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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타계]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작품 쓸 재능이 없소, 그저 작품에 가장 가까이 가고자 힘썼을 뿐이오.”
[김윤식 타계]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작품 쓸 재능이 없소, 그저 작품에 가장 가까이 가고자 힘썼을 뿐이오.”
  • 양도웅
  • 승인 2018.11.05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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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5일,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他界

이제는 별이 돼, 한 시대의 고유명사로 완전히 자리하게 된 이에겐 어떤 작별인사가 어울릴까. 지난달 25일 김윤식 선생(서울대 명예교수)의 타계 소식을 접한 뒤, 떠오른 질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선생이 ‘혼신’을 다해 읽고 쓴 필생의 기록들을 부족한 대로 (서문이라도) 살펴보는 것이 하나의 답변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인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김윤식 선생께 드리는 작별인사로는···. 이런 소심한 생각이었다. 지난해 7월 다시 손질하고 덫 댄 『김윤식 서문집』(사회평론)의 서문에서 선생은 이런 소회를 밝혔다. 

“사람의 일생이란 그 출발점에서 이미 그 본질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회고컨대 이런 의문을 줄곧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희랍 신화나 구약성서 속의 신전의 무녀들이나 예언자들이 한 인물의 운명에 대해 예언하는 장면들을 대했을 때 형언할 수 없는 모종의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고유한 죽음(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목소리가 빚어낸 이런저런 빛깔들을 모아 본 것이 이 ‘서문집’입니다.”

이 담담한 심정은 사실 2001년 같은 출판사에서 최초 출간한 『김윤식 서문집』의 서문이기도 했다.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선생은 변함없이 “사람의 일생이란 그 출발점에서 이미 그 본질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선생의 글을 살펴보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대신 하겠다고 해놓고 ‘엉거주춤’ 앉아 있는 기자에게 선생은 답을 준 격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그래, 그럼 됐다. 선생에게 드리는 작별인사는 선생의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게 예의다. 바로 선생의 박사논문,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1973)에서부터. 

* 아랫글은 모두 『김윤식 서문집』에서 발췌했음을, 사진은 출판사 사회평론과 책의 해설을 쓴 윤대석 서울대 교수(국어교육과)가 보내줬음을 밝힌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한국 신문학에 임할 때는 다음과 같은 모순 개념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 하나는 신채호의 명제이며, 임화의 명제가 다른 하나이다. 단재의 명제에 의한다면 일제 시대의 일체의 합법적 문화 행위는 노예화에 귀착하게 된다. 즉 한국 신문학은 노예 문학의 일종인 것이다. 한편 만약 우리가 단재의 명제를 거부한다면, 임화의 명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즉 한국 신문학은 일본의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 문학의 이식사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이 두 명제를 추상적이며 관념적으로 규정, 선택할 수 없는 문제로 보는 것이 본 연구의 기본 입장이다.” 

-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한얼문고, 1973, 머리말

“이 책에서의 저자의 근본 태도는 사실 자체를 가능한 한도에서 정리하고 분류하여 기술하는 데 그치고, 비판이나 해석은 될 수 있는 한 보류해 두는 입장을 취하였다. 일본 측 자료를 많이 취급한 것도 이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개정 신판), 일지사, 1976, 머리말

“역자가 이 저서를 번역하려 마음먹은 것은 오래전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문가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주저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일본 연구가 황무지인 것으로 판단되어, 이에 무지를 무릅쓰고 감히 번역해 본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가장 잘 알아야 할 일본에 대한 탐구가 우리만큼 무관심한 상태에 놓인 풍토는 아마 없을 것이다. 개개인의 일본 인상기나 체험기 따위는 오히려 그 주관성 때문에 해독을 끼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학문적으로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일본 연구서가 나오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을 요하는 문제일 것이다.”

- 『국화와 칼』, 루드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1974, 해설

김윤식 선생이 지난달 25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선생은 '한국문학 지도를 그린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다. 

