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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라 불러 마땅한 미국선녀벌레
마녀라 불러 마땅한 미국선녀벌레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 승인 2018.10.15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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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08. 미국선녀벌레

 “곡식은 주인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하여튼 하루도 빼지 않고 밭에 들러 마냥 김매기 등 잔손질을 한다. 그런데 밭가의 온갖 나무나 잡풀, 밭고랑 채소의 여린 잎줄기 사이사이에 작되 작은 매미 닮은 하얀 벌레들이 잇달아 다닥다닥 들붙었다.

미국선녀벌레                                             사진출처=나무 병해충 도감
미국선녀벌레                                                                                                 사진출처=나무 병해충 도감

  지난여름 예년에 보지 못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별의별 푸나무(草木)에 끈적거리는 하얀 솜털 같은 것이 잔뜩 끼었고, 거기에는 역시 새하얀 꼬마 벌레 놈들이 붙어 득시글거린다. 가까이 눈여겨보면 몸을 홱 돌려 줄기 뒤로 숨거나 휙 도망친다.

  무엇보다 녀석들의 이름(學名/國名)을 모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생각 끝에 곤충 글을 쓸 때마다 늘 신세를 지는, 근래 “꿈틀꿈틀 곤충왕국”이란 책을 내기도 한, 제자 한영식 곤충생태연구소 소장에게 또 묻는다. 참 편한 세상이라 간단히 설명을 붙여 카카오톡으로 날린다.

  그런데 그 벌레 이름이 미국선녀벌레(美國仙女-, Metcalfa pruinosa)란다. 곤충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라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미국마녀벌레(?)가 마땅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보지 못한, 온 밭곡식과 밭가의 풀과 나무들 구석구석에 빼꼼한 틈 하나 없이 허옇게 달라붙어 식물액즙을 빨고 있으니 말이다. 난장판, 야단법석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공포감에 휩싸이는 살벌한 광경이다. 한마디로 손도 못 쓰고, 들끓는 그놈들을 매양 쳐다보고만 있노라면 어리둥절한 것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식물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외래곤충 중 이른바 갑자기 나타난 ‘돌발해충(sporadic insect) 삼총사’에 미국선녀벌레, 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이 있고, 물론 이들 모두 돌발해충으로 지정되었다. 

  전문가들은 지난겨울과 올봄이 예년보다 따뜻한 편이라서 미국선녀벌레 유충부화율이 높았고, 여름철 폭염까지 더해져 성충생존율이 상승했으며, 게다가 강수량까지 줄어 유충 시기 생육환경이 한결 알맞은 탓에 예년에 비해 피해와 마릿수가 엄청나게 늘어나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예년보다 더운 날씨가 이들 곤충에게는 알맞은 기후환경이라 세차게 발생하여 걷잡을 수 없이 설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근래 출몰한 외래종이라 아직 목숨앗이(천적)가 없어서 말 그대로 혼자서 제멋대로 독판치는 세상(獨天下)이란다.

  대부분의 생물이 다 그렇듯이 미국선녀벌레에게도 기생벌의 일종인 집게벌(Neodryinus typhlocybae)이라는 天敵(natural enemy)이 있다한다. 미국과 유럽에 있는 이 벌을 들여왔을 때 또 다른 생태계혼란이 있을 수 있어서 쉽사리 들여올 수도 없는, 빼도 박도 못 하는 처지라 한다.

  미국선녀벌레는 노린재목, 매미아목, 선녀벌레과의 곤충으로 미국이 원산지이고, 유럽을 통해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나갔으며, 결국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와 무섭게 창궐하고 있다. 성충은 전체적으로 밝은 회색이고, 가만히 머물러있으면 삼각형으로 보이며, 몸길이는 4~7mm이고, 날개 길이는 10mm 정도이며, 보기에 따라 갈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겹눈(複眼)은 노랗고, 입은 찔러서 빨아먹기에 알맞게 적응하였으며, 사다리꼴을 하는 큰 앞날개로 몸을 감싸고, 거기에는 특징적인 흰 점이 났다. 머리는 작고, 양옆 가장자리는 솟아올라 옆면과의 경계가 뚜렷하며, 홑눈(單眼)은 무색투명하거나 연한 노란색이고, 더듬이(觸角)이가 있으며, 뒷다리가 발달하여 팔짝팔짝 잘 뛴다.

  유충인 약충의 체색은 희거나 옅은 연두색이다. 약충은 하얀 솜과 같은 왁스(밀랍) 물질을 뒤집어쓰고 있고, 2마디로 된 촉각은 겹눈 바로 밑에 있으며, 배 끝에는 아름다운 부채 모양의 흰색 납 물질이 붙어 있다. 그러면 약충(若蟲, nymph)과 유충(幼蟲, larva)은 어떻게 다른가? 미국선녀벌레는 메뚜기처럼 발생 과정에서 번데기 시기가 없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이렇게 안갖춘탈바꿈을 하는 곤충의 애벌레를 약충이라 하고, 나비처럼 번데기 시기가 있는 완전변태(갖춘탈바꿈) 하는 애벌레를 유생이라 한다.

  1년에 한 번만 발생하는 일화성(一化性, univoltine) 곤충으로 밤에 짝짓기를 하고, 나뭇가지에 산란하고, 알 상태로 겨울나기(越冬) 한다. 5월경에 부화한 유충들은 잎으로 이동해 날카로운 주둥이를 꼽아 수액을 빨고, 5번의 탈피 후 7월경에 성충으로 날개돋이(羽化)한다. 9월경부터 가지나 줄기의 갈라진 틈에 마리당 90~100여 개를 산란하고, 거기에서 그대로 월동한다. 하얀 알은 1mm 남짓이고, 알에서 깨어난 약충은 8mm쯤 나간다. 

  미국선녀벌레는 약충, 성충 할 것 없이 감나무·명자나무·배나무·아까시나무·사과·포도·참나무·나무딸기·감귤 등 많은 활엽수와 들깨·상추·콩·옥수수 등의 농작물과 들풀에 떼거리로 달라붙어 즙을 빨아 제치는데 특히 단감과 인삼에서 피해가 훨씬 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초본 목본 가릴 것 없이 가지와 잎사귀에 무더기로 기생하여 기주식물(host plant)의 수액을 빨아 식물을 말라 죽게까지 한다.

  또한 그들이 배설하는 단물(甘露, honey dew) 때문에 나무이파리와 과실에 온통 검은 ‘그을음병(sooty mold)’이 생기고, 왁스물질을 분비해 잎과 과일들이 지저분하게 된다. 즉, 분비한 밀랍과 단맛 나는 액체(감로)가 잎가지 열매 등에 달라붙음으로써 생육부진과 과실의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암튼 시나브로 새 천적이 생겨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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