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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 "공판에서 독재자를 싸고돌면 못 할 것이 없다는 썩은 풍속이 또 드러났다"
[장병욱의 광장] "공판에서 독재자를 싸고돌면 못 할 것이 없다는 썩은 풍속이 또 드러났다"
  •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 승인 2018.10.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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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_⑦ 정치, 폭력 그리고 돈

주먹의 부조리

깡패들은 그들의 세계에서만은 의리가 있다고 자랑한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고 호통을 친다. 그러던 그들이 7월 법정에 나와서는 서로를 할퀴고 혼자만의 발뺌을 위해 벼라별 꼴을 다 부린다. 무슨 파, 무슨 파 하며 두목 부하 하던 그들에게는 자기 하나만 위해 남을 짓밟아 버리는 부조리가 있다.

사실은 정치 깡패 공판에서 정확히 재현되었다. 증거 조사까지 끝나 궁지에서 헤어날 수 없음이 자명해 진다. 두목급이라는 것들은 제각기 혼자만이라도 빠져나가느라 서로 다투며 추한 꼴을 드러내 방청인들의 웃음과 분노를 샀다.

그들끼리 추한 입씨름의 첫머리가 된 임화수. 공판이 끝날 무렵 갑자기 쇠고랑 찬 두 손을 들어보였다. “속이 답답해 죽겠습니다. 2분만 시간을 주시면…”하며 애걸조로 모든 것을 신도환에게 밀어붙이다 울상이 되어 신도환과 홍영철을 주워섬겼다.

홍은 “그런 일 없습니다”를 연발하며 아우성을 쳤다. 신도환도 재판장의 진술 허가가 내려지고 수갑이 벗겨지자 체면이 어디 있느냐는 듯 진술대 앞으로 달려나와 웅변조로 을러댔다. 참고인으로 부하 깡패 2명을 잡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씨근덕대던 그의 말인 즉 “반공청년단 종로구단의 깡패를 직접 불러냈다는 깡패 이인호 조병후가 이 자리에 없으니 그들과 대질하면 내가 깡패 동원 지령을 내리지 않은 것을 곧 알 수 있다”는 것. 그는 “고대생을 습격한 것은 임화수 유지광 같은 깡패”라고 욕지거리 하며 “나도 반공청년단원도 관계 없다”고 우겨댔다. 그러자 뒷줄에 앉아있던 유지광이 블쑥 일어났다. ”재판장님, 이것은 거짓말 대회에서 하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고 큰소리 치더니 멋을 부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깡패에는 상하가 있는 거예요. 아세요, 신 단장?”이라고 말하며 유는 신을 한번 흘겼다. “당신이 지령하니까 내가 이인호에게 지령하고, 그러니까 이가 깡패들을 모아들인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한 그의 말은 ‘너나 나나 죄 나쁜데 왜 빠지려드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혼자만 바가지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임화수 신도환이 무죄면 나도 무죄고, 내가 유죄면 그들도 유죄”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질질 끌던 추잡한 입씨름의 판가름은 재판장이 한마디로 내버렸다. 재판장은 한참 신이 나 날뛰는 유의 말을 끊었다. 그래, 네 말이 옳다는 거지? 딴 사람말은 거짓이구.“ “예” “딴사람들도 제가끔 다 그렇다는 거야.” 화가 채 가라앉지 않은 유는 말하는 동안 찰칵하고 수갑을 제 손으로 채우며 제자리에 가 앉았다. 실랑이가 싱겁게 마무리지워지자 공판은 끝나고 깡패들은 한줄에 묶여 의좋게(?) 퇴정했다.

(이 날의 제목은 정확했다 : “깡패 의리도 헛소리, 부하 잡아 넣으라고 애소도. 고대생 습격 서로 밀며 법석.” ‘강호의 의리’가 사라지고 ‘사파(邪派)’만이 살아남았던가.) 

1961년 국가재건회의 시절의 재판정. 부정 선거 사범과 부정 축재자들에 대한 제판을 진행했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팀
1961년 국가재건회의 시절의 재판정. 부정 선거 사범과 부정 축재자들에 대한 제판을 진행했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팀

썩은 돈 자루

나라 안 돈을 온통 말아 갖고 있으면서 어이없게도 1백억원 가까운 돈을 부정 선거에 흘려버린 ’썩은 전대‘가 심판 받는 ’7월 법정‘을 아흔한 살 난 부로(父老)가 지켜보고 있었다. 시내 명륜동 4가에 산다는 홍 노인은 동회에 한 장 나온 방청권을 싸고 서로 법정 간다는 다툼 끝에 동네 최연장자에게 드리기로 했다고 방청권을 보내 왔다는 것이었다. 90 평생에 재판이란 한 번도 못 들여다 보았다는 홍 노인은 “세상의 고얀 악당들이 벌 받는다기에 와 봤다”고 하면서 20환 짜리 빵으로 점심 요기를 삼고는 다시 하오 공판으로 들어가 긴 눈썹을 쫑긋거리며 그 ’악당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공판에서는 독재자를 싸고돌다 보니 못 할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은연중 드러났다. <서울신문> 운영비를 대기 위하여 2천만환씩 거둬들였지만 본래는 외환 80만달러를 부정 융자해 줄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취조중 밝혀졌다. 그 까닭은 틀림없이 SR(이승만은 자신의 영문 이름을 ‘Singman Rhee’로 표기했다)이 나올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국내일 경우 ‘가만(可晩)’이라는 독재자의 OK 사인만 있으면 별의별 강도짓을 다 할 수 있었던 그들은 법정에서도 거리낌없이 “에스 알이 어떻고...”라는 말을 썼다.  

나라 살림을 한손으로 주무르던 그들의 배포는 하루 살림에 쫓기던 서민들은 상상도 못 할 지경이었다. 예산안 통과를 위해 당시의 예결위원장 박만원에게 1천만환을 증뢰(贈賂)했다는 말에서 “그것은 그냥 꾸어줬을 뿐”이었다고 변명을 덧붙인 말인즉 “남이 어렵다는데 겨우 돈 천만환 못 꾸어줄 것도 아닌데” 싶어서 였다는 것. 아닌게아니라 그는 일부 야당 의원에게 준 30만환 겉봉에 ‘寸志’라고 써보냈던 위인이긴 했다. 

‘썩은 전대’에 구멍이 나있다는 것을 그들도 대체로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찮은 대목에서 엉뚱한 발뺌을 해 고소(苦笑)를 터뜨리게 했다. 융자할 때마다 1할 2할씩 떼어냈다는 얘기를 그대로 인정하고 난 배제인 피고인. 그대로는 좀 아쉬웠던지 “그렇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여지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라고 시치미. 그 너스레에 재판장도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네번째로 ‘7월 법정’에 나오다보니 제법 법정 풍속에 익숙해진 피고인. 때가 되니 손으로 수갑을 찰칵하고 채우기까지 했다. 공판 첫날에 심리가 끝나고 피고석에 들러앉을 때면 수갑을 채워달라고 두 손을 내대던 품보다는 많은 진화(?)를 보인 셈이었다. 공판에 나온 피고들은 돈을 주무르던 사람들답지 않게 모두 수척 혈색은 모두 좋은 편. 종일 끈덕진 따짐에도 지친 빛을 그리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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