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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민주주의
인프라 민주주의
  •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과
  • 승인 2018.10.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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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과

이명박, 박근혜가 구속되고 정치권력과 국가권력이 민주화됐으며 세종대왕 이래 성군이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통치하는데도 우리 삶은 왜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는가? 우리는 사회의 몰락을 목도하고 있다. 지방의 몰락, 인구의 몰락, 교육의 몰락, 서민과 중산층의 몰락, 자영업의 몰락, 제조업의 몰락, 청년의 몰락 그리고 희망의 몰락. 반면 자산을 소유한 서울의 고소득 직군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상위 20% 계층의 소득은 오히려 더 늘었고 하위 20%와의 격차는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에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이 최근 5억(또는 10억)을 벌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사회 불평등 해소가 문재인 정권의 목표일진데 아이러니하게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보다도 훨씬 더 악화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가?

우리는 정치를 이해할 때 과도하게 ‘인간의 권력’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이명박이 구속될 때 환호하고 재벌의 갑질이 드러날 때 분노한다. 정치학자들은 집단 간의 권력관계에 매몰되어 정당정치에 집착하고 정치권력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런 식의 정치권력에 대한 집착이 사회 불평등을 해결하는데 심대한 방해가 된다.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이 계속 집권하면 호남이 나아질까? 박근혜가 집권하고 나서 경북은 나아졌는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전병유·신진욱 교수의 통계연구를 보면 이들 지역은 한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들이다. 

푸코, 들뢰즈, 라투르 등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휴머니즘 사상가들의 정치이론에서 가장 혁신적인 점은 아마도 ‘인프라 권력’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이들 책에는 정치인들이 나오지 않는다. 파놉티콘, 아장스망(어셈블리지), 행위자-네트워크라는 인프라 권력이 어떻게 사회를 통치하고 생산하는지가 나온다. 인간의 능력과 기회는 상당 부분 인프라 권력이 좌우한다. 평균 IQ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한국인은 왜 노벨상을 아직도 따지 못하는가? 한국 대학과 과학의 인프라가 선진국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상당 부분 ‘서울의 인프라 독재’에 있다. 좋은 직장, 좋은 대학, 좋은 병원, 좋은 주거지, 좋은 쇼핑몰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서울의 인프라 독재에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서울의 자산계급, 명문대 출신, 중장년 세대, 대기업 종사자들이며 이들 이외의 한국 시민에겐 기회가 적고 희망이 없다. ‘서울을 향한 투쟁’이 과도한 경쟁과 병목을 양산하며 극소수의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를 낳는다. 곧 서울이 적폐다. 서울의 인프라 독재가 지속되는 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금융정책, 세금정책, 공급정책을 아무리 동원해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서울의 인프라는 개발정책에 의해 점점 더 좋아지고 서울의 인프라 독재는 더욱더 공고해 지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의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이 부동산 시장 전체를 들썩이게 하지 않았던가. 서울의 개발정책은 지금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 ‘인프라 독재’에 맞서 ‘인프라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노무현은 감각적으로 이를 알았다. 그는 서울의 인프라 독재에 맞서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이라는 인프라 권력의 민주화를 실행했다. 인프라 민주주의가 우리의 길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대기업과 좋은 직장을 지방에 세우거나 이전시켜라. 전국의 거점국립대들을 서울대화하고 네트워크하라. 지방의 낙후된 주거지들을 좋은 주거지로 재개발하라. 한국에서 가장 낙후된 호남을 대개발하라. 청년과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대규모 임대주택을 건설하고 인프라 복지를 확충하라. 

그대, 아직도 문재인의 인품에 빠져 있는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지만 이젠 깨달을 때도 됐다. ‘인간의 권력’이 다가 아닌 것을. 성군이 통치해도 내 자산은 늘지 않고, 내 자식은 명문대에 보내지 못하고, 내 소득은 늘지 않고, 내 마음 속의 희망은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나를 둘러싼 인프라 권력인 것을 시민들, 정치학자들, 정치인들도 깨달을 때가 됐다. 이제 인프라 민주주의를 실현할 때다.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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