“어느 민족이나 국민은 저마다의 창조적 심의(心意) 경향은 물론 비평적 심의 경향(critical turn of mind)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보편성의 처지에서 보면 일종의 편견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리라. 한국의 근대시와 시론도 역시 다른 나라의 시나 시론과는 다른 특질, 즉 편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가장 두드러진 특질은 시와 민족의식의 결합 혹은 저항과 창조의 등질성의 인식인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의 일단은 한국의 근대시가 식민지 상황 아래서 형성·전개되어 왔음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심의 경향은 가능한 한도에서 확인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편견을 극복할 방도가 찾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 『한국현대시론비판』, 일지사, 1976, 재판 서문

“책을 낼 적마다 번번이 느끼는 일이거니와 내 글들은 대체로 문학사적 안목이라든가 그런 시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어째서 유독 문학사적 관심이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고, 그럴 적마다 곤혹을 느끼지만, 그것이 과거 지향성과는 구분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오히려 그것은 유토피아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것은 카를 만하임 유의 현실파괴력을 내포한 개념이다. 거점으로서의 유토피아는 역사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런 지평을 떠올리고 싶었다. 헤겔을 조금씩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점점 굳어진 것 같다.”

- 『우리 문학의 넓이와 깊이-김윤식 평론집』, 서래헌, 1979, 머리말

“이 책에서 제가 밝히고자 한 것은 글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시대의 관계일 따름이고,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닙니다. (…) 이광수, 그는 고아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 역시 고아 의식에 충만한 것이었지요. 이 사실을 이 책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점을 즐긴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고아가 아니며, 고아의식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광수와 그의 시대』, 한길사, 1986, 머리말

“세계(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 식의 사고 형태란 어쩌면 인간이 지닌 환각의 한 가지인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고리를 끊는다면 새로운 세계인식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생각이 내 속에서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접어들어서였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독아론, 원근법 등의 은유로 말해지는 근대를 비판할 수 있는 초월론적인 시각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얼마나 넓은 시야가 펼쳐질 것인가를 나는 자주 꿈꾸곤 했다.”

- 『한국문학의 근대성 비판』, 문예출판사, 1993, 머리말

선생의 제자인 윤대석 교수는 "서문이란 '왜 쓰는가'에 대한 자의식의 표현이자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매번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는 행위"라며 "따라서 선생의 예외성은 150권에 이르는 지속적인 글쓰기보다는 150번에 이르는 자성에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선생의 제자인 윤대석 교수는 "서문이란 '왜 쓰는가'에 대한 자의식의 표현이자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매번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는 행위"라며 "따라서 선생의 예외성은 150권에 이르는 지속적인 글쓰기보다는 150번에 이르는 자성에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의 시대가 지났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구소련 해체 이후엔 이 소문이 사실 자체의 모습을 띠고 제 주변까지 에워싸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콜레라처럼 창궐하는 이러한 소설류의 범람이란 새삼 무엇인가. 소설이 문학 범주에 들지 않는 어떤 별종이거나 아니면 위의 소문이 거짓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또 다른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 90년대 소설을 열심히 읽으면서 저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자 애썼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그 까닭이나 곡절을 알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노력 부족이거나 천성의 어둠이거나 또 다른 까닭들이 필시 잠복해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그 까닭이 전혀 오리무중이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럴싸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 『글쓰기의 모순에 빠진 작가들에게』, 강, 1996, 머리말

“(…) 일간지 칼럼이 어떤 글쓰기 형식인지 잘 몰랐기에 독자의 핀잔을 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소. 자기 전공에 너무 기울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소. 그렇다고 시사적인 것을 다루자니 현장성이랄까, 민첩성이 내게 매우 난감했소. 붓을 꺾기로 마음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런데도 여기까지 오고 말았소. 한밤중 일어나 원고지를 대하고 있노라면 이런 소리가 서재 한구석에서 들려오곤 했기 때문이오. ‘아가야, 시방 너는 앉지도 서지도 못해 엉거주춤 서 있다. 그 엉거주춤함을 그대로 적어라. 왜냐면 우리의 삶이랄까, 인생 그 자체가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것이란다’라고.”

- 『엉거주춤한 문학의 표정』, 솔, 2010, 머리말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 딱하고도 민망하기 짝이 없음을, 딱하고도 민망하게 살펴보았소. 이쯤 되면 나만의 방도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소. 작품과 작가를 구별한다는 원칙이 그것이외다. 이 작가는 누구의 자식이며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셨는가를 문제 삼지 않기.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작품뿐. 이 속에서 나는 시대의 감수성을 얻고자 했소. 헤겔 투로 말해, 자기의식의 싹이 배양되는 곳.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없소. 한 번 더 분명히 말하지만, 그저 작품에 가장 가까이 가고자 힘썼을 뿐이오.”

- 『내가 읽은 우리 소설 2011.4.~2013.2.』, 강, 2013,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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