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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딜레마, ‘전제 애호’의 극복은 소통을 통한 존중과 합의로
지식인의 딜레마, ‘전제 애호’의 극복은 소통을 통한 존중과 합의로
  • 서유경 경희사이버대·후마니타스학부
  • 승인 2018.10.2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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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에필로그_ 『분별없는 열정: 20세기 정치 참여 지식인들의 초상』(마크 릴라 지음, 서유경 옮김, 필로소픽)

이 책의 원제는 『The Reckless Mind』이다. 사실 이 영문 제목을 문자대로 고지식하게 우리말로 옮겼더라면 분별없는 열정이 아니라 ‘정신’이 됐어야 옳다. 만약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표현은 적확했을지라도 얼른 독자에게 이해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정신’과 분별력 있음을, ‘열정’과 분별력 없음을 연결시키려는 인지적 관성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 귀에도 분별없는 ‘열정’이 분별없는 ‘정신’보다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실제로 감성 측면에서의 분별력 결여가 아닌, 이성 측면에서의 분별력 결여 문제이다. 그래서 이것은 지식인의 문제, 즉 이성적 판단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성적 판단의 문제

우리는 이성적 판단의 오래된 사례 하나를 성경에서 발견하게 된다.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 하와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그에 앞서 뱀이 ‘그것을 먹어도 죽지 않을 뿐더러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악을 구별하게 된다’며 하와에게 그 맛나 보이는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했을 때 하와는 속아 넘어갔다. 그러나 그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한 것은 눈이 밝아진 자신이 그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이성적 판단 때문이었다. 요컨대 하와가 뱀에게 감성적으로 설득을 당했다면 아담은 하와에게 이성적으로 설득을 당했던 셈이다.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플라톤도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성적 설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동굴 속에서 밧줄에 묶인 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사람 한 명이 어느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는 비로소 밝고 명징한 세계가 동굴 바깥에 펼쳐져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사람들과 함께 묶여 있던 밧줄을 풀고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간다. 이것이 플라톤이 설명하는 ‘페리아고게(periagoge)' '영혼의 전회' 그리고 ‘비은폐된 진리의 세계(aletheia)’로 나아가는 행위이자 무지에서 앎으로 이행하는 여정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여정은 그 사람이 다시 동굴로 귀환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굴로의 귀환 

마크 릴라에 따르면 거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지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가 지식의 “전체”를 이해하려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양자를 다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신적인 것’이란 가지계(可知界), 즉 이데아의 세계를, ‘인간적인 것’이란 가시계(可視界), 즉 현상의 세계를 가리킨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각기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으로서 철학과 활동적 삶(Vita Activa)으로서 정치를 시사한다. 플라톤은 이 두 가지 삶의 양식이 한 개인 속에 합해져서 지식의 전체를 이해하는 철인왕을 자신의 정치철학적 이상으로 제시하지만, 그 자신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동굴 귀환의 두 번째 목적은 계몽이다. 동굴은 정작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사물을 명확하게 보고 있다고 믿는 비철학자들로 채워진 현상의 세계이다. 현상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관조하는 철학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는 지식의 전파, 즉 계몽이 철학자의 본분이기 때문이고,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민주적인 도시 아테네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 도시는 스스로 철학자라 칭하는 자들을 포함한 비철학자들로 넘쳐났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결국 자신의 철학적 지조와 하나뿐인 목숨을 맞바꾸는 비극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플라톤의 시라쿠사 방문

플라톤 자신도 동굴로의 귀환을 위해 스승 못지않게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는 젊은 시절 디오니시오스 1세가 통치하던 시기에 시라쿠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의 방탕한 생활방식에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그가 왜 그곳에 두 번 씩이나 다시 간 것일까? 표면상의 이유는 그와 함께 철학의 대의에 헌신한 자신의 제자 디온이 디오니시오스 2세가 신임 통치자가 되었으며 그가 플라톤에게 직접 좋은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고 방문을 간청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첫 번째 시라쿠사 방문이 자신의 지식의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 방문의 목적은 교육, 즉 전제군주에게 정의로운 통치술을 계몽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고집불통의 디오니시오스 2세를 철학과 정의로 인도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돌아왔다. 수년 뒤 또 다시 디온의 간곡한 권유로 시라쿠사를 세 번째 방문하지만 자신이 이제 스스로 철학자라 칭하며 더욱 기고만장해진 전제자 디오니시오스 2세의 꾐에 빠졌음을 깨닫고 가까스로 목숨만 부지한 채 도망쳐 나왔다. 그의 계몽 계획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지식인의 딜레마

릴라는 “디오니시오스 2세는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지난 세기 동안 디오니시오스 2세는 여러 이름으로 환생했다. 레닌과 스탈린, 히틀러와 무솔리니… 사담과 호메이니, 차우세스쿠와 밀로세비치 같은 이름들은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고 탄식한다. 마찬가지로 그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하이데거, 슈미트, 벤야민, 코제브, 푸코, 데리다 등도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그들도 플라톤처럼 시라쿠사에 갔다가 실망하여 자책했고, 소크라테스처럼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철학의 본령이 계몽인 한, 동굴로의 귀환, 즉 활동적 삶으로의 복귀는 어쩌면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철학자의 직업적인 전제 애호 성향이 이 과정을 통해 급격히 활성화되며, 계몽의 이름으로 특정 지식의 관점에 경도된 통치양태를 정식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제 애호는 사실상 모든 지식인이 극복해야 할 딜레마로 특정된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릴라는 지식인의 전제 애호는 진정한 지식 또는 ‘궁극의 선’을 추구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소통을 통한 존중과 합의

우리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다 지식인이다. 지식이 더 이상 소수에 의해 독점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은 상식과 동격화된다. 이제 더 이상 계몽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일부인 전제 애호는, 릴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가 ‘궁극의 선’이나 ‘진정한 지식’ 획득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보다, 서로간의 소통을 통한 존중과 합의를 지향함으로써 극복될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 정신의 분별없는 열정은 우리의 의견과 상식의 공유를 통해 언제든 집단지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유경 경희사이버대·후마니타스학부
경희대에서 정치철학으로 박사를 했다. 『아렌트와 하이데거』, 『아렌트 읽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렌트 ‘정치 행위’ 개념 분석」 등 다수의 논문을 출간하였다. 그 밖에도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시민정치론』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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