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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목어 머리는 어떻게 최고의 보양식이 됐을까? … 별미의 탄생
슬목어 머리는 어떻게 최고의 보양식이 됐을까? … 별미의 탄생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 · 영어학
  • 승인 2018.10.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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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 - 음식의 문화사 _ 25. 의식동원(醫食同源)

“슬퍼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타샤 튜더(1915~2008, 미국의 동화 및 삽화작가)

대만 여성들의 산후 보양식 ’당귀 황기 슬목어 머리탕’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잉어나 가물치를 고아 먹인다.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호박을 푹 삶아 먹도록 한다. 그렇다고 급하게 먹으면 치아가 손상된다. 풍토가 다르고 물산(物産)에 차이가 있으면 문화가 유별하다. 그래서 섬나라 대만은 출산 후 6주 이내의 산욕기 여성들에게 온기를 보하는 슬목어 머리탕을 먹도록 하여 기혈을 보하게 한다.

200년 전 모습의 부엌에서 물을 끓이는 타샤 튜더(Tasha Tudor). 어깨에 두른 빨간 케이프가 동심을 잃지 않으려는 동화책 삽화가의 마음을 보여준다.
200년 전 모습의 부엌에서 물을 끓이는 타샤 튜더(Tasha Tudor). 어깨에 두른 빨간 케이프가 동심을 잃지 않으려는 동화책 삽화가의 마음을 보여준다.

별미, 진미 등의 이름으로 세인의 관심을 끄는 음식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요즘은 상업 광고나 마케팅이란 게 있지만, 과거에는 특정 인물과 관련된 고사(古事)를 배경으로 해야 음식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장비우육(張飛牛肉)은 백정 출신의 장비가 위나라와의 전투 길에 만든 육포로 그의 고향인 탁주(涿州)를 육포의 명소로 만든 주인공이다.

영어로는 milk fish라고 불리는 슬목어(虱目魚, 스무위)는 청어와 비슷한 물고기인데 주로 아시아 남동부 해역에서 잡힌다. 대만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이 생선은 DHA와 불포화지방산,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영양가가 높을 뿐 아니라 소화흡수도 잘 된다. 산후조리 여성의 필수 섭취 음식으로 슬목어 머리를 당기, 황기 등의 약재와 함께 넣어 끓인 당귀 황기 슬목어 머리탕(當歸黃耆虱目魚頭湯, 당궤이황치스무위토우탕)은 그 기원을 해적(海賊) 정성공(鄭成功)에게서 찾는다.
   
스무위란 명칭의 기원은 정성공(1624~1662년)이 대만의 타이난(臺南)에 상륙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성공은 명나라 말기 청군에 끝까지 저항하며 명나라 부흥운동을 벌이다 패한 뒤 대만으로 건너가 그곳을 통제하고 있던 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하여 민족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당시 어민들이 정성공에게 신선한 생선을 헌상하며 감사를 표하고 환영을 했는데, 정성공은 물고기 이름을 몰랐다. 그래서 “션머위(甚麽魚, 무슨 물고기냐?)”라고 물었는데, 어민들은 정성공이 그 물고기에 ‘스무위(虱目魚)’라는 이름을 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이런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도루묵이라는 생선 이름이 생겨난 사연과 흡사하다.

또 다른 설 역시 정성공과 관련이 있다. 정성공은 대만 상륙 이후 병사들이 먹을 만한 신선한 생선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바다를 가리키며 “없다고 말하지 말라. 여기에다 그물을 쳐서 거두면 얻을 수 있다(莫說無, 此間擧網可得也)”고 말했다. 그물을 치자 과연 그의 말대로 물고기가 잡혔고 사람들은 그렇게 잡힌 물고기를 ‘궈싱위(國姓魚)’ 혹은 ‘모수어우(莫說無)’라 불렀다. 그리고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뜻의 ‘모수어우’가 발음이 비슷한 ‘마스무(麻虱目)’로 바뀌어 불리다가 현재의 ‘스무위’가 되었다는 것이 대만인의 보양식으로 쓰이는 물고기 명칭의 민간어원이다.

당귀 황기 슬목어 머리탕(當歸黃耆虱目魚頭湯, 당궤이황치스무위토우탕)
당귀 황기 슬목어 머리탕(當歸黃耆虱目魚頭湯, 당궤이황치스무위토우탕)

정성공(鄭成功) 이야기

나라가 기울 무렵이면 여러 가지 변고가 발생한다. 국운이 쇠했음을 알리는 전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메뚜기 떼가 농작물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가뜩이나 어렵고 피폐한 농민들의 삶을 죽을 지경으로 만드는가 하면, 가지가지 도적들이 발호한다. 하나같이 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나 살기 어렵다고 도둑이 되고 불한당이 된다는 억지 논리가 현실이 되어 곳곳에서 양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義賊)이 있지만, 무척 희귀한 사례다.

