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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의 현주소, 포퓰리즘이 진정 민주적이 되려면…
미국 정치의 현주소, 포퓰리즘이 진정 민주적이 되려면…
  • 정웅기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정치학
  • 승인 2018.10.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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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은 지금_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의

포퓰리즘(populism)이 여러 나라의 정치공간을 빠르게 장악해나가고 있다. 일례로, 올해 3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루이지 디 마이오(Luigi Di Maio)가 이끄는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은 상, 하원 모두에서 득표율 1위를 차지했다. 창당 9년 만의 성과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침체기에 들었던 북부동맹(Lega Nord) 역시 이번 총선에서 3위로 올라서면서 베를루스코니의 자유국민당(Il Popolo della Liberta)과 함께 중도우파정당 연합의 주축으로 존재감을 되찾았다. 이탈리아의 이 같은 변화가 폴란드, 헝가리, 터키 등 여타 국가들의 포퓰리즘 부상과 더불어 오늘날 민주주의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미국 역시 전 지구적 포퓰리즘의 자장의 핵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지난 4-5월 워싱턴에서는 미국 민주주의의 현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점검하고 향후 전망을 논의하는 학술행사가 여럿 열렸다. 여기서는 필자가 현장에 있었던 전미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행사를 비롯해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와 뉴 아메리카 재단(New America Foundation)이 개최한 회의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 중 상당수는 올해를 기점으로 쏟아져 나온 주목할 만한 저작들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윌리엄 갤스턴(William Galston)은 올해 3월 Anti-Pluralism: The Populist Threat to Liberal Democracy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공화주의, 민주주의, 헌정주의, 자유주의 네 가지로 정리하면서, 그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요인을 정치적 핵심 원칙으로 수용하지 않는 데 포퓰리즘의 고유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민주권(공화주의)과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다수에 의한 지배(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양자가 공유하는 속성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공식적 정치제도 및 법치(헌정주의), 그리고 개인의 독립성과 자유의 보장(자유주의)에 관해서는 전자와 입장을 달리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얼마나 위협적인 것일까? 갤스턴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는 언제나 취약하고 부단히 위험에 노출되지만, 동시에 늘 스스로를 정정해왔다. 자유민주주의 제도는 전제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뿐 아니라, 효과적인 개혁을 통해 시민들의 분노와 불만을 조절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자기 교정’(self-correction) 능력을 신뢰한다는 점에서, 그는 논자들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전통적 견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자유민주주의의 탄력성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일 수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출간된 책 The People vs. Democracy: Why Our Freedom Is in Danger and How to Save It에서, 야샤 뭉크(Yascha Mounk)는 민주주의가 “동네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이라는 공준(postulate, 公準)이 사회적으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은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전후 호황기를 떠받쳤던 경제성장의 종언과 전지구화, 그리고 인터넷의 광범위한 확산이 야기한 효과다. 여기서 포퓰리즘 - 그의 표현에 따르면 “비민주적 자유주의”(undemocratic liberalism) -에 대한 그의 입론이 따라 나온다. 그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작동은 무엇보다 인민의 의지와 선호가 정부가 입안하고 시행하는 공공정책으로 치환/번역(translate)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유럽연합의 현실에 토대를 둔 그의 판단은 매우 부정적이다. 네 가지 핵심제도 - 관료, 은행, 사법부, 초국적 무역협정 -를 근간으로 한 기술관료정치(technocracy)가 이러한 선순환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재계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이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념과 정책선호를 가진 정치인들을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다.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선거제도 자체가 소수에 의해 포섭된다. 포퓰리즘의 부상은 이 같은 기술관료정치와 금권정치(plutocracy)의 산물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끝으로, 하버드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다니엘 지블랏(Daniel Ziblatt)은 올해 초 민주주의의 전지구적 쇠퇴 현상을 다룬 신간 How Democracies Die를 펴냈다. 이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서로 경합하게 만들고 대중에게 이 과정을 검토할 기회를 부여하는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둘째, 하지만 공식적 제도를 우회해 - 혹은 심지어 이를 통해서도 - 비민주적 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경로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민주적 ‘규범’(norms)이 정치체 내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기준 모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정치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정치적 분극화(political polarization)는 정당정치의 변화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는 더 극단적인 정치이념과 정책선호를 가진 정치인들이 이전보다 많이 당선되면서 중도적 성향을 가진 다수의 여론이 점차 반영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미국정치 연구자 래리 바텔스(Larry Bartels)의 말을 빌린다면, 유권자-투표-정부-정책의 선순환을 가정하는 민주주의의 ‘낭만적 전래정리’(romantic folk theorem)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엘리트가 대중의 의지와 선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로를 차치하더라도, 레비츠키와 지블랏이 지적한 민주적 규범을 이들이 결여하고 있다면 민주주의의 작동은 여전히 요원하다. 아서 골드해머(Arthur Goldhammer)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민주적 규범은 동시에 대중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해야 한다. 즉, 단지 “인민에게 권력을 반환”(returning power to the people)하는 것만으로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겪는 병리적 현상을 해소할 수 없다. 포퓰리즘이 야기하는 위협의 정도에 대한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갤스턴과 뭉크가 포퓰리즘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예컨대 백인과 흑인의 거주지 분리 철폐를 골자로 한 공정주거법(Fair Housing Act)은 마틴 루터 킹이 꿈꾸었던 통합된 사회를 위한 핵심정책 중 하나였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거주분리(segregation)만큼이나 ‘강제통합’(forced integration)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유색인종은 이웃으로 두기엔 열등한 존재들이며, 동네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믿는 상당수 백인 주택소유주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트럼프의 등장, 그리고 미국사회 내 ‘트럼프주의’(Trumpism)의 부상을 설명하는 ‘미국 권위주의’(American authoritarianism)는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 

일찍이(2002년)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물었던 로버트 달(Robert Dahl)의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물론 이는 미국 정치제도와 헌법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에 주로 근거한 것이었다. 이제 다른 관점에서 그의 질문을 다시 던질 필요가 있다. 골드해머의 주장처럼, 토크빌이 다시금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관습’(mores)이 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는 ‘마음의 습관을 형성하는 모든 종류의 아이디어’(the whole range of ideas that shape habits of mind) 혹은 ‘인민의 전반적인 도덕적·지적 상태’(the whole moral and intellectual state of a people)를 뜻한다. 포퓰리즘, 특히 그 우파적 버전은 대중의 공포를 추동해 자신이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어떠한 정치적 갈등도 파국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는 오늘날 미국의 포퓰리즘이 진정 ‘민주적’으로 전화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시험대일 수밖에 없다. 향후 다양한 트럼프(주의)들의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의 과제기도 하다. 

정웅기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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