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통해 베푸신 가르침과 사랑
자신의 삶을 통해 베푸신 가르침과 사랑
  • 이순남 이화여대 의대 교수
  • 승인 2018.10.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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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스승 _ 3. 삶 자체를 닮고 싶었던 선생님

필자가 집필 권고를 받고 과연 자격이 있을까 망설였으나 선뜻 나서게 된 것은 지난해 존경하는 은사님 두 분의 부음에 마치 고아가 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분인 경난호 선생님은 40년 전 의과대학 본과 3학년 내과학 강의에서 처음 뵈었다.

경난호 교수(1936~2017)
경난호 교수(1936~2017)

작은 체구의 단아한 분으로 명쾌한 강의에 진료 시에는 환자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고 정성으로 대하는 모습에 선생님을 닮은 의사가 되어야지 다짐했었다. 선생님은 학문적 가르침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갖추어야 할 교양과 덕목을 몸소 보여주시고 작은 잘못도 교정해 주셨다. 필자가 이화학당 김옥길 이사장님과 북미주 동창회에 새 병원 건립 기금모금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의 일화이다. ‘미국은 안주인이 도우미 없이 가사를 도맡는데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젊은 네가 손님처럼 식사만 하지 말고 설거지도 도우라’는 팁을 가만히 있을 게 뻔한 제게 주셨는데 귀국 후 이사장님께서 “경 선생, 제자 참 잘 키웠더라”고 하셨다며 즐거워하신 일은 전적으로 선생님 조언 덕분이었다. 남녀 차별이 비교적 작은 의학 분야지만 젠더 관점을 가진 선생님은 여자 의사, 교수로서 편견에 맞서 두 배, 세 배의 열정을 쏟으셨다. 1978년에는 초음파 기기를 국내 최초로 병원에 도입하고 일본 연수 후 초음파학을 전국에 보급한 선구자이시다. 내분비학, 당뇨병 전문가로 공복으로 오는 당뇨 환자를 위해 아침 일찍 외래진료를 시작하고, 공휴일에도 입원 환자의 회진을 거른 적이 없으셨다. 필자의 전공의 시절 입원 환자의 소변에 시약을 넣어 알코올램프로 끓인 후 색깔 변화로 당뇨 정도를 측정하는 아주 원시적인 검사를 하루 4번씩 하여 인슐린 투여량을 결정하였는데, 혈당 자동측정기도 일찍 도입하여 환자와 의사 모두 편리하게 혈당 모니터링하여 당뇨 조절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진료 방법, 검사 방법 등을 진취적으로 도입 실행하셨다. 또한 평생 조절이 필요한 병의 관리에 환자 교육이 중요하므로 의사는 환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여 열성을 다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시는 엄격한 교육자로 평생 환자와 제자에게 헌신하셨다. 요리 솜씨도 뛰어나 명절이면 인사 온 제자들에게 손수 준비한 음식을 차려 부모처럼 위로하고 격려하셨으며 특별히 가자미식해를 좋아하는 제게는 매년 한 통씩 보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다. 선생님은 항상 정장 차림의 진중한 전문직 여성의 역할 모델을 하시면서 제자들도 예의 바르고 실력 있는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여 혹독한 훈련과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는데 환자에게 잘못한 경우에는 특히 엄격하셨다. 필자는 딱 한 번 근신의 벌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환자에게는 작은 잘못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큰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1980년 미국 하버드 의대 연수중에는 대상 환자 모집부터 시작하여 얻은 결과를 SCI 저널에 3편이나 게재하였는데, 이때 익힌 임상연구방법을 귀국 후 제자들과 함께 활발히 연구하며 학회 발전에도 힘쓰셨다. 또한 의대 교육과정에 내분비학 통합교육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는 진취성과 실행력으로 이화의대가 국내 의학교육을 선도한 이래 이화의대에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저항 없이 받아들여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진취성이 이어져 의학교육에 관한 한 국내 최고임을 자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셨다. 학교 보직은 겸손하게 선배에게 양보하고 주임교수 이외에는 맡지 않으셨으나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교육자로 학교와 병원에서 수많은 제자를 기르시고 명예롭게 은퇴하셨다. 은퇴 후 잘 지내셨는데 헌신적인 부군께서 돌아가신 후 건강을 잃어 수년간 요양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시어 부부가 건강하게 함께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교훈도 남겨주셨다. 필자가 영국에서 연구년 중이어서 임종은 물론 장례식에도 참석을 못하여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었는데 올해 1주기를 맞아 ‘경난호 연구비’를 제정하고 선생님을 기리기로 했다. 제자 10명에게 일인당 100만 원씩 1000만 원을 모아 매년 젊은 연구자 한 명에게 지급하자고 협조를 구하니 모두 주저함 없이 선뜻, 오히려 자신에게 참여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하니 과연 제자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셨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 감사와 감동이었다. 선생님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가르침과 사랑에 존경과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이순남 이화여대 의대 교수
이화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혈액학』, 『호스피스완화의료』 등의 공저가 있으며,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와 한국임상암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국가암관리위원회 위원,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사, 한국필란트로피소사이어티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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