별별 도적 중에 정성공 같은 이도 있다. 나라로부터 인정받은 도적이기 때문이다. 땅을 뺏고, 물건을 약탈해 나라에 가져다 바치니 조정에서 싫어할 리 없다. 황제는 그에게 관작을 주어 도적질을 조장하기까지 했다. 돈 앞에 양심은 자취를 감추는 걸까? 국가는 감정이 없는지라 도적질에 둔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는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던 무렵(1662년)

“L'homme n'est qu'un roseau le plus faible de la nature: mais c'est un roseau pensant”(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프랑스가 자랑하는 수학자 파스칼이 세상을 뜨던 해(이 세상 영원한 것은 없다), 후일 영국 의회의 명예혁명으로 아버지 제임스 2세를 대신하여 남편인 오렌지 공 윌리엄 3세와 더불어 공동 왕위에 오른 스튜어트 왕가의 메리 2세가 태어났던 바로 그 해, 우리의 이웃 섬나라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의 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가 태어났다.

바로 이 해 6월 23일(양력) 타이완 섬을 점유하고 있던 정성공이 39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막강한 청왕조에 대해 명백한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샤먼(廈門)에 仁義禮智信, 항저우(杭州)에는 金木水火土의 五軒을 세웠다. 두 곳 다 해안도시다. 그는 일반 세금과 상인들의 해상 통행세 징수는 물론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일본 나가사키의 중국 생사 무역을 독점하며 아버지 정지룡 못지않은 세력을 형성했다. 청 왕조는 정성공의 해상 세력 확대와 활동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중국의 아들, 대만의 아버지

정성공은 청나라 군대에 쫓겨 화남(華南: 중국 남부)으로 도망친 융무제(隆武帝) 주율건(朱聿鍵)을 수행한 공로로 연평군왕(延平郡王)의 작위를 받고 명나라의 황실 성인 주성(朱姓)을 하사받고 국성야(國姓爺)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래서 훗날 타이완 섬을 점령한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콕싱아’라 불리고, 일본에서도 ‘고쿠센야’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호칭은 모두 ‘國姓爺’의 민남어(閩南語)식 발음인 /kok-sèng-iâ/에서 유래한다. 중국어의 방언인 민남어는 주로 복건성과 대만에서 사용된다.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실제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예 지배층이거나, 국가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우거나, 사서 기록자의 눈에 특이 인물로 비치거나, 돈 보따리 싸 들고 가 이름을 기록해 달라고 부정 청탁을 해야 세세손손 이름이 남는다. 그런데 중국인 장사꾼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태어나 해적질로 평생을 보낸 인사가 이런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을 법하다.

풍토가 다르면 식성이나 음식이 다르다

주로 일식집에서 파는 생선 요리 중에 ‘대구 지리’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리 요리에는 대구 지리탕, 복 지리탕 말고도 우럭 지리탕, 감성돔 지리탕 등이 있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베우동을 우리말로는 냄비우동이라고 한다. 일본식 냄비 요리인 지리나베(ちり鍋)는 흰 살 생선을 잘라 두부, 채소 등과 함께 냄비에 넣고 끓여서 초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나베’라고 읽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라고 발음하는 ‘鍋’는 노구솥(놋쇠로 만든 작은 솥)이나 냄비를 가리킨다. 맵고 짭짤한 걸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어 국물이 얼큰한 매운탕을 선호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깔끔한 지리탕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렇듯 같은 식재료라 해도 자연환경이나 문화, 인종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바가 다르다. 생태, 동태, 황태, 북어 등은 상태에 따른 ‘명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 수컷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 있는 정액 덩어리를 ‘이리’라고 하는데, 명태의 이리는 ‘고지’라 하여 특별히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명태는 다른 물고기에 비하여 이리의 양이 많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국거리로 많이 쓰였던 게 그 때문이었지 싶다. 이렇게 언어는 어렵다. 모국어인데도 단순히 알지도 못하고 구별 지어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언어로 사물의 이름을 붙이고, 그것으로 구별하여 사용하였다.(아래 사진: (위) 암컷의 생식소 곤이(알집), (아래) 수컷의 생식소 이리(또는 魚白))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lds2&logNo=22026827616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lds2&logNo=22026827616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사람들은 가히 못 먹는 게 없어 보인다. 그 목적도 각양각색이다. 수컷 물개의 생식기인 해구신(海狗腎), 수소의 거시기인 우낭(牛囊) 따위를 먹으면 없던 정력도 탁월해지고, 우슬(牛膝)을 고아 먹으면 아프던 무릎이 낫고 우족탕은 건각(健脚)의 보약이라 믿는다. 일종의 有感呪術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소의 생식기를 표현하는 방식과 그 속에 들어있는 세상과 사물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우리말은 불알 하나로 그것을 말하지만, 한자는 우낭(牛囊)으로 전체를 말하고 낭심(囊心)과 고환(睾丸)으로 우낭이 감싸고 있는 내부 기관을 정확하게 구별 지어 표현한다. 우리는 정자를 생성해내는 알의 속성을 뜨거움(불)으로 보지만, 한자 사용자는 睾丸(못[늪] 고, 알 환)을 통해 알이 水性의 늪에서 배태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간 요리 또한 사람들이 즐기는 품목이다. 서양 사람들이 거위 간 요리를 푸아그라(Foi Gras)라 하여 세계 3대 별미 중의 하나로 꼽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황가오리 애를 더없이 맛있는 진미로 친다. “애간장을 녹인다”라는 말에서 보듯 ‘애’는 창자 또는 간을 가리키는 고어다. 예전에는 젖먹이가 침을 많이 흘리면 돼지코를 목에 걸어 얼떨결에라도 아이가 코를 자주 핥게 했다. 비위는 자칫하면 상하는 것이고, 쓸개는 있다가 빠졌다가 하는 부착식 장기인 듯하다. 쓸개 빠진 놈도 있고, 쓸개도 없는 놈이 있다는 말로 보아서 그렇다. 허파는 바람이 들면 곤란하다.

