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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배우는 공학의 메카, KAIST
세계가 배우는 공학의 메카, KAIST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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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 - 카이스트 정부지원 독립모델 4

독특한 의사결정 구조와 자율성이 성장 동력

실험적 교육제도 선진적 시스템 주효

아시아 최고의 이공계 대학, 일부 분야는 이미 세계최고수준에 오른 대학. 국내 이공계 대학교수 가운데 2천 여명을 배출한 대학. 바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Korea Ac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이하 카이스트 )이다. 각종 지표에서 국내와 아시아권에서 가장 먼저 손꼽히는 카이스트에 대해 흔히 대학사회에서는 교육부 산하에 있었다면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카이스트와 과학기술부는 국립대학과 교육부의 관계와 다르다. 국립대이지만 카이스트는 사립대처럼 이사회가 있다. 국립대학의 주요정책을 교육부가 결정한다면 카이스트는 독립된 이사회에서 의결한다. 이사회를 통해 독립돼 있어 국립대학처럼 자율성확보를 요구하며 교육부와 갈등을 겪는 일이 없다. 많은 국립대학을 관리해야 하는 교육부가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면, 카이스트는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움직임도 가볍다.   

국립대학인데 공무원은 없다

또 교육부와 국립대학은 공무원이 순환 근무하지만 카이스트에는 과학기술부의 공무원이 없다. 과학기술발전을 꾀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공무원과 교직원의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준 것이다. 

카이스트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는 15명으로 구성된다. 학계와 과학기술, 산업계 주요인사 10명이 선임직으로, 과학기술부 기초과학인력국장, 교육인적자원부 고등교육지원국장,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기획예산처 경제예산심의관, 카이스트 원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과학기술부 산하기관이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15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 몫일 뿐이다.

이사회에 대해서도 과학기술부는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 이사 선임은 이사회의 권한이며 , 과학기술부는 승인을 할 뿐이다. 카이스트 교육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각계의 인사가 참여해서 연도별 사업계획 및 예산·결산의 승인, 임원의 선임과 해임, 중요재산의 처분과 관리, 분원 및 부설연구소 설치, 중요규정의 제정 및 변경 등을 의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회도 대부분 대학의 의견을 존중한다.

대학의 의사결정은 대학 내에서 이뤄진다. 교수협의회가 선거를 통해 원장후보를 추천하면, 과기부는 이를 승인하고, 선출된 원장이 대학의 정책방향과 운영을 결정한다. 대학의 의사결정은 정책위원회와 부·처장회의의 몫이다. 원장, 부원장, 기획처장, 교무처장, 행정처장, 자연과학장, 공학장이 참여하는 정책위원회가 주요 정책과 관련된 사안을 결정한다면 일상적인 사업은 부·처장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카이스트 이사회 구성(2003. 5.)
이사장(선임직)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
이사(선임직) 정문술 전 미래산업(주) 사장, 박승덕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성재갑 엘지석유화학(주) 회장, 이상천 영남대 총장, 안영경 핸디소프트9주) 대표이사 사장, 정근모 호서대 총장, 김종량 한양대 총장,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권영한 한국전기연구원 원장
이사(당연직) 과학기술부 기초과학인력국장,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장,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기획예산처 경제예산심의관, 카이스트 원장
감사(선임직) 김덕제

정부출연금 비율 줄고 자체수입 늘어

흔히 카이스트는 과학기술부에서 전격적으로 지원해 주기 때문에 우수하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그러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일단 정상괘도에 올라선 이후 카이스트는 스스로 성장해 가고 있다.

카이스트의 1991년 총예산은 4백91억원, 이 가운데 정부출연금은 3백97억원이었다. 전체예산의 80%이상을 정부에 의존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출연금의 비율은 점점 낮아졌다. <도표참조> 카이스트의 지난해 예산은 2천4백41억원, 이 가운데 정부출연금은 7백24억원으로 전체예산의 29.7%밖에 안됐다. 지난 10여년 동안 전체예산이 5배 가까이 증가할 때 출연금은 채 두 배도 안 늘어난 것이다. 

이제 카이스트를 움직이는 예산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자체수입이다. 1991년 75억원이던 수탁용역수입이 지난해에는 1천1백여억원으로 늘어났다. 카이스트 전체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한편, 카이스트의 전체 학생수는 학부와 대학원을 합쳐 6천9백여명이다. 교수는 3백80여명. 전체 4년제 대학과 비교해 볼 때 규모는 작은 편에 속한다.

인원은 적고, 전체예산규모는 늘어나다 보니 재정의 쓰임새도 다른 대학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금액이 3백26억원으로 13%에 불과하다. 다른 사립대학의 인건비 비율이 50%를 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교육과 연구 등 대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카이스트는 특정연구개발비 등 직접경비로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 기관고유사업비, 특정연구개발비, 수탁연구사업비, 연구활동 지원 등에 사용된 금액이 8백25억원으로 인건비의 2.5배다. 연구개발수입 항목에 따라 사용되는 것이지만 이것이 곧 대학의 연구력과 직결된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줄어드는 것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목적사업성격의 연구개발비 성격상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도모하기 어렵다. 현재 카이스트는 세계적인 선도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정부예산지원이 50%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 산하가 아니기에 가능했던 일들
카이스트가 교육부 산하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부가 다른 국립대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은 분명히 특별한 혜택이었다. 그러나 교육부 산하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장점은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다. 오늘의 카이스트는 규제와 규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실험적인 교육제도,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었기 때무니다. 

카이스트는 1992년부터 무시험 전형을 시행했다. 학력고사를 거치지 않고 대학이 특차 전형을 실시해 과학과 수학에 우수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확보한 것이다. 이러한 특차 전형에 의한 입학 제도는 과학과 수학 부문에서 특별히 우수한 능력을 가진 학생을 조기에 발굴하고 과학 영재를 국가 차원에서 육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카이스트는 1986년부터 무학년, 무학과 제도를 운영했다.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고등학교 2학년이라도 입학을 허용했고, 입학 후에도 졸업에 필요한 140학점만 이수하면 언제든지 졸업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또  입학할 당시에 학과를 정하지 않고, 적성과 능력을 충분히 파악한 후에 전공을 택하도록 해 대학 교육과정 운영의 융통성과 자율성을 높이고 개인의 잠재적 능력의 계발을 극대화시켰다. 학생에게 단지 과정에 지나지 않는 과목은 아예 시험으로 학점을 딸 수 있도록 해서 시험을 목적으로 하지 않도록 했다. 이밖에도 박사학위 논문 세계저명 학술지 게재, 교수업적평가도 카이스트가 가장 먼저 시행한 제도다.

카이스트를 모방한 대학들
올해초 중국과학기술대학(USTC) 관계자들이 카이스트를 방문했다. 이들의 목적은 상해에 대학원을 설립하면서 카이스트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다. 카이스트가 개발도상국의 정부 주도형 국립 교육·연구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준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 사례로 인정받으면서 많은 국가들이 이를 모델로 삼고 있다. 일본의 JAIST(Japan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와 NAIST(Nar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홍콩의 HKUST(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가 KAIST를 모델로 설립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포항공대와 광주과기원이 KAIST를 벤치마킹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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