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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세계(사)로부터 자유로운
국사, 세계(사)로부터 자유로운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18.10.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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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교토 소재 국제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시기의 일이다. 학기 중에 거의 매주 국제적인 인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하고 교수들과 대담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양한 직업과 분야의 인물들과 더불어 먹으며 소통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는데, 한번은 당시 컬럼비아대에 재직하던 게리 오키히로 예일대 교수가 초빙됐다. 식사자리에서 그는 교수가 강단에서 학생들과 세대 차를 느끼는 시점에 대해 물었다. 68운동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되는 때라는 것에 모두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 국제대학원의 50년 역사상 서구 학자뿐 아니라 (그동안 무시된) 여타 아시아인 교수진의 필요성이 뒤늦게 대두돼, 어쩌다보니 최초의 비(非)일본 아시아인 객원교수가 된 나 외에는 모두 구미와 일본 출신이었다. 국내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1960년대 말엽 미술에 등장하는 68운동, 학생혁명, 마오쩌둥 관련 이미지들을 해석할 때마다 옛날 호랑이 담배피기 이전 설화인양 매번 설명해온 내게는 오히려 그동안 그들이 이에 대해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생경했다. 대화는 곧 마틴 버낼 교수의 저술 『블랙 아테나』와 전세계에 확산된 백인중심적 문명사관이 수정될 가까운 미래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벌써 십년 전 일이다. 

국내 강단에서 예나 지금이나 당혹스런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학생/청중들이 콜럼버스가 미국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때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이 세계역사의 흐름에 대변환을 가져왔지만, 그럼 그가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했을 때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무인 대륙이었느냐, 당시 유럽인처럼 여러분도 원주민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했다. 미국 국립기관 재직 시 콜럼버스의 ‘discovery’가 아니라 ‘arrival’로 기술하는 것이 필수적 점검요소였던 터라, 국내에서 수십 년의 ‘세대 차’가 아니라 ‘시대 차’를 느낀 셈이다. 수년 전에 개정교과서에서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으로 수정돼 다행이지만, 서양문명의 근원은 여전히 (버낼 논쟁이 결론나기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아니라 그리스의 백인문명이다. 최근에도 방송언론매체에서 아직도 공고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백인중심 식민사관을 접하면서 구시대의 서구역사서를 베껴오며 서구사관까지 수입한 교육의 잔재를 대면하게 된다. 

요즘도 국사만 배웠고 세계사는 아예 배우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대다수 대학생들을 상대하고 있다. 현행 고등학교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통합사회, 경제, 정치와 법, 사회문화, 사회문제 탐구, 한국지리, 세계지리, 여행지리, 총 11개 사회과목에서 국사는 필수이고, 2개 교과를 선택하면 되기 때문에 비선호과목인 세계사는 대부분 학교에서 교과목 자체가 개설되지 않는 현실이다. 탈식민주의 사관의 세계사는 교육현장에서 제외되고 예전 식민사관의 여파가 사회 도처에 잔재하는 상황에서, 우리 역사교육은 세계사로부터 자유로운 ‘나홀로’ 국사를 강조하고 있다. 국사는 필수과목이어야 하겠지만, 현행 교육에서 세계사적 맥락과 의미가 배제된 민족주의 사관이 확장세다. 

국사를 자국 내 관점으로만 교육해서 과연 국제사회에서 생존력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교토 국제대학원에서 가르치던 시절에 미국, 중국, 일본 학생들이 각기 국수주의 사관으로 자국중심적 역사를 배운 결과, 수업시간에 쏟아내는 나름의 애국심과 사관과 논쟁은 대학이라는 소규모 국제사회에서조차 피차 설득력과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연변대 객좌교수 시절에 직면했던 중국 민족주의 사관 역시 유사한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과연 대한민국도 같은 우물에 빠져야만 하는가. 전지구적으로 1일 횡보가 가능한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자국 내의 외국인들조차도 동의하지 않는, 한민족 내에서만 유통 가능한 우물 안 개구리식 교육을 자처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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