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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가들의 '딜레마'와 '보편적 미학'으로의 길
한국 미술가들의 '딜레마'와 '보편적 미학'으로의 길
  • 박정애 공주교대·미술교육과
  • 승인 2018.10.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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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성장은 수요와 공급의 경제 원리와 맞물려 있다. 절대 빈곤의 절박함에서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미술가가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 더 이상 좋은 미술이 나오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명성과는 달리 평생 소박한 가난의 삶을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는 미술의 전성기가 항상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였음을 말해준다. 칭기즈 칸이 중국 전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유럽 등 전 세계의 반을 장악하였던 12세기는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이 활발해지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미술 또한 황금기를 맞았던 시기였다. 고려가 천하제일의 비색 청자를 만들게 된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미켈란젤로는 늘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가 예술적 혼을 마음껏 불사를 수 있었던 르네상스의 배경은 15세기 금융업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였다. 당시 피렌체 도시 국가의 재정이 영국 튜더왕조보다도 좋았다고 한다.

21세기의 삶의 배경은 서구의 글로벌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이다. 세계화 과정이 확장되면서 점점 더 많은 수의 한국 미술가들이 해외에서 교육을 받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한국 미술계와도 매우 긴밀한 유기적 관계 속에서 활동한다. 해외에서의 성공은 일단 한국에서 활약하기 위한 일종의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한 미술가가 해외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 그 미술가의 작품은 예외 없이 한국의 미술관들과 갤러리에서 사들이고 전시한다. 따라서 세계적인 미술가로 성장하는 데에는 그 미술가가 태어난 국가의 국력이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미술계가 어느 한 작가를 키우기 위해 집중적인 후원을 해도, 그 미술가의 가치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똑같이 인정받아야만 예술적 성공이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한국 미술가의 작품을 한국 미술 시장에서 100만 불에 사들인다고 해도, 그 작가의 작품 가격이 세계 미술 시장에서 똑같이 형성이 돼야만 세계적인 미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미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의 중심지에서 세계적인 미술가들과 경쟁해야 한다.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기 위해 경쟁지로 뛰어든 한국 미술가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승부를 걸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한국적인 전통과 뿌리에서 타자의 이질성과 어떻게 타협하면서 새로운 조화의 미를 만들어낼까? 모든 것들이 혼효되는 세계화 현상 속에서 한국 미술가들은 무엇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주장할까?  

필자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뉴욕, 런던, 파리 등 미술의 메카들에서 활동하는 55명의 한국의 성공적인 디아스포라 미술가들에 대한 심층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현장연구 결과, “보편성(universality)”이 이들 미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미적 가치로 확인됐다. “어떻게 하면 나의 작품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universal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미술가들의 관심은 바로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universal한 작품을 만드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보편성으로서의 미술'은 또한 과거 모더니즘 미술에서의 명제이다. 20세기 중반 세계의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지역적, 민족적, 국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추상이라는 작업으로 일관되게 작업했다. 미국의 미술가도, 영국의 미술가도, 스페인의 미술가도, 그리고 강원도 양구 출신의 한국인 박수근도 모두 추상으로 작업해야 했다.

그러자 세계의 언어는 달라도 미술은 보편적인 시각 언어라는 담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획일화의 경향에 대한 반작용이 나타났다. 포스트모던 렌즈로 바라 본 미술은 오히려 각기 다른 지역성을 가진 무수한 이질성의 언어였다. 그 결과, '많은 문화, 많은 미술'의 존재가 인정됐다. 이제 한국 미술가들은 국제적인 비엔날레나 전시회에 토우와 옹기, 그리고 한지 등과 같은 한국적인 또는 토속적인 매체를 사용한 작품을 전시하게 됐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이러한 이념에서 탄생하게 됐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세계 최첨단의 국제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미술가들이 다시 모더니즘 시대로 회귀한 것인가? 이들이 말하는 보편성이란 과거 모더니즘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필자는 최근 출판한 『보편성의 미학: 세계화와 한국미술』에서 21세기 세계화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미술가들의 작품 활동과 그들이 주장하는 보편성을 포함한 일련의 미적 가치들을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해석할 수 있었다. 미셀 푸코는 “21세기는 아마도 들뢰즈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21세기 미술가들의 작품 제작에서의 제반 현상들을 그의 철학을 통해 명징하게 해석할 수 있었으니, 들뢰즈는 분명 21세기에 매우 중요한 철학자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기 위해 미술의 중심지에서 활동하려는 미술가들에게 한국적 뿌리는 매우 낡아빠진 구시대적 유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그것은 타자로부터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많은 미술가들은 그들의 한국성에서부터 “탈영토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서양인이라는 타자는 한국 미술가들에게 차이의 기호로서 그들의 뿌리의 표현을 요구한다.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와는 다르지 않는가?” 이런 요구에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주로 자신들의 어린 시절 경험들을 반추하며 다시 한국적 뿌리로 되돌아온다. 이른바 “재영토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탈영토화는 반드시 보충적인 또는 상관적인 재영토화가 뒤따른다. 그러나 재영토화는 과거로의 단순 회귀가 아니다. 미술가들은 현대 미술과 미학 이론, 미술시장과 관련된 취향, 경향, 기술·특별히 전자, 디지털 기술, 문화적 생산에 대한 현대적 방법, 정치적 믿음 등 자신들이 조우한 다양한 환경과 상황들을 작품에 반영한다. 이렇게 하면서 그들의 한국성은 “배치체(assemblage)”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들의 한국성이 현대적인 것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타자가 공감하는 보편성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거듭되는 매커니즘에 의해 해외에서 작업하는 한국 미술가들은-한국에서 작업하는 미술가들보다-오히려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백남준 이후 서양의 주류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김수자는 한국의 이불보, 보따리 등을 사용하면서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과 현대인의 유목주의에 대한 시각적 은유를 만들고 있다. 서도호 또한 한국의 교복, 한옥, 앨범 등을 통해 획일화된 교육, 개인적 정체성, 그리고 집단성과 개체성을 은유하고 있다. 또한 많은 미술가들이 각기 다른 오브제와 방법을 사용하면서 불교철학, 도가사상, 유교철학 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거주 미술가들은 자신들이 결코 적극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한국성을 추구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들은 많은 인종들이 공존하는 국제도시에서 특별히 “한국인 미술가”라는 좁은 범주의 에스닉(ethnic) 미술가로 분류되길 원하지 않는다. 보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작업하는 범세계적인 작가이고 싶다. 그래서 그들은 한 편에서는 자신들의 한국성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길 바라는 차원에서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보편성의 추구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미술가들과의 현장연구 자료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소재를 회피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이를 적극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모순적으로 또 한편에서는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한 것인가? 이 같은 한국적 소재의 사용은 초문화적 공간에서 타자와 구별되는 미술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확인됐다. 이런 선택은 미술가들이 애초에 계획하지 않았던 것으로 타자와의 “우연적” 만남을 통해 “무의식적인” 변증법적 작용이 일어나면서 이뤄진 것이다. “한국 미술가”라는 작은 그릇에 자신들의 예술성을 담고 싶지 않다는 차원에서 미술가들은 한국적 소재의 사용을 의도하지 않지만, 타자와 다른 차이의 차원에서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반의식적 상태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한국문화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하면 이에 저항하면서도 실제로 자신들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내가 한국적인 것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왜 내가 뉴욕에 와 있겠어요?” 

