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8-23 16:57 (금)
북한강에 흐르는 과거와 현재
북한강에 흐르는 과거와 현재
  •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연구단
  • 승인 2018.10.22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성에서 강화까지, 경계에 핀 꽃: DMZ 접경지역을 만나다_ 17 평화의 댐 - 물문화관 - 파로호전망대 - 딴산

한강은 ‘하나의 강’이 아니다

한강은 계곡물과 시냇물이 모여 만들어진 작은 강들이 다시 합쳐져 만들어진 강이다. 한강을 이루는 두 개의 큰 물줄기는 북한강과 남한강이다. 이 두 물길은 ‘두 갈래의 물’이라는 지명이 보여주듯이 경기도 양평 양수리(兩水里)에서 만나며 서울을 관통하여 서해로 흘러나간다. 물론 지리학적으로 한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 금대봉 검룡소(儉龍沼)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양수리에서 발원지까지의 길이가 남한강 394㎞, 북한강 325.5㎞로, 남한강이 더 길기 때문이지 북한강이 발원지가 아니기 때문은 아니다. 

자연에는 하나의 발원지가 없지만 오직 사람들만이 그것을 따져 어느 하나를 고집할 뿐이다. 남한강은 대한민국 강원도 금대봉 검룡소가 발원지이며 북한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회양군 상북면 연대봉(蓮擡峰 1,092m)이 발원지이다. 이 두 개의 강줄기는 남과 북 양쪽에서 발원하여 동일하게 동에서 서로 흐른다. 하지만 남한강은 북을 향해 흐르며 북한강은 남을 향해 흐르며 그들은 양수리에서 만나 ‘서울의 한강’을 이루고 서해로 향하다가 북에서 온 또 하나의 강줄기인 임진강을 만나 분단의 경계선을 타고 강화도 앞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강은 남과 북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아주 오래 전 한반도에서 살았던 역사 이전의 사람들까지를 포함하여 온갖 생명들에게 젖줄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기록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북한강도 북쪽의 강이 아니다. 북한강의 발원지는 ‘연대봉’이라고 하지만 남서쪽을 향해 흐르다가 북쪽의 금강군 온정령(溫井嶺, 857m)에서 흘러내려온 금강천(金剛川)과 만나고 그 이후, 다시 북쪽의 금강군 춘양산(春陽山, 1,145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수입천과 양구읍에서 만나 파로호를 이룬다. 화천은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한다.

 

화천댐 사진제공=화천군청

분단의 적대성에 오염된 ‘금강산댐’과 ‘평화의 댐’

화천의 최북단에는 ‘평화의 댐’이 있고 그 아래로 ‘파로호’가 있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대립이 가장 첨예하게 마주치는 곳, 남/북을 가르는 철책선이 지나는 이곳 북한강은 분단체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북한강에는 유독 댐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댐이 ‘금강산댐(임남댐)’이다. 그런데 이 댐이 한 때, 서울 시민들을 비롯하여 남쪽 사람들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적이 있었다. 1986년 전두환 정권은 금강산댐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한 조성된 대규모 ‘수공(水攻)’ 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댐 건설을 위한 국민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평화의 댐은 그렇게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고 그것을 통해 북에 대한 적개심으로 국민들을 통합했던 군부독재정권의 대국민사기극으로 탄생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코드 속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을 평화의 전당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평화의 댐에는 60여 개국에서 수집한 탄피 등을 녹여 만든 ‘평화의 종’을 필두로 세계 각국에서 보낸 다양한 종들이 전시된 ‘세계평화의 종 공원’이 있다. 또한, 맨 위쪽에는 6.25전쟁의 참화를 애도하는 노래, ‘비목’을 테마로 한 애도의 전당, ‘비목공원’이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물의 나라 화천’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화천 평화의 댐 물문화관’이다. 

생명수로 거듭나기를 꿈꾸는 ‘평화의 댐 물문화관’

‘평화의 댐 물문화관’ 앞마당에는 “민족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물그릇”이라는 주제를 가진 조각품이 있다. 물이 모든 생명들의 원천이라면 그것을 담는 그릇은 뭇 생명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단은 이 젖줄을 두 동강 냈고 남북의 상호 적대적 대결은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다. 북쪽을 흐르는 북한강이 생명을 살리는 젖줄이 아니라 사람들을 죽이는 전쟁 무기로 돌변해 버린 ‘금강산댐’ 소동은 이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북한강의 본래적 존재성인 생명수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또한 이곳에 평화가 깃들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민족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물그릇”은 북한강이 꾸는 꿈을 담고 있다.

