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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술 앞에 놓인 질문들
지금, 예술 앞에 놓인 질문들
  • 심상용 동덕여대·큐레이터학과
  • 승인 2018.10.22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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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언 허스트가 2007년 제작한 작품. 출처=KIAF 2012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965~), 런던 골드스미스(Goldsmith) 출신에 터너상(Turner Prize) 수상자로 최근에 가장 ‘잘 나가는’ 작가 군에 속한다. ‘글로벌 미술시장 접근 전략’ 같은 유행을 타는 강좌에서 단골 성공사례로 거론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한 ‘약 시리즈(medicine Series)’는 약에 대한 현대인의 맹신에 가까운 믿음과 ‘왜 사람들은 약을 믿는 것처럼 예술은 믿지 않는가’의 반문에서 시작되었다. 허스트는 약처럼 ‘전적으로 신뢰받는’ 예술을 원했고,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회사들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진 마르시아 안셀(Marcia Angell)은 그렇게 되는 것은 틀림없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거라고 충고한다. 약에 대해 현대인이 보이는 믿음에는 대중을 호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의약품 광고들의 탁월한 성과가 상당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셀에 의하면 “우리가 제약업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그들의 엄청난 선전에 기인한 환상에 불과하다“ 심지어 위싱턴 대학의 미켈 보쉬 야콥슨(Mikkel Borch-Jacobsen) 교수는 제약회사들이 한편으론 철저하게 감추면서 다른 한편으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진실인 약의 심각한 중독성을 들어, 그들을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사욕을 채우는 범죄조직“과 다르지 않다고 일갈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진실과 그 조작의 문제다. 1999년 5월 25일 스미스 클라인 비첨-나중에 글락소스미시클라인으로 그 이름이 바뀌는-이 개발에 성공한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아반디아(Avandia)의 심각한 부작용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를 경유하자. 진실은 언제나 세상에 알려진 대로가 아니다. 심장질환과 관련된 심각한 부작용이 은폐되는 동안, 아반디아는 기적적인 성공을 이어갔다. 2006년 이 약 하나의 연간 매출이 32억 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뉴욕 법원의 명령으로 은폐됐던 실험결과가 밝혀졌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반디아를 복용한 당뇨병 환자 중 심장 질환발생 사례가 전체의 43%나 되었기 때문이다.” 

약품에 대한 현대인의 맹신적인 믿음을 유지, 강화되는 이면에서 진실은 헌신짝만 못하게 취급된다.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 소속 교수 존 부스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했을 때, 다국적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온갖 방식을 동원해 협박했다. 부스 교수가 동료 의사인 심장병 전문의 스티븐 니센에게 털어놓은 내용의 일부이다. “제약회사의 경영진이 의과대학 학장에게 직접 연락해 왔어, 내게는 ‘아반디아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려고 1주일 내내 메일을 보내왔지. 결국 나는 겁을 먹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리 쉽게 굴복했는지 나 자신이 부끄러워.”

하지만, 부스 교수가 부끄러워했던 나약함은 갈수록 대학 지식인의 전형화 된 행동양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의 사전조치에 협력하기, 사전적인 매수나 협박 등에 쉬운 동조나 무릎 꿇기, 감쪽같은 조작이 성공했을 때 주어지는 달콤한 보상…, 그래서 질문은 더욱 환자-소비자의 직접적인 몫이 되어야 했다. 안셀은 환자로서 의사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사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제안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확인해봐야 할 것들이다. 

“선생님은 이 약의 제조사와 금전적 연관이 있으신가요? 제가 이 약을 복용하거나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에 포함되는 대가로 돈을 받으시나요? 시간을 내서 제작회사 담당자들을 만나시나요? 이중 하나라도 그렇다는 대답을 한다면, 의사를 바꿀 것을 고려하라, 의사가 오로지 최선의 처방이라는 기준에 의해서만 판단하는지 알아야 한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의 목록이야말로 정신과 영혼의 내밀한 영역을 담당하는, 적어도 그렇다고 여전히 믿어지는 예술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권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명예의 전당에서 당신의 작품을 보는 대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충돌하는 이질적인 가치들이 포함되는 계약 같은 사전단계가 있었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선전하고 소개하는 예술가가 최선을 다해 정제된 의식에 도달하고, 그것을 인간 동료들과 공유하려는 기준에 우선해서만 창작에 임하고 있는지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더는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주지 않기에-전문가들은 더더군다나-, 관람자가 직접 질문해야만 한다는 것도 제약업계와 다르지 않다. <워싱턴 포스트>가 그들의 수입이 어디서 오는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이제 제약산업 뿐 아니라 전적으로 예술산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예술과 기업의 다양한 거래가 협업의 이름으로 일반화되고 정당화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이러한 질문을 비현실적이라거나 이상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근거가 아니라, 그렇기에 더더욱 그 질문을 내려놓아서는 안 되는 근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예술품에 마케팅의 속성이 가미되다보면, 어느 순간 양자를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지는 임계점에 도달한다. 오늘날 우리는 거의 그 지점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 2009년 올림픽 오프닝을 기념하게 위해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공공조형물 <아르셀로미탈 궤도.ArcelorMittal Orbit>를 올림픽 스타디움 옆에 세웠다. 높이 118m로 영국에서 가장 높은 예술품으로 기록된, 이 위로 솟구치는 듯한 형상의 공공조형물 제작에 소요된 1,400여 톤의 철강과 320여억 원의 제작비는 세계적인 철강재벌 락슈미 미탈(Lakshmi Mittal)이 후원했다. 이 정도라면 락슈 미탈이 회장인,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다국적 철강회사의 명칭인 ‘ArcelorMittal’이 작품의 제목이 될 만하지 않은가. ‘전자구름’의 유동적인 에너지를 형상화했다는, 이 거대한 것은 크게 양보하더라도 예술품인지 예술품을 빙자한 기업 홍보물인지 혼란을 초래한다. 2009년부터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의 정치적이고 패권주의적인 동기에서 추진된 프로젝트니 만큼, 이 조형물에 대한 기대가 ‘랜드마크로서 런던의 자부심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임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매스미디어들이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비교되는 쾌거라는 기사를 쏟아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빅 파마(Bic Parma)의 시대 ‘진정한 의학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는 마땅히 그리고 고스란히 예술의 것이기도 하다. 예술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상용 동덕여대·규레이터학과
서울대 미대에서 회화와 서양화를 전공하고,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와 D.E.A.를,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미술 길을 잃다』, 『아트 버블』, 『예술, 상처를 말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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