일본인들처럼 담백함을 즐기는 사람들은 깔끔한 지리 요리를 좋아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고춧가루, 마늘, 파 등의 향신료를 넣고 끓인 매운탕을 선호한다. 뜨겁고 칼칼한 국물 맛을 ‘시원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영어의 ‘cool’도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지만, 대중목욕탕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고서 “어, 시원타!”를 연발하는 한국인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문화의 차이는 환경의 소산이기 쉽다. 그리고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매운 것에 경풍(驚風: 경기(驚氣)라고도 함)을 일으키던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 살며 어느 결엔가 시큼하거나 맵거나 한 김치 맛에 물들고, 꿀꿀한 된장 냄새를 구수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땀 뻘뻘 흘리면서도 고추장 범벅인 떡볶이에서 젓가락을 떼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의 결과이다.
     
山水가 다르면 産地의 土産物이 다르다. 風土가 다르면 음식문화도 다르다. 같은 種이라도 모양과 성분에 차이가 있다. 파의 원산지 파미르(the Pamir: ‘파의 고개’라는 뜻)에서 나는 것과 유럽 대륙 서편의 섬 지방 웨일즈에서 생산되는 리크(Welsh leek)는 현격히 다르다. 리크는 서양 정구지라고나 할 법하다. 그런데 필자는 고향인 충청도에서는 부추를 정구지라고 듣고 쓰다가 강릉에 와 오래 살다보니 현지인들이 쓰는 말 분추가 입에 더 붙었다.

웨일즈 현지인들은 국장(國章)으로 쓰이는 회청색을 띤 이 황록색 파를 가지고 죽(leek porridge)을 쑨다. “죽 쒀서 개 준다”는 속담과는 달리 웨일즈 지방의 명물 파죽은 사람이 먹는다. 정구지의 별명이 파옥초(破屋草)다. 얼마나 힘이 넘치기에 집을 부숴버릴 수 있는가. 호사가는 이를 몸의 순환이 좋아져 배변이 수월해진 탓에 오줌줄기가 막강해진 나머지 초가삼간 불태울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집을 부숴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진정성이 있다. 精久持란 말도 의미심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맛있는(?) 리크와 버섯 죽    사진 출처:https://thefoodmedic.co.uk/2017/08/savoury-leek-and-mushroom-porridge/
맛있는(?) 리크와 버섯 죽.  사진 출처:https://thefoodmedic.co.uk/2017/08/savoury-leek-and-mushroom-porridge/

한방에서는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 잎 말린 것을 음양곽(淫羊藿)이라 하고 음위(陰痿), 냉풍(冷風), 노기(勞氣)를 다스리는 강정제(强精劑)로 쓴다. 서양인들에게는 충분히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초목 약재설과는 상관없이 동양 특히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한술 더 떠 이 약재로 술을 담아 약처럼 복용한다. 그리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보낸 오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상받으려 한다. ‘의식동원(醫食同源)’ 혹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을 믿는 순진한 사례라 할 만하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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