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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법, 독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법, 독서
  •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18.10.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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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이번 정부에서 신설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한 지 꼭 1주년이 되었다. 위원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처럼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이 4차 산업혁명인데, 정부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들을 심의·조정하는 역할이 이 위원회의 핵심 기능이라고 한다. ‘사람 중심의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표방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대의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에 잘 대응하고 있을까. 주로 과학기술 전문가들과 관련 정부 부처 장관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위원회가 나름의 구실을 잘해나갈 것으로 기대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조직 구성조차 되지 않은 점에서 우려 또한 없지 않다. 이를테면 문화체육관광부나 교육부 등이 배제된 이 위원회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 콘텐츠 산업이나 미래를 여는 교육정책과 긴밀하게 연동되지 않은 ‘기술 결정론’에 빠져 있는 것이나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람 중심’이 되려면 과학기술과 그 생산성, 미래 시장, 일자리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재 양성과 콘텐츠의 기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위원회는 ‘사람 중심’은 표방일 뿐 ‘과학기술 중심’인 것으로 여겨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마치 기술(인공지능, 로봇, 생명과학 등)이 사람과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인 것처럼 오해받지 않으려면 ‘초연결·초지능 시대’라는 말만이 아니라 ‘상상력의 시대’라는 표현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발명도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루어내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상상력의 시대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독서다. 읽는 일은 곧 생각하면서 상상력을 키우는 첩경이므로, 한 개인이나 사회가 얼마나 생각하는 능력과 상상력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현재의 경쟁력을 의미한다면, 독서력(책 읽는 힘)은 미래의 경쟁력을 뜻한다. 물론 편식이 아니라 고르게 영양을 섭취하는 독서가 바람직하겠다. 2017년 기준으로 ‘매일 책을 읽는 인구’ 비율이 한국 5%, 영국 23%인데, 스포츠 경기라면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이 숫자의 차이가 한국과 영국의 미래 경쟁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예견할 수 있다. 

올해는 마침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책의 해’다. 지난 9월 27일 민관 협력 조직인 2018책의 해 조직위원회가 주최한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이라는 주제의 책 생태계 비전 포럼에서는 한국인의 ‘생애 독서 그래프’가 주목을 받았다. 고려대 국어교육과 이순영 교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안찬수 사무처장, 그리고 필자가 연구진으로 참여한 <독자 개발 연구>의 중간보고 형태로 이루어진 발표에서 중심 내용 중 하나였다.

만 10세 이상 국민 1200명을 조사한 생애의 독서 그래프를 그려보니, 연령이 많아질수록 독서 관심도가 떨어지고 독서량 또한 감소하는 현상이 기존 조사(국민독서실태조사, 사회조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재확인되었다. 그런데 독서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모든 연령층에서 초중고 학창 시절에 가장 높지만, 특히 신세대일수록 ‘초등학생 때에 비해 중학생 때의 독서 관심도가 감소’하는 현상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즉 젊은 세대일수록 초등학생 시절의 독서 관심도는 높아졌지만 중학생 이후로 그 관심도가 급감했다. 이런 현상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가 조기화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폭넓은 독서 대신 입시 학습 모드로 전환하는 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20대에서 다소나마 회복된 독서 관심도는 취업 준비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퇴조하여 나이가 들수록 계속 하락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즉 대입 경쟁과 취업난, 일에 쫒기는 직장 생활이 한국인의 독서 생활화를 가로막는 요인이기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에 형성된 책과 독서에 대한 관심 정도는 거의 평생에 걸쳐 유지되는 성향이 강했다.

여러 항목의 조사 결과를 보면, 결국 가정, 학교, 직장, 미디어 등 사회적 독서 환경이 독서습관과 독서량의 정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서가 단순히 개인의 여가 활동 영역을 뛰어넘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권(독서권)임을 고려하면, 책 권하지 않는 가정, 학교, 직장, 미디어 등의 독서 환경이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시사점이 부각된다. 이 문제에서 대학 또한 자유롭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책을 읽는 국민이 37%, 이 가운데 매일 읽는 사람이 5%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우리나라가 상상력 빈곤 대국이자 미래 경쟁력이 암울한 나라라는 경고 수치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미래 사회는 상상력 함양 없이는 생존과 발전이 어렵다. 인공지능이 흉내내기 어려운 것 중 하나도 이것이다. 한 곳의 직장이나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살기 어렵고 지속적인 창직(創職)이 필요한 미래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길은 독서에서 찾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담론에서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독서와 상상력’이 병기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싶어지도록 환경, 동기, 계기를 만들고 주변에 책이 넘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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