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독임제'라는 적폐
'총장 독임제'라는 적폐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 · 사회학
  • 승인 2018.10.15 1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 · 사회학

대학에서 총장은 학교규칙들을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한다. 게다가 징계권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총장이 학교규칙을 위반해도 그것에 대한 제재 장치나 구제 수단은 없다. 총장은, 국립대학의 경우 교육부의, 사립대학의 경우 재단의 명령이나 지시에 충실하면 무슨 일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마 식민지 총독이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다른 정부도 아닌) 참여정부 시절, 총장이 학교의 명운이 결린 의사결정을, 교수들과 학생들의 반대가 심하여지자, 병원에 입원하여 학교규칙에 정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혼자서 처리하고, 서류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그렇게 했어도 그것이 교육부의 ‘정책’에 따르는 것이어서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교수나 학생은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이런 사정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면서 더욱 악화했다. 예를 들면,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학칙은 학생들에게 “95~100점: 「A?」등급, 90~94점: 「A?」등급 . . .”을 부여하도록, 즉 ‘절대평가’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대학 평가지표에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제도 운용의 적절성’이라는 기묘한 평가요소를 넣어 압박하자, 학칙을 무시하고 “성적평가는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 . . 분포는 A+~A0 등급 30% 이하 . . . 의 비율 기준으로 부여한다.”는 ‘성적처리지침’을 실행하고 있다. 이 비율을 어기면 성적 입력조차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대학이 마찬가지인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대학이 총장이 이렇게 오직 교육부나 재단에만 책임을 지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법적’ 근거는 놀랍게도 고등교육법의 “총장 또는 학장은 교무(校務)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감독하며, 학생을 지도한다.”는 조항뿐이다. ‘총괄’(국립학교설치령에는 ‘총괄’ 대신 ‘통할’로 표기하고 있다)이라는 막연한 규정을 교육부는 물론 심지어 법원까지, 의사결정과 집행과 처벌 권한의 독점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온 것이다. 교육부의 관료는 ‘총괄’이 대학 경영에 관하여 총장 1인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총장 독임제’를 의미한다고 친절하게 해설하기도 했다. 식민통치가 그러했을 것이다. 최상위 법에는 ‘총독은 식민지의 정무를 “총괄”한다’고 적어놓고, 식민모국의 명령을 각종의 하위의 법령으로 입법하고 집행하고 처벌하였을 것이다.

교육부 관료는 ‘총장의 책임경영’을 말하고 있지만, 대학은 총장이 교육부나 재단에 ‘성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구와 교육의 지식노동을 실행하는 교수들을 다그쳐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 지식노동은 그 성과의 질과 양에 대해, 그 노동의 담당자만이 정확하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물론 정직하지 않은 노동자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측정 및 평가의 기준과 방식은 분야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대학의 ‘성과’를, 더구나 그 노동담당자의 외부에서 같은 기준이나 척도를 사용하여,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대학은 총장의 결정과 명령에 따라 교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연구와 교육 노동을 실행하는 제도나 기관이 결코 될 수 없다.

대학, 곧 유니버시티는 이름 그대로 (진리 하나를 향하여 모인) 다양한 학문분과들의 종합을 의미한다. 학문분과들은 각각 고유한 대상들과 방법들과 성과들을 발전시키고 축적해 왔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다양한 학문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대학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총장이 ‘총괄’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다양한 것들 조정하고 조율하고 지원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를 앞세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은 대학평가라는 억지에 돈다발을 얹어 흔들며 대학과 총장에게 ‘책임경영’을 강요해 왔다. 그리고 총장은 대학이 어떤 특성을 갖는 제도인가를 까맣게 잊고 교수들을 내몰아 한 줄로 세우면서 그것을 자신의 성과로 자랑하기까지 하고 있다. 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근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교수들 사이에서는 ‘논문 쓰느라, 연구하고 교육할 시간이 없다’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있다.

‘총장 독임제’가 대학에서 그 이름값을 하려면, 대학 구성원을 다그치는 책임 경영이 아니라, 대학에 밀려오는 온갖 정치적, 경제적 압력에 맞서 홀로 학문 자유와 대학 자치를 책임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 · 사회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이 2018-11-17 18:01:10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