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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과 낭만주의 과학
프랑켄슈타인과 낭만주의 과학
  • 이두갑 서울대·서양사학과
  • 승인 2018.10.2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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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주년] 神에 도전한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1818년 런던에서 익명으로 출간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모습을 한, 그렇지만 그로테스크한 생명체를 창조한 젊은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Victor Frankenstein)의 이야기이다. 첫 출간 당시 인간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불경함, 그 창조물이 불러일으키는 공포감, 그리고 생명이 물질로부터 진화했다는 유물론적 함의를 지닌 급진적 소설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이 책에 기반한 공연이 런던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 책이 제기하는 과학적, 철학적, 신학적, 정치적 질문들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나타났다. 인간이 과학을 통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생명의 신성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이 소설에서와 같이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관습을 습득하고, 밀턴의 『실락원』을 읽으며 신과 사랑, 도덕을 논의할 수 있다면, 이들에게 인간과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하지 않는가? 과학기술이 인간과 유사한 존재를 창조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 메리 셸리(Mary Shelley)는 19세기 초 낭만주의 과학(romantic science)이라는 맥락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물과 그의 성취, 그리고 좌절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낭만주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흔히 낭만주의란 과학과 이성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최근 과학사 연구는 낭만주의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19세기 과학자들에게 자연은 경이와 신비로 가득한 생명의 보고였다. 일군의 ‘낭만적’ 과학자들은 차가운 이성과 날카로운 논리와 수학에 기반해 세상을 탐구하는 고답적인 이들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과학적 열정과 자연에 대한 낭만적 경외를 지닌 이들이었다. 이들은 자연과의 교류와 이에 대한 숭고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초월하고, 이렇게 얻어진 과학적 성과를 통해 인류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메리셸리.

메리 셸리가 그리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개인사는 무엇보다 19세기 당시 낭만주의 과학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어렸을 적 자연의 신비함과 비밀을 밝히는 과학의 힘에 매료된 그는 17살에 의학 교육을 위해 독일 뮌헨 근처에 설립된 잉골슈타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 직전 열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크게 상심한 프랑켄슈타인은 잉골슈타드 대학에서 당시 급격히 발전하고 있었던 생물학과 의학, 전기화학 등을 섭렵하며 2년 동안 생명 없는 존재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지낸다. 

『프랑켄슈타인』 집필 당시의 메리 셸리 일기에 따르면, 1814년 그녀는 이미 당시 인공적인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과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제네바로 이동하는 도중 그녀는 이미 몇 백 년 전에 연금술을 이용한 생명창조 실험이 행해졌다는 프랑켄슈타인 성(Frankenstein Castle)을 거쳤으며, 괴테와 프리드리히 셸링 등 당대 낭만주의자들의 사상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셸링의 자연철학은 당대 낭만주의 과학자들의 탐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자연관은 『프랑켄슈타인』에 잘 드러나고 있다. 셸링은 모든 물질 속에는 “세계영혼”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 모든 사물들을 더 높은 생명의 형태와 의식으로 고양, 발전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큰 감명을 받은 생리학자 리터는 동물을 대상으로 전기 실험을 하며 자연에 실재하는 “세계영혼”을 탐색했으며, 볼타 전지를 통해 죽은 동물을 전기로 되살리려는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시도는 무엇보다 당대 과학적 탐구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단순히 물질에 대한 기계적 이해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이고 고차원적인 생명과 의식의 신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많은 과학자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낭만적 실험들로 여겨졌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은 역시 당대 낭만적 과학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프랑켄슈타인』을 근대과학에 대한 오만에 사로잡혀 광기에 찬 과학자의 비극을 그린 첫 소설 중의 하나로 평가하는 것은 다소 이를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 

실제 『프랑켄슈타인』을 읽은 독자라면 깨닫게 되듯이, 이름 없는 괴물의 성장은 이미 낭만적 과학이 인간과 같은 존재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괴물은 점차 자라면서 언어를 배우고, 마구간의 틈 사이에서 인간의 가족들을 엿보며 사고와 사상을 넓혀나간다. 그는 밀턴의 『실낙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플르타크 영웅전』을 통해 급진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상을 배우며 점차 인간스러운 존재로 성장한다. 이에 메리 셸리가 던진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창조한 ‘인간스러운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인공 생명, 인공 지능, 로봇과 같은 존재의 개발에 열광하는 우리는 과연 이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프랑켄슈타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두갑 서울대·서양사학과
서울대에서 지구 환경과 과학사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과학기술사)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자연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사, STS 관련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The Recombinant Universit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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