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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는 공짜인가
SEX는 공짜인가
  • 조영일 문학평론가
  • 승인 2018.10.22 09: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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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일 문학평론가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 REVIEW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란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최근 어떤 소설을 읽었는데, 제대로 된 남자의 조건 중 하나는 돈을 지불하고 여자와 성교하지 않는 것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이런 것을 읽으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화자는 이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것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취미의 문제이며, 우리는 많든 적든 모두 돈으로 여자를 사고 있다고. 우리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바꿀 수 있다. “섹스는 공짜일까?”

작가의 분신인 화자는 일 때문에 시내에 나갔다가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오래 전 자신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 여성편집자를 만나는데, 이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이다. 여자는 직장동료인 유부남과 불륜관계에 있었는데, 맡고 있던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는 여성 주간지 부편집장으로 발탁된 데에 반해, 그녀는 총무과로 발령됐다고 한다. 편집자로서 자부심이 컸던 그녀는 그런 조치에 반발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애인에게 자신을 그의 부서로 데려 달라고 부탁하지만, 남자는 여러 가지 핑계를 들며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남자의 입장에서 이제 여자는 골치 아픈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남자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여자는 둘의 관계를 폭로하려고도 했지만, 한심한 생각이 들어 그냥 사표를 제출한다. 그리고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하면서 지낸다. 영화도 실컷 보고 책도 마음껏 읽고 여행도 다녔다. 머리도 자르고 새 옷과 구두도 샀다. 정말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10일 정도 지나자 이 모든 일에 싫증이 났다. 보고 싶은 영화도 없어졌고 음악은 시끄럽기만 했으며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파왔다.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면 조금 위로가 되긴 했지만, 일상을 충실히 사는 그들이 매일 그녀를 상대해 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전화가 그들을 성가시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천만 명이 사는 도쿄에서 자신만 한없이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재즈바에서 만난 중년 의사의 유혹을 받게 된다. 그때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만다. “나 비싸요.” 결국, 여자는 일정 금액을 받기로 하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그녀 내부에 응어리져 있던 말할 수 없는 초조감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이후 여자는 서너 번 더 같은 방식으로 남자들과 잔다. 그러다 직장을 얻게 됐고 남자친구가 생긴 뒤에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여자가 중년 의사와 잔 뒤 해방감을 느낀 것은 왜일까.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던진 물음을 약간 비틀 필요가 있다. 섹스는 공짜여야 하는가. 흔히 섹스는 감정과 감정이 만나 자연발화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그런 식으로 섹스를 하고 있는가. 성을 팔고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일반적인 섹스가 노동과 달리 해당 개인의 영혼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화폐가 개입하면 섹스는 영혼을 파는 행위가 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예술작품이 그런 ‘화폐의 퇴장’을 ‘구원’으로 묘사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정서적 교감이 부재하는 섹스란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된 섹스로 간주된다. 즉 물건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는 장인들처럼 하는 섹스가 가장 바람직한 성교인 것이다. 우리는 이를 ‘섹스정신’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렇게 이뤄지는 섹스가 값지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것은 명품매장이 아닌 다이소에 있다. 그리고 일상에서 섹스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상대방을 철저히 대상화할 때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즉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자기애의 확장일 수도 있다. 순수증여라는 말이 그러한 것처럼. 여자는 갑작스러운 ‘화폐의 등장’으로 인해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닐까.

화자는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성생활의 경제적 측면이 경제생활의 성적 측면이기도 하다.” 부연하자면, “우리는 실로 여러 가지 것을 일상적으로 사거나 팔거나 교환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무엇을 팔아서 무엇을 샀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많이 있다.” 그런데 섹스가 산불처럼 무료이던 시절이 정말 있긴 있었던가.

조영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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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gto 2018-10-23 19:12:33
'산불처럼 무료'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아주 어색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주장이 명확히 와닿지 않네요. 성은 복합적인 교환이자 쾌락이자 또 도구이죠. 필자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히 드러난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