실로 이들 미술가들은 “우연적으로” 자신들의 한국성을 드러내면서, 그것이 또한 “진정성”이 있으면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것으로서 “현대성”과 “보편성”을 지니길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가들에게 있어 보편성은 독창성, 진정성, 창의성, 현대성, 그리고 우연성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들뢰즈 이론은 보편성/독창성 대 특수성/일반성을 구분하고 있다. 우리는 일반성과 보편성을 혼동해 사용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보편성이란 어떤 성질의 것인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적인 것의 일반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라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술가들이 가장 일반적인 것을 만들어 세계인에게 호소하고자 하는가? 들뢰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는 보편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들뢰즈에 따르면, 보편성은 오히려 바로 한 개인 특유의 “독창성(singularity)”에 기인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 미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미술이 진정으로 작가 개인의 이야기일 때, 세계인들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줍니다.” 한 개인 특유의 독창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다. 독창성 자체가 바로 보편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런 독창성은 한 개인의 진실성의 표현인 진정성을 담으며, 그와 같은 진정성의 표현은 현대를 사는 자기 표현이기 때문에 또한 현대성을 보증한다. 이러한 보편성은 항상 타자의 요소들이 번역되면서 배치체를 만들 때 가능하다. 21세기 한류를 이끄는 K-pop의 독창성/보편성은 한국 가사에 서양의 팝송, 록음악, 재즈 고스펠, 힙합, 전자 댄스, 포크 송, 컨트리 송 등 온갖 종류의 타자 요소들이 번역된 배치체를 만든 데에 있다. 배치체의 형성은 바로 창의성의 표현인 것이다. 

일반성은 질적 유사성과 양적 등가성을 가지며 대체와 교환이 가능한 것이다. 들뢰즈 이론을 토대로 해석하면, 과거 모더니즘 시대 추상으로 전 세계의 미술가들이 한결같은 양식으로 작업한 것은 미술의 일반성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1980년대 이후 다문화주의를 통해 지역 특유의 미술을 인정한 것은 바로 미술에서의 특수성이다. 일반성과 특수성은 바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수요와 공급의 원리이다. 시장에는 일반적인 것과 그에 반하는 특수한 것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존재한다. 그런데 서구 주도의 미술시장에서 보면 한국 미술은 비주류의 특수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서양 미술계의 주류로서 세계의 미술을 이끄는 담론과 이슈를 제시하는 쪽은 백인의 아메리칸, 유럽 미술의 몫이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동양은 평화롭고 고요한 명상을 좋아하는 선불교의 나라이다. 따라서 비주류인 한국인 미술가는 반드시 한국 미술가들답게 표현해야 한다. 많은 한국 미술가들이 이러한 서구의 타자의 눈에 비친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해외에서 전시를 하는 많은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real하지 않고 지극히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한국문화는 차이의 브랜드인 특수성의 문화상품인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독창성, 창의성, 진정성, 그리고 현대성의 표현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보편성을 성취할 수 없다.

결국 서양 주도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21세기 한국 미술가들은 이중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하나는 서양의 타자가 요구하는 특수성에 대항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들의 독창성을 통해 진정성 있고 창의적이며 현대적인 자신의 실존적 표현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보편성을 성취해야 하는 임무이다. 그 길은 먼저 기존의 한국성에서 탈영토화해서 미술가가 경험한 타자의 요소들과 관계하면서 재영토화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 즉 관계의 배치체를 만드는 여정인 것이다. 
    

박정애 공주교대·미술교육과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미술교육 전공으로 석사를, 영국의 서리대학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는 『포스트모던 미술, 미술교육론』, 『의미 만들기의 미술』이, 역서로는 『미술교육의 역사』, 『래디컨트: 니꼴라 부리요의 현대미술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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