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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그 많은 비엔날레를 품게 된 이유
한국이 그 많은 비엔날레를 품게 된 이유
  • 김영호 중앙대·미술학부
  • 승인 2018.10.22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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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포스터

비엔날레 천국, 한국의 미술계를 이르는 말이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비엔날레가 16개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광주, 부산, 대전, 대구, 공주, 청주, 창원, 목포, 강릉, 경기, 제주 등 국토 전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제인 비엔날레가 인구대비 백화만발의 현상을 보이는 나라는 세계 유일이다. 금년 한 해 동안 개최 되었거나 개최 중인 비엔날레를 회기 순으로 나열해 보자. 우선 맏형으로 출생한 광주비엔날레(12회)를 서두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10회), 부산비엔날레(9회), 금강자연비엔날레(8회), 대구사진비엔날레(7회), 대전비엔날레(4회), 창원조각비엔날레(4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1회), 강원국제비엔날레(1회)등 9개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다 작년에 열렸던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11회), 청주공예비엔날레(10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9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7회), 국제타이포그래피비엔날레(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1회), 제주비엔날레(1회) 등 7개를 더하면 16개가 된다. 지역의 소규모 비엔날레와 사라진 비엔날레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국토의 면적이 세계 주권국 중 109번째인 나라가 가장 많은 비엔날레를 품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1995년에 문을 연 광주비엔날레의 출범 당시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비엔날레는 지방자치 제도의 도입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지방 분권이라는 명분 위에 등장한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은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축제와 미술제 따위의 대형 문화행사가 필요했다. 이른바 예술과 권력 사이의 역학적인 관계를 선거에 끌어들여 군중의 의식을 집결시키고 연대감을 높이는데 비엔날레는 더없이 훌륭한 도구였다. 둘째, 광주는 5·18 민주항쟁의 상처를 문화예술로 치유하고 역사의 맥락 위에 올려 세우기 위해 비엔날레라는 문화적 쟁의의 실험장을 전략적으로 도입했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내세운 주제인 <경계를 넘어>는 세계화와 지정학적 경계의 재편, 지역의 정체성과 보편성, 유목주의와 디아스포라 따위의 당대 이슈에 미래적 가치를 제안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광주비엔날레는 전쟁, 기아, 폭력, 인권, 평화, 냉전, 이주, 난민과 같은 과제에 대해 성찰하는 장소가 되었다. 

광주비엔날레의 탄생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후발 비엔날레들은 정치적 이슈를 등에 짊어지게 되었다. 한편 지역발전과 관광산업 그리고 도시재생과 같은 과업을 스스로 부과하면서 존립의 명분을 얻어 내었다. 이태리의 베니스비엔날레나 독일의 카셀도큐멘타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같은 명품 행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생 비엔날레들은 해당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나 전통적 문화유산에 맞추어 특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현상을 낳았다. 이른바 금강의 자연비엔날레, 청주의 공예비엔날레, 대전의 과학비엔날레, 대구의 사진비엔날레, 창원의 조각비엔날레, 전북의 수묵비엔날레 등은 기존의 종합적 장르의 비엔날레가 아닌 특정 장르를 내세운 전문 비엔날레의 사례들이다. 비엔날레의 전성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비엔날레들은 막대한 예산과 인력의 낭비라는 비난 속에서도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고 다지고 국내외 지역 간의 문화적 교류와 홍보의 장 역할을 담당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비엔날레의 증가와 더불어 부각되기 시작한 또 하나의 이슈는 미술관과의 차별성에 관한 것이다. 비엔날레의 기능과 미술관의 기능은 과연 다른 것일까?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비엔날레와 미술관 모두가 전시를 통해 미술문화를 생산하고 소통하지만 그 내용과 방법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비엔날레가 ‘문화 권력과 정치적 헤게모니의 각축장’으로 기능한다면 미술관은 소장품 중심의 사업으로 지역의 미술문화를 향상시키는데 중점을 둔다. 비엔날레와는 달리 미술관의 경우 관련법에 의해 그 기능을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우리나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미술관을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나아가 동법은 미술관이 수행해야 할 사업은 미술관 자료를 둘러싼 7개의 사업뿐만 아니라 답사, 복제 간행물 제작과 배포, 특수 프로그램과 정보의 교환, 학예사 교류, 그리고 평생교육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과는 달리 비엔날레는 태생에서부터 차별화 된 조직과 운영방식을 유지하며 현실과 제도에 대한 비판과 쟁의를 실행해 왔다. 따라서 비엔날레의 주체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주체들과 ‘팔걸이 정책’이라 불리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해 왔으며 이를 비엔날레 정책의 미덕으로 삼아 왔다. 이 과정에서 점차 비엔날레는 미술관 조직과는 다른 독립적인 운영조직을 구성해 제도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실험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차별적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역의 경우 사업에 실패하고 지역 공동체가 분열되는 사례를 우리는 보아왔다. 

우리나라에서 비엔날레 확산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대 이슈를 성찰하는 비엔날레의 자유로운 기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엔날레의 확산 현상의 미래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예측하기 어렵다. 현재의 비엔날레 주체들은 점차 미술관 사업의 형태와 차별화 하는데 지혜를 모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이라 해서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 비엔날레는 우리가 말하는 독립적 이벤트로서 비엔날레가 아니다. 미술관이 국제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미술관이 해야 할 기능과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미술관이라는 문화기반시설의 제도와 조직으로서는 ‘정치적 헤게모니와 문화 권력의 각축장’으로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비엔날레는 엄밀히 말해 문화기반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 유목민들이 벌이는 하나의 이벤트이자 축제이며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문화적 쟁의 장치라 할 것이다. 비엔날레의 건강성은 바로 이벤트를 기획하고 주제에 맞는 예술가를 모으고 문화적 토론을 자유롭게 진행하며 지구촌 공동체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미술관이 제도와 조직이라는 안정된 반석 위에 백년대계의 정책을 실현해 나가야 하는 문화기반시설이라면,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고 진화하는 유기적 생명체와 같다. 전국에 만개해 있는 14개의 비엔날레는 유기적 생명의 문화 이벤트가 많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찰이 대상이 되어야 할 특정 권력의 힘에 의해 동맥경화의 증세를 지닌 불통의 전시회로 전락한다면 머지않아 비엔날레의 해체 도미노 시대가 도래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호 중앙대·미술학부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으로 박사를 했다. 현대미술학회와 인물미술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FIAC <한국의 해> 커미셔너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미술 시사비평』, 역서로는 『뒤샹 나를 말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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