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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 “몸부림칠수록 더욱 빨려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신세이기도 하다”
[장병욱의 광장] “몸부림칠수록 더욱 빨려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신세이기도 하다”
  •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 승인 2018.10.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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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_⑨ 욕망에 눈뜨다

“서산마루에 시들어가는…” 간간히 블루 노트가 끼어드는 김민기의 서글픈 왈츠곡 ‘기지촌’은 80학번 대학생들에게는 서곡이었다. 짬뽕 국물 들이켜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소주를 털어 넣는 신입생들에게 선배는 그러잖아도 음울한 곡을 비장하게 들려주었다.
 
  私娼에 붙은 진드기들
  포주에게 5할, 경찰에 4천환
  옷은 2할 빚 얻어 해 입고

수도의 관문인 도동(挑洞) 양동(陽洞) 일대엔 4·19 혁명 전이나 후에도 다름없이 독버섯처럼 돋아난 천여명의 창녀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빈농 출신의 소녀들이 돈벌이를 하겠다고 시골서 서울로 올라온 후 십중팔구 전락하는 곳이 이곳이다. 그 가운데서는 온화한 생활을 다시 찾아보려고 몸부림을 쳐보기도 하지만 거미줄에 엉킨 날파리처럼 몸부림칠수록 더욱 빨려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신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8월 27일 “악질 포주단과 창녀에게 갱생의 길을 택해 달라”는 진정서 한 통이 ‘도동 창녀 일동’이라는 명의로 서울 남대문서에 우송돼왔다. 동 진정서에 의하면 포주가 매일 상부 관청인 취체 기관의 교제비 명목으로 창녀 1인당 4천환씩 징수해 가는데 (2기로 나누어 2천환씩) 그 돈은 도동 소재 세기 여관서 두 몫으로 나누어 한몫은 도동파출소, 또 한몫은 본서 여경반에 매음 행위를 묵인해 달라는 조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현재 남대문서 관내에는 약 1천4백명의 창녀가 도동, 양동, 봉래동 일대에 흩어져 있는데 10인 1조에 4만환씩 징수된다면 5백여 만환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 된다. 대부분의 포주는 통반장을 겸하고 있어 경찰이 창녀 단속을 실시하게 돼도 사전에 그 정보를 입수한 포주와 창녀들은 모두 숨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지난달 13일부터 27일 사이에 실시된 시경 산하 全경찰서의 일제 단속에도 창녀가 가장 많은 남대문서 관내서는 62명밖에 붙잡히지 않아 시내 각서에서 제일 말미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나타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결국, 창녀는 포주에게 번 돈의 5할을 착취당하는 외에도 포주를 뒤에서 조종하는 고리 대금업자에게 2할 이잣돈(일수)을 꾸어 옷을 사 입고 ‘팸프’와 깡패들에게 뜯기는가 하면 이를 취체(取締)한다는 경찰관들에게까지 돈을 바쳐야 하는 형편에 있다 한다.

창녀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넘는데 반반한 옷 한 가지 없이 빚만 잔뜩 지고 포주의 손에 팔려 다니느라고 한숨짓는 김성자(21·가명) 양은 저 같은 진정 사실에 대해서 처음엔 대답하기를 주저하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서 사건에 대해 남대문 서장과 여경 주임은 “금시초문이니 조사해서 악질 포주를 엄단하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보안계장은 “그러한 진정서가 몇백 통 들어와도 믿을 수 없다”고 일소에 붙이고 있다.(1960년 9월 4일)

[편집자주] 딸은 몸을 팔아야 했고, 어머니는 딸의 팸프가 돼야 했다. 빈농 출신의 가족들이 도시에 올라와 할 수 있는 건 없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시 당국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팀

‘팸프’ 노릇한 어머니
딸의 ‘몸값’ 7달러 위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서.” 15세 난 어린 딸의 몸을 미군에 팔아 모진 목숨을 이어 왔다는 눈물겨운 모녀의 비정애화(非情 哀話)가 있다. 11일 하오 서울 용산서에 ‘공창 제도 폐지령’ 위반 혐의로 연행되었던 오화자(50) 씨는 지난 3월 말일 경 충남 당진에서 큰아들 안(26) 군을 군에 보내고 어린 딸 경자(15·가명) 양과 함께 상경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살길을 찾을 수 없어 헤매던 끝에 정자 양은 인천에 있는 대한제분소 공장에 직공으로 들어가고 오 씨는 서울서 식모살이를 하여 근근이 살아왔다. 군에 간 아들을 유일한 희망 삼아 고생을 무릅쓰고 살아온 그들이건만 지난 7월 말 경 정자양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다시 늙은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으나 두 식구의 살길은 막막했다.

오 씨는 생각다 못해 지난 6일 밤 9시경엔 집 앞을 지나던 미군인 한 사람을 불러 어린 딸 경자 양 방으로 들여보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팸프’가 되고 딸은 매음부가 된 셈이다. 이러기를 3일 동안―. 7달러를 벌었다는 것이다.

