어구, 술어, 인명, 지명 등을 해당 쪽을 곁들여 정리, 수록하며 학술전문서의 경우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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