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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해갈등과 특검 이후
집단이해갈등과 특검 이후
  • 정근식 전남대
  • 승인 2003.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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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정근식 전남대 사회학 ©

근래에 대미 외교 논쟁과 NEIS논쟁, 신당논쟁을 거쳐 노동자들의 파업을 둘러싼 논쟁, 특검 수사결과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는 어수선함과 혼란함이 극에 이른 느낌이다. 탄생한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노무현정권은 국제적 압력과 함께 국내적으로는 거대야당과 보수 언론의 끈질긴 공세에 시달릴 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조차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마치 후보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지난 주에 경제5단체는 대부분의 노동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법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한다고 공공연하게 정부와 노동자에 대하여 광고공세를 취했다. 일부에서 이들의 주장을 파업망국론이라고 명명하면서 이런 주장이 과장된 것이고 노동조합을 자극하여 더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비판하였지만,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정도를 보면, 이미 원래 기도했던 광고 효과는 충분히 달성한 듯하다.

한국전쟁 발발 53주년이 되던 25일에는 특별검사팀이 ‘남북정상회담 대가 1억불송금’사실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특별검사법이 부여한 임무의 완수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는바, 그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가 훼손되지 아니할 것과 경제적 파장이 최소화되어야 할 것을 염두에 두어 왔”고, 또한 “이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종식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동시에, 이 사건수사에 관련한 논쟁이 장차 남북정책실행의 투명성, 공정성, 적법성 확보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였지만, 실제 정치현실은 이들의 희망을 겉치레용으로 만들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실마리가 되었다. 특검은 햇볕정책의 추진자들을 실정법 조항을 들어 기소하였지만, 특검 수사발표이후 곧바로 특검과 이를 만들어 낸 정치주체들에 대한 정치적 심판을 예비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분단체제하에서 우리의 실정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이 발표이후, 이 돈을 통일비용 또는 평화유지비용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과 인공햇볕론, ‘돈 주고 산 평화론’ 등이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이런 사회적 논쟁과 혼란을 관통하고 있는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혼란에는 현 정권의 이상주의적 경향과 아마츄어리즘에 따른 정치적 오판이 작용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정치가 사회집단의 이해관계 뿐 아니라 감정적 요인에 의해 과도하게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거대야당과 몇몇 보수언론의 행태를 분석해보면, 과연 이들이 지난번 대통령 선거결과에 대하여 흔쾌히 승복했는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사실들이 많다. 심지어 지난 정권 자체를 통째로 부인하고 싶은 욕망도 엿보인다. 이들은 ‘특정인에 대하여 이유없이 그냥 좋거나 싫은’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엄청나게 증가한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파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했고, 무역자유화가 진행되는 현실에서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했지만, 정말 변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 저변에 흐르는 불신체제이다. 비판해야 할 것과 포용해야 할 것이 구별되지 않으며,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과 말로써 토론해야 할 것이 구별되지 않는 이유는 상대에 대한 불신,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에 있다. 이순신장군 칼만큼이나 길어진 경찰의 시위진압봉을 보면서, 문민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자신의 민주성을 확신하면서 파출소의 창문이나 시위진압용 버스에 붙어 있던 방석망을 떼어냈지만, 얼마되지 않아 다시 부착해야 했던 경찰의 모습에서 배어나온 씁쓸함,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후 상당기간 시위가 잠잠해졌다가 다시 시위가 되살아날 수밖에 없던 때의 씁쓸함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정말 우리가 어디까지 왔나, 우리 사회에서 양보와 관용은 불가능한가. 노무현정권이 ‘참여’를 내걸고 출발하였지만, 참다운 참여가 실현되려면 근본적으로 불신체제에 기초한 각종 제도와 관행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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