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게 풀어낸 여섯 서원의 이야기
담백하게 풀어낸 여섯 서원의 이야기
  • 정수환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8.10.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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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석실서원·도산서원·덕천서원·옥산서원·돈암서원·필암서원』(김학수 외 33명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8.9)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원 여섯 곳을 소개하는 새로운 책이 지난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출간되었다. 서원이라고 하면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따라 전국 47개 서원만 남겨두고 그 역사적 생명을 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교과서에는 그 배경을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히면서 시대적 변화를 거부했던 이른바 적폐의 산실이었다고 지목하고 있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서원이 전국 곳곳에서 중건되고 있는데, 이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이러한 복잡한 때에 여섯 서원을 다시 조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의아할 수도 있다.

역사적 제도와 인물은 그마다 시대적 소임이 있고 변화하는 세상에 함께 하지 못할 경우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는 치열했던 그 무엇에 대해 주목할 필요는 있다. 서원을 새삼스럽게 다시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 역사적 소임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사료라는 ‘생고기’를 요리하다

전국을 대상으로 여섯 개의 서원을 선정했다. 경기 남양주의 석실서원,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경남 산천의 덕천서원,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이다. 조선시대 지역의 지성과 문화를 대표하는 서원들을 고르고 골랐으며 이 중에는 훼철된 서원도 있다. 도서명을 각 서원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별도의 부제를 붙이지 않은 것은 독자들에게 선입견 없이 서원에 접근하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에서 상정한 독자는 국민 대중으로, 글은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썼다. 34명의 학계 전문가들이 고담준론에서 벗어나 기존의 연구 성과를 녹여 이야기를 구성했다. 필자들에게 강요된 집필의 규칙이 없다 보니 다양한 문장이 때로는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읽는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필자에게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합의된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적 사료를 잘 가공해서 이야기를 풀어 간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도산서원의 공간을 설명하면서 성호 이익의 『성호전집』을 인용하는 방식이다.

우리들은 말에서 내려 공손히 바깥문으로 들어갔다. 서쪽에 동몽재(童蒙齋)가 서당과 마주하고 있는데, 동몽재는 어린 선비가 학문을 익히는 곳이라고 한다. 다시 진덕문(進德門)으로 들어가니 좌우에 재(齋)가 있다. 동쪽은 박약재(博約齋)이고 서쪽은 홍의재(弘毅齋)이다. 가운데 남쪽을 향하여 강당을 두었는데 편액을 전교당(典敎堂)이라 하고, 당의 서쪽 방이 한존재(閑存齋)이다.(『도산서원』 11쪽 중에서)

서원의 공간을 오늘의 시점에서 이야기하기보다 300년 전 이익의 경험을 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료를 따라 읽다 보면 과거로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최근 범람하고 있는 대중서가 사료를 온갖 양념으로 포장하면서 그 본연의 맛을 놓치게 하는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생고기 상태의 사료를 있는 그대로 구워 독자들에게 성찬을 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엄숙함이 아닌 흥미로운 이야기

서원은 공부의 공간으로 치열한 이념과 정치 투쟁의 소굴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조선 후기 선비 문화를 주도했다는 역할이 있었고 그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석실서원은 19세기 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면서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이 유허에 사료를 활용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그 흔적을 되살려냈다. 정선이 남긴 그림과 양주의 지도 속에서 석실서원의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김창협이 노래한 시에서 서원의 풍취를 적출해 낸 뒤 18세기 중엽 황윤석의 일기에서 “서원 문밖 원향정(遠香亭)에서 쉬고 있다가 달이 뜰 무렵에 동강당(東講堂)에 들어가 유숙하였다.”와 같은 이야기를 엮어 그림으로 석실서원을 재현해 냈다.

도산서원은 이황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배움의 전당이었다. 그렇지만 배움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경영이 필요했다. 이황은 서당을 건립하는 단계에서부터 주위의 유력인사들 기부를 독려하여 기금을 조성했다. 그리고 서당을 계승한 서원도 각종 「전여기」나 토지와 노비 관련한 문서를 정확하게 인수인계하는 등 엄격한 경영을 유지했다. 이 점이 도산서원을 서원답게 유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면이었다.

