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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포스트잇의 물결과 불타는 은행나무  
노란 포스트잇의 물결과 불타는 은행나무  
  • 김승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시인
  • 승인 2018.10.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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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김승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시인

막연하게 용문산 근처 가을 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노란 조명이 산언덕에 일시에 켜진 것 같은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금빛 은행나무 잎사귀들의 금빛 찬란을 표현할 길은 없다. 다만 그 은행잎들의 노란빛이 우리 시대 애도의 현장에서 펄럭이는 노란 포스트잇의 물결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푼크툼은 사진작품의 어느 부분이나 디테일이 보는 사람의 내면을 찔러 의도치 않은 감정이나 기억을 유발하는 것. 그 압도적인 은행나무 잎의 노란빛에서 노란 포스트잇의 물결을 연상했던 것이다. 

그 노란 포스트잇의 물결이 애도의 표상이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사회적 죽음이라고 할 사건이 터졌을 때, 그중에서도 너무도 놀랍고 억울한 사회적 타자의 죽음이 터졌을 때 서울 곳곳에는 노란 포스트잇의 물결이 파도친다. 이 노란 물결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 대한 처절한 애도이자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공적 분노의 표상이다. 그런 사회적 애도를 주디스 버틀러는 공적 애도라고 불렀는데 노란 포스트잇의 애도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 타자들, 버틀러의 용어로 호모 사커(Homo-sacer)들의 비통한 죽음에 대한 약자들의 애도 방식이 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공적 애도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세월호 사건 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세월호 사건은 온갖 부정부패로 얼룩진 파국의 배에서 ‘죄 없는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가?’, ‘국가란 무엇인가?’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문학적 질문을 우리 가슴에 던졌다. 그때 캠퍼스 벽에 나비처럼 연약하게 나풀나풀 붙어있던 노란 포스트잇들. 그 노란 포스트잇의 물결은 이제 우리 사회의 부고(訃告)이자 눈물겨운 장엄미사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23세의 젊은 여성이 밤늦게 강남역 부근의 남녀공용 화장실에 갔다가 34세의 남자에게 흉부를 네 차례나 찔려 살해당했을 때 젊은 여성들의 경악과 공포와 분노는 극에 달했다. ‘묻지마 살인’인가 했는데 그 남자는 화장실에서 남자 6명은 그냥 보냈고 그 뒤 여성이 들어오자 살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때도 강남역 10번 출구엔 노란 포스트잇의 물결이 파도쳤고 ‘약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공포’를 대변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다음 생에는 안전한 나라에서 태어나세요’, ‘여성혐오 범죄 없는 안전한 나라 만들어주세요’ 등의 문구는 젊은 여성들의 공포를 전하며 정치적 해결을 호소한다. 

19살 비정규직 김군이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진입하는 전동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을 때, 도덕적 염결성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어느 진보 정치인의 빈소 앞 복도에서도 그 노란 물결은 펄럭였다. 그런 노란 포스트잇의 언어는 절박하고 순수하고 다급하지만, 그것은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떨어지는 순간성과 위험성이 있다. 그러기에 정치가 필요하고 정치는 그 비명을 받아 신속하게 사회의 시스템을 수선해야 한다. 그것이 공적 애도의 실천이다. 그래서 다른 한 편으로 또한 시가 필요하다.   

얼마 전 어떤 문학상 심사를 했는데 예심을 통과해서 올라온 시집 10권을 읽어보면서 느낀 점이 우리 시대의 시는 거의 애도 작업에 바쳐지고 있고 이시대의 시대정신은 애도하기라는 것이었다. 이 시대뿐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시는 애도하기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김승희 저, 『애도와 우울(증)의 현대시』,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5). 애도의 포스트잇은 연약하고 금방 떨어지고 만다. 그러기에 시인들과 인문학자들은 그 포스트잇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 고통을 쓰며 영원의 치유를 찾는다. 그동안 시인들이나 인문학이나 각종 학회는 그 노란 포스트잇들의 공포와 비명과 분노에 응답하고자 매우 순발력 있게 치열한 노력을 해왔다는 생각이다. 결국 우리 시대의 문학과 모든 인문학은 ‘살아남기 위한 인문학’이고 애도하기의 언어라는 것을 느끼면서 용문산 근처의 불타는 은행나무의 노란 빛을 한 번 더 바라본다.
 

 

김승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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