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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와 신용카드
참새와 신용카드
  • 문용린 논설위원
  • 승인 2003.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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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인간 亡種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무리 카드 빚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어찌하여 멀쩡한 사람을 납치해서 돈을 요구하고, 돈을 받은 뒤에는 풀어주기는커녕 목을 졸라 살해까지 하는가. 또 그 카드 빚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꺼번에 숨지게 한 천하의 패륜아도 있었다.

스무 살 안팎의 젊디젊은 나이에 다른 이유도 아닌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말았으니 그 죄 값을 갚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허무하게 지나쳐보낼 젊음이 너무도 아깝고 애석하다. 카드 빚더미에 올라앉은 젊은이가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3백여 만 명을 초과하고 있다는 카드 신용불량자 중의 상당수가 20∼30대의 젊은이로 추산된다. 갚을 능력을 초과해서 마구 돈을 써댄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일차적으로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안정된 수입원을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 카드를 남발한 카드 회사는 물론이고 이를 묵인한 정부의 정책에도 문제는 있다. 빚진 돈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포자기의 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빚에 쫓기게 될 때 젊은이들은 손쉽게 극단적인 방법을 찾게 된다. 자해를 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그것이다. 어쩌면 카드 빚에서 연유하는 극단적인 범죄는 이제 단순히 시작 단계에 불과한지 모른다.

신용카드 사용에 한번 맛들인 젊은이가 그 맛을 포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신용 카드 불량자들은 신용카드라는 함정에 걸려든 가련한 희생자들이다. 겨울철 참새 잡기가 생각난다. 뒷마당 한 편에 광주리를 나뭇가지에 걸쳐 세워 놓고, 그 아래에 곡식 낱알 몇 개를 뿌려 놓으면 영락없이 몇몇 참새가 모여든다. 그 때 광주리를 무너뜨려 덮으면 참새는 가엾은 포로가 된다.

그들이 바로 포장마차의 참새구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참새처럼 신용카드라는 미끼에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빠져든다. 그 편리함과 용이성 때문에 능력에 부치는 소비를 한다. 그리곤 그 돈을 갚기 위해서 젊은 시절의 귀중한 시간을 ‘인생의 준비’에 쏟지 못하고 푼돈 버는 일에 낭비해 버리고 만다. 신용카드는 젊은이들을 미혹해서 그들의 에너지를 찰나적 즐거움에 탕진케 하고, 돈의 魔力에 흠벅 취하게 만든다. 신용카드 쓰기에 맛들인 젊은이에게서는 젊은이다운 기백과 호연지기는 찾기 어렵다.

신용카드를 쓰는 순간부터 그들은 그 돈을 어떻게 갚을까하는 ‘삶에 지친 피로’를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빚진 돈을 어떻게 갚을까하는 걱정이 가득찬 머리 속에는 호연지기와 기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희망인 것은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다운 기백과 호연지기를 키우고 있는 젊은이의 머리 속에선 신용카드와 같은 따위의 유혹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는 특히 대학은 젊은이들에게 기백과 호연지기를 키우는 장소가 돼야한다. 문용린 논설위원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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