옥산서원은 조선시대에 문헌의 보장처(寶藏處)였다. 또 한편으로 지역사회에서는 도서관의 기능을 수행했다. 서원은 양질의 장서를 기증, 구입 등의 방식으로 구비하고 출판하기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동의 자산인 귀중한 도서의 관리를 엄격히 하고자 도서대출 장부도 갖추고 있었다. 이른바 ‘옥산문고’의 확충과 관리, 그리고 지식인에 대한 봉사였다.

돈암서원에서는 예학가로서 엄격했던 김장생 외에도 그의 인간적인 일화를 만날 수 있고, 덕천서원에는 그곳을 다녀간 많은 순례자의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다. 필암서원에서는 김인후의 문학을 상징하고 있는 그의 시들을 읽을 수 있다.

지역문화를 담고 있는 서원만의 색깔

서원은 지역마다 존재하면서 지역의 공론과 문화의 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시대 역사의 다양성을 만들기도 했다.

석실서원은 조선 후기 지성사의 큰 물줄기를 형성한 이른바 실학과 혁신의 공간이었다. 석실의 선비들은 시대를 내다보는 실용의 학풍에 국제적 감각을 갖춘 도회 문화를 접목해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갔다. 석실서원은 서울학과 경화 문화의 ‘산실’ 이었다.

도산서원은 낙동강이 품었던 퇴계학의 요람이었다. 이황의 가르침을 계승한 도산서원은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공간이었다. 서원에서 철학적 자기를 깨닫고 여기에서 찾는 행복의 기술이야말로 이황이 남겨준 살가운 가르침이었다. 도산서원은 학문으로 빚고 예의로 다듬은 선비들의 공부의 전당이었다.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이 경의학(敬義學)을 강론했던 유훈을 계승했다. ‘학문은 실천을 통해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는 기치처럼 지식의 실천을 갈망한 참된 학문의 도량이었다. 조식이 그 후학들을 통해 길이 이어지기를 염원했던 참된 학문은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는 활인(活人)과 활세(活世)의 학문이었다. 덕천서원은 두류산의 정기가 가득했던 조선 경의학의 센터였다.

옥산서원은 조선 유학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선각자 회재 이언적의 유업을 간직하고 있다. 이언적이 추구했던 세상을 바로잡는 학문으로서의 실천을 계승했다. 꾸밈없이 참되고자 했던 학인들의 노력은 이언적이 수양 공간으로 활용했던 옥산서원 인근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문화를 이룩했다. 옥산서원은 옥산(玉山)처럼 맑은 영남 유학의 본산이었다.

돈암서원은 조선 후기 정치계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노론계 서원이다. 효와 가족 사랑을 가치로 내 걸었던 한 시대 사림의 종장이자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배향하고 있어 현대인에게도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도덕 원칙인 의(義)와 만물의 당연한 이치인 이(理)에 대한 탐구와 실천을 중시한 돈암서원의 강학 활동은 의리의 본연을 탐독하는 지식인들을 양성했다. 돈암서원은 예(禮)로운 개인 그리고 품격 높은 나라를 꿈꾸었던 선비들의 전당이었다.

필암서원은 16세기 조선 엘리트 하서 김인후의 가르침을 계승했다. 필암서원은 김인후가 강조했던 의리와 참된 사랑의 실천을 담았다. 서원에는 도학, 절의, 문장 그리고 인간애를 겸비했던 아름다운 사람의 숨결이 녹아 있다. 필암서원은 의리는 물론 도학을 겸비했던 호남학의 자부심이다.

이처럼 여섯 개의 서원은 각각 조선시대 지역 문화의 거점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이들 서원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한 손에 감겨서 서원을 방문하는 탐방객들에게 현장감을 제공해 줄 것이다. 현재 역사 유적 중에서 서원의 재방문율이 가장 낮다고 한다. 부디 이 책이 서원의 새로운 멋을 제공해 주길 기대한다. 아직 12개의 서원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정수환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선시대사 및 한국 농촌개발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대표 논문으로 「이재 黃胤錫의 錢文에 대한 관심, 고증 그리고 실험분석」, 저서로는 『조선후기 화폐유통과 경제생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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