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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불온한' 시각 주목해야
미, '불온한' 시각 주목해야
  • 이혜정 중앙대
  • 승인 2003.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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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코리안 엔드게임』(셀리그 해리슨 지음)

 

이혜정 / 중앙대·정치학

근대의 정치이념은 국가권력을 통해 특정한 사회체제를 건설하려는 사회공학의 기획이다. 사회공학을 꿈꾸는 모든 이들은 역사의 교훈이나 사회과학의 법칙성의 이름으로 미래를 전망하고 정책을 처방하는 전문가들의 고객이다.

그래서 모든 사회과학의 가치와 개념, 역사의 교훈은 불순하며, 목적의 편향이 국익의 이름으로 미화되는 국제정치 전문가의 정책처방은 특히 불온하다. 미국 국익의 이름으로 한반도의 중립화, 비핵화 통일을 처방하는 셀리그 해리슨의 '코리안 엔드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대 한반도 장기전략 분석토대

남북한을 오랜 기간 취재한 미국의 원로 언론인 해리슨의 전문성은 패권국가 미국의 전략가들에게는 생소한 것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에게 대 한반도 정책은 세계적 차원에서 패권전략의 부속품일 뿐이다. 이들에게 해리슨은 한국역사에 대한 지식과 자신의 현장 경험, 특히 수 차례에 걸친 주석궁에서의 면담을 토대로, 북한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한미동맹에 묶여 있는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 부당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라 강조한다.

'한반도 전문가' 해리슨은 미국의 전략가들이 한국 민족주의의 폭발적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에게 남북한의 정치체제는 모두 유교적 전제주의와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의 산물이지만, 그 현재적 성격은 다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상시포위'된 북한의 민족주의는 저항적 성격을 잃고 국내적 정당성의 동원기제로 변모했다.

한편,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의해 분출되고 있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강력한 민족적 자부심과 외국인 혐오로 무장하고 있다. 그에게 냉전의 종언 이후 북한의 핵개발은 생존을 위한 약자의 합리적 대응인 반면, "어떠한 변화도 막아내는 남다른 재주와 열의"를 지닌 한국의 '냉전세력'에 의해 미국은 한미동맹에 묶여있고, 이로 인해 미국은 한국의 방위비를 부담하는 동시에 한국에 대한 경제적 공세를 포기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또한, 한미동맹은 한국의 반 외세 민족주의를 통제하지 못해, 결국 미군의 한국주둔은 포기될 수밖에 없다.

해리슨의 한반도 통일론은 냉전의 종언과 민족주의의 뿌리 깊은 전통으로 인해 미국이 더 이상 한국의 통일을 통제할 수 없으며, 통일한국은 미국의 국익을 저해하는 동북아 불안정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통일된 한반도가 완충 국가가 되도록 함으로써 강대국 분쟁의 장인 한반도를 중립화시키는 것이 동북아를 안정시켜 미국의 국가 이익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한국의 반외세 민족주의가 주도하고 핵으로 무장된 통일한국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핵으로 무장한 통일한국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체제안전을 위해 핵카드를 사용하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또한 국력이 신장되고 강력한 반외세 민족주의를 지니고 있는 한국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 역시 막아야한다. 그래서 그는 한국이 주체가 되는 평화협정에 강력히 반대하고,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을 열렬히 지지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점진적인 탈개입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인질'에서 지역안정의 "성실한 중재자"로 미국의 역할 변화는 점진적 탈개입의 핵심적 기제다. 이는 한국의 독자적 행동에 대한 미국의 통제를 의미하며, 한반도의 전반적인 군비통제협상과 연계 진행돼야 하고, 그로 인해 "미국의 행동의 자유가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 해리슨이 볼 때 미국과 북한, 중국간의 평화협정과 남북간의 별도의 동반자협정, 그리고 주변국의 한반도 중립화와 비핵화 보장이 완결될 때까지 미국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이양해서는 안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폐기는 북한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이 완전히 폐기돼야만 가능하다.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피한 미국의 탈개입을 한반도의 핵무장 가능성의 제거와 주변국의 영향력 배제를 통해 보완하는 과정의 부산물인 것이다. "성실한 중재자"로서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에 "어떤 다른 외부 세력도 군대를 주둔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의 眞意 파악 못한 한국 전문가들

해리슨의 시각은 북한을 비합리적인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부시정부의 시각과 분명 다르다. 하지만,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 한국이라는 그의 시각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 자신이 분명히 밝히듯이 한국 진보진영의 시각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불온한' 시각은 부시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미국 내부의 비판에 목마른 한국인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 대한 어느 신문의 서평을 보면 "한민족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느끼고 있으며, 한겨레신문 기자들인 역자들조차 미국의 부당한 개입만을 보고 있다. 그래서 해리슨의 시각은 더욱 불온하고, 한반도의 미래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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