이 애절한 두 모녀의 사연에 담당 취조관도 눈물을 적시며 동정해 마지않았는데 취조실에서 서로의 신세를 저주하며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어린 딸과 어머니의 두 눈에선 눈물마저 메말라 있었다.(1960년 8월 12일)

[편집자주] 딸은 몸을 팔아야 했고, 어머니는 딸의 펨프가 돼야 했다. 빈농 출신의 가족들이 도시에 올라와 할 수 있는 건 없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시 당국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팀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팀

최초의 한국판 킨제이

이런저런 이유로 전통적 성 의식은 급격 붕괴하고 있었다. 1960년 2월 24일 보도된 ‘한국판 킨제이’는 시의적절했다. 전통의 고장 전주, 그것도 여고에서 저런 파격적 조사를 벌였다는 사실은 자못 상징적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주 모여자 고등학교에 한국판 킨제이 소동이 일어났다. 동소동은 동교 교우지에 실린 ‘졸업반 앙케이트’의 내용이 미성년인 여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성(性) 문제를 노골적으로 취급했다는 데서 학교의 풍기 문제에까지 확대되어 분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교장을 발행인으로 하고 문예부 편집반이 편집한 동교우지에서는 졸업반 367명 중 324명에 대한 70여종의 설문 중 ‘동성애 여부’에 대해서 2명이 “반육체적인”, 1명이 “육체적인” 사랑을 한다고 되어 있으며 ‘이성애‘의 경우는 3명이 “반육체적”인, 5명이 “육체적인” 사랑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학부형은 물론 일반인으로부터 “학교의 교육 방침도 방침이려니와 이와 같은 노골적 성 문제가 교우회지에 버젓이 실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난이다.

동교는 전임(前任) 교장 대부터 “처벌 없는 학교”라는 교시 아래 소위 ’카운셀라‘ 방법의 교육 사책을 써 왔으나 후진성이 농후한 현재의 실정과 환경 가운데서는 동교육 방법에 의한 교육 효과는커녕 차차 학생들의 사생활과 풍기가 문란하여졌다. 현 교장이 부임할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학생 풍기가 어지러워져 한때 강력한 제재도 가한 바 있었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아 학교 당국이 대책에 고민하고 있던 실정이었다. 이번 문제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자 학교 당국은 그 변명과 수습에 힘을 다하고 있다. 문제된 설문지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계자들의 말은 다음과 같다. 

◇설문
  ▲동성애 여부 = 無 180명, 짝사랑 14명, 정신적 119명, 이원적  8명, 
                  반육체적 2명, 육체적 1명
  ▲이성애 여부 = 무 239명, 짝사랑 11명, 이원적 21명, 반육체적 12명,
                  육체적 15명.
  ▲현재 약혼 = Yes 29명,  No 295명.

◇교장 = “현재 사회에서 말썽이 된 그러한 의도에서 편집된 것이 아니니 좋은 방향에서 이해하기 바란다.
◇교감 = 배부된 책 중에서 백 매 정도 회수되었다. 속히 전부 회수하겠다.
◇학부모 김 모씨 = 망측하고 놀라운 일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어찌 육체적 운운이 있을 수 있는가! 올바른 해명을 바란다.
◇시민 이 모씨(42·상업) = 기막힐 노릇이다. 며느리감은 절대로 그 여학교 졸업생에서 고르지 않겠다.
◇선배 정모(가정부인) =  모교의 명예 문제다. 어림도 없는 노릇을 한 학교 당국은 책임을 져야 한다.

   
서울시의 대응 

한편 서울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긴 했으나···. 사창가를 선도하기 위한 포주의 채권을 무효로 하는 한편 3개월 동안 집중 단속한다는 1961년 6월 10일자 보도다.

9일 서울시는 청신한 사회 정의와 건전한 시민 윤리의 확립을 위해 만연일로에 있는 사창(私娼)의 근절에 강력한 방침을 세우고 관계 기관의 협조를 얻어 과감히 이를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 당국 앞으로 3개월간 사창을 단속하는 한편 이들을 보호 선도할 작정인데 단속 방침은 다음과 같다. 
1)일체의 사창 행위를 엄금하며 포주, 팸프, 탕아 등도 적발 되는대로 엄중 처단한다. 2)창녀에 대한 포주 및 기타 관계자의 매춘 행위로 인한 모든 채권은 무효로 될 것이며 창녀에 대한 채권자는 생활 개선을 위하여 국민 도의심의 발휘를 촉구한다. 3)공인된 접객업소의 작부(酌婦) 및 위안부(慰安婦)는 일제히 등록케 하여 사창과의 혼동을 방지한다. 4)접객 업주 및 여관 업주가 영업장소에서 매춘 행위를 방조한 것이 발견되면 엄벌에 처한다.

  
그런데 이날 시당국이 발표한 사창의 선도책으로는 본청 및 각보건서와 시립 부녀 사업관에 사창 상담소를 두어 보호 선도할 것이라 함이 알려졌는데 우선 귀향 희망자에게는 최대한의 편의를 보아 무임승차하도록 하며 그 밖의 사창은 일단 집단적으로 수용 보호하여 자립 갱생의 길로 선도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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