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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성과 문자성에 담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읽다
구술성과 문자성에 담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읽다
  • 임명진
  • 승인 2018.11.05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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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개정판)』(월터 J. 옹 지음, 임명진 옮김, 문예출판사. 2018.08)

 

월터 옹(Walter J. Ong)의 저서 Orality and Literacy :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Routledge, 1982)는 발간된 이래 30년간 ‘구글 학술검색(Google Scholar)’에서 7,600회나 인용되었고, 또한 이의 한국어 번역본은 1995년 초판 이래 20쇄 이상 발행됐다. 이 책이 국내외에서 꾸준히 읽히고 인용되어 왔다는 반증인 셈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오고/증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표면적인 주제는 이 책의 부제(副題)가 말하듯 ‘언어를 기술화(技術化)하기’이다. 좀 더 보충 설명하면 언어라는 양식(mode)이 여러 매체(media)에 실려 가동될 때, 그 매체의 속성에 따라 언어를 다루는 기술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며, 그 다름에 따라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의식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일찍이 옹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라틴학·철학·문학·언어학·역사학 등을 공부하면서 줄곧 이른바 ‘고전문예3과’에 관심을 경주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사학·변증법·문법학에서 ‘언어’가 절대적인 구실을 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또 전근대적 학문의 골격과 조직이 근대적 학문의 그것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언어가 맡아 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러한 ‘언어의 고리 역할’에 대한 관심은, “매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언(M. McLuhan)의 언명에 힘입어, 이후 언어가 가담하는 매체들이 인간의 의식과 사고에 미친 영향력을 꾸준히 탐구하는 데로 이어졌고, 이런 연구 결과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30여 년에 걸친 그의 작업은 역사적 방법과 학제적 방법을 교직하면서 전개되었다. 그의 공시적인 안목은 약 5,000년 전의 고대에서 20세기 말에 이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지하고 있고, 그의 통시적인 통찰은 언어학·신학·철학·문학비평·인류학·문화론을 넘어 역사학·수사학·소통이론·매체론·고전학·컴퓨터 과학 등의 분야에까지 확장돼 있다.

옹은 이 책 초판에서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쓰기가 일반화되기 이전의 구술문화와 그 이후의 문자문화 사이에 인간의 의식 및 사고(思考) 방식에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언어를 목소리로 구술하는 것(orality)과 문자로 쓰거나 인쇄하는 것(literacy)이 인간의 의식 및 사고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초점을 두면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인류의 표현양식과 매체의 변천과 더불어 어떻게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검증하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 현대인들이 그간 부지불식간에 문자문화에 내면화되어 있음을 일깨워주면서, 아울러 일차적인 구술문화의 특성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적 전개에 작용하고 있는가를 풍부한 예증과 명징한 논거를 통해 제시한다.

나머지 하나는, 이차적인 구술문화로서의 현재의 전자문화는 그 이전의 문자문화로써 내면화된 근대적 의식과 사고방식을 이른바 “의식의 현대적 진화의 흐름”에 따라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견이다. 이런 예견은 이 책 초판 발행 이후의 영향력으로 보면 일정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지난 30여 년 간 “수사학·소통이론·교육학·매체론·영어학·문학비평·고전학·성서연구·신학·철학·심리학·인류학·문화론·역사학·미국학·젠더론·생물학·컴퓨터과학” 등 광범위로 끼친 옹의 강력한 영향력(이것을 개정판에서는 “옹이즘”이라 일컫는다)을 생각하면 그러하다. 아직도 이 책은 말하기·쓰기·인쇄·컴퓨터·모바일·인터넷 등 소통 기술이 인간의 사고와 지식 습득 방식에 끼친 영향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봐도, 옹의 예견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옹의 주장과 예견이 옳은지 그른지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옹의 학설은 ‘옹이즘’이란 말을 만들어낼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이러한 ‘찬사’와 ‘반론’으로 해서 “30주년 기념판”이란 이름으로 개정판이 발행될 필요가 생긴 셈이다.

2012년은 옹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이른바 ‘옹이즘’을 내세워 개정판을 발행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것 같다. 이 개정판에는 존 하틀리(John Hartley, 오스트레일리아 커틴대 교수)가 쓴 해제(解題) 두 편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각각 “BEFORE ONGISM”, “AFTER ONGISM”이란 이름으로 나뉘어 책의 서두와 말미에 자리잡고 있다. 초판의 전문(全文)이 고스란히 그대로 수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틀리 교수의 해제가 책의 서두와 말미에서 매우 강렬하게 수미쌍관(首尾雙關)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옹의 ‘본문’이 상대적으로 후경(後景)으로 밀려나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개정판은 하틀리 교수의 해제만으로도 일독의 가치를 담고 있다. 하틀리는 해제 서두에서 옹의 역사학적 방법을 매우 간명하게 정리해 독자로 하여금 ‘옹이즘’의 기초적인 골격을 쉽게 이해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또한 일면 비판적인 관점도 간취되는데, 그 하나는 옹이즘을 2차 대전 후 팍스 아메리카를 앞세운 이른바 ‘미국 국가주의’에 편승한 것으로 지적한 대목이다. 이런 하틀리 지적의 내면에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시각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0세기 후반 이후 이른바 ‘후기 식민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독자에게 이 부분은 매우 강렬한 ‘반성적 읽기’를 유도한다.

하틀리의 글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뒤의 해제에서 옹이 주장한 “의식의 현대적 진화”와 관련해 20세기 말 이후 새로이 대두된 신다윈주의·복잡성이론·연결망이론·신경과학·유전생물학 등 자연과학에 힘입어 옹의 예견처럼 의식의 변화가 그렇게 빨리 진행될 수 없음을 진단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옹의 전체적인 논지 전개에 상당한 제동으로 작동하지만, 그렇다고 하틀리는 옹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책의 서두와 말미에서 세익스피어의 작품 Julius Caesar의 주인공 안토니우스의 연설 “나에게 귀 좀 빌려주시게”와 이에 대한 익명의 ‘일등 시민’의 대답 “내 생각에 그(안토니우스)의 말은 여러모로 이치에 맞는다”를 인용하여, 하틀리는 대체적으로 옹의 견해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금세기에 이르러 원격통신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으로 언어가 멀티미디어에 가담하는 방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지 않는가? 또 그런 다양성으로 해서 언어의 구실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지 않는가? 하틀리 역시 이런 현상을 부인하지 못한다면, 옹이 애초에 주장하고 예견했던 내용도 쉽사리 부인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임명진 전북대 명예교수/문학비평가 한국언어문학회장, 현대문학이론학회장, 그리고 전북민예총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한국근대소설과 서사전통』 외 6권, 역서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외 1권, 편저로 『판소리 단가』 외 7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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