‘평화의 댐 물문화관’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역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특히, ‘자연 속의 평화의 댐’이라는 주제로 산천어, 산양 등 이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전시하고 있다. ‘물문화관’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미래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식민과 분단, 전쟁을 겼었던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전쟁이라는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고 평화라는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구성 또한 전쟁이라는 ‘과거’, 평화의 댐이 담당하고 있는 ‘현재’적 역할, 그리고 평화의 ‘미래’에 대한 기원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군 3만명이 수장시켰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파로호

권력의 공간 ‘파로호’ vs 생명의 공간 ‘화천호’ 
 
평화의 댐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파로호’가 있다. 화천의 산은 높고 계곡은 깊으며 물은 풍부하다. 한반도 동쪽의 높은 산맥은 깊고 깊은 계곡을 만들어내고 그 계곡을 타고 흐르는 강줄기는 이곳으로 모여들어 “물의 나라,” 화천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화천의 이름은 ‘빛나고 아름다운 하천’이라는 의미에서의 ‘화천(華川)’이다. 그러나 ‘화천(華川)’이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곳이 백두대간을 타고 흐르는 다양한 수원을 가진 강줄기들이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내, ‘화천(華川)’은 조선시대의 지명이었던 ‘화천(和川),’ 즉 ‘서로 응하고 합치는 시내’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파로호’는 이와 같은 호수의 본래적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하다. ‘파로호(破虜湖)’는 말 그대로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이다. 1951년 무려 3만 명의 중국군을 수장시킨 화천전투의 승전을 기념해 이승만 전 대통령은 파로호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 하지만 이 호수는 본래 ‘화천호,’ 또는 ‘대붕호’로 불렸다. ‘화천호(和川湖)’는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각종의 물줄기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대붕호(大鵬湖)’는 그 물길들이 산과 산들 사이의 깊은 계곡을 채우고 있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 형상이 마치 큰 새가 날개를 펼친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파로호의 존재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화천호와 대붕호는 온갖 생명들을 품고 그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수를 제공한다. 모든 목숨의 무게는 동일하며 생명을 살리는데 너와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북진통일을 주장하다가 저 혼자 살겠다고 한강철교를 끊고 몰래 서울을 탈출하여 부산까지 도망갔던 이승만이 그런 존재론적 의미를 알 턱이 없다. 하기야 권력은 너와 나를 구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그들이 기억하는 역사는 너를 죽인 나의 힘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것은 너만이 아니다. 나 또한 권력의 영광을 위해 죽어가야 했다. 

노회하고 부패한 권력은 생명을 죽일 뿐, 살리지 않는다. 오직 권력만을 탐했던 노회한 정치가에 의해 화천호와 대붕호가 파로호로 개명되는 순간, 이곳의 하천은 생명을 살리는 자신의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고 권력에 물든 ‘악마의 강’이 되었다. ‘파로호’라는 이름에는 이곳에 수장된 3만 명의 중국군뿐만 아니라 그 전투에서 죽어간 아군까지 포함하여 그들이 이곳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 목숨의 무게를 기억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오직 국가만이 존재한다. 권력자들은 이들을 ‘영웅화’함으로써 전쟁과 살육을 찬양할 뿐이다. 지금도 파로호는 ‘화천호,’ 또는 ‘대붕호’로 거듭나기를 꿈꾼다.

따로 홀로 뚝 떨어진 산, 딴산. 사진제공=화천군청

1만 2천봉의 하나가 되지는 못했지만, 마을과 물고기의 수호신이 된 ‘딴산’

‘대붕’은 커서 대붕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다. 지구도 전 우주의 차원에서는 하나의 티끌일 뿐이다. 대붕은 서로 다른 것들을 품기 때문에 대붕이다. ‘딴산’은 작지만 ‘대붕’이다. 북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왼쪽으로 갑자기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봉우리가 있다. 그 봉우리의 꼭대기에서 세찬 물줄기가 아래로 떨어지고 그 밑에는 꽤 넓고 깊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그곳이 바로 ‘딴산’이다. 딴산은 말 그대로 ‘따로 홀로 뚝 떨어진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딴산은 높이가 165m에 불과한 조그만 동산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 조그만 산에서 그토록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에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사실, 이 폭포는 화천군이 레저와 관광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폭포이다.

하지만 이 산의 진정한 매력은 여기에 있지 않다. 작은 산이지만 딴산은 결코 왜소하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여기가 오랜 세월동안 산을 지키는 신령이 거주했던 것 같은 아우라를 자아낸다. 딴산은 마치 개울 건너편 언덕 위에 조성된 아담한 마을의 수호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마을 전체를 감싸 안으면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병풍처럼 늘어선 봉우리들 아래로는 맑고 푸른 개울이 삥 돌아나간다. 그래서일까, 조그만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 산에는 설악산의 병풍바위처럼 금강산 1만 2000봉 중 하나가 되기 위해 금강산으로 가던 중 1만 2000봉이 다 채워져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지금의 자리에 눌러 앉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딴산은 마을과 강,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물고기를 품고 있다. 화천의 ‘파로호’가 ‘대붕호’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또한 이와 같다.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연구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