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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기 영국 지식인들은 왜 기계를 예찬했는가. . . 인도 綿業과의 경쟁
산업혁명기 영국 지식인들은 왜 기계를 예찬했는가. . . 인도 綿業과의 경쟁
  • 이영석 광주대·외국어학부
  • 승인 2018.10.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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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역사_20세기 영국사 연구의 발자취 _ 2. 영국 산업혁명과 인도 수공업: 지구사적 시각에서 바라본 산업혁명

애국적인 기계 예찬론

앤드류 유어
앤드류 유어

앤드류 유어(Andrew Ure)나 에드워드 베인스(Edward Baines) 같은 산업혁명기 영국 지식인들은 18세기 인도 면직물과 영국산 직물의 경쟁에 대해 다소간 편견이 깃든 애국적 언어로 작업기, 그 중에서도 특히 방적기를 예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인스는 영국에서 면공업의 이점에 관해 언급하면서 풍부한 수력, 석탄 등의 연료, 철광석, 온화한 기후와 함께 부지런한 주민을 꼽는다. 영국은 유럽 대륙 가운데서도 가장 뒤늦게 면공업을 발전시키려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면직물 생산에서 다른 나라를 앞지를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유어도 인도산 면사(綿絲) 못지않게 질기면서도 가느다란 실을 뽑을 수 있는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의 수력방적기를 다음과 같이 극찬한다. 이 또한 애국적인 서사에 해당한다.

“대략 60여년전 더웬트(Derwent) 강 낭만적인 계곡, 크롬퍼드에 최초의 면방적용 수력방적기가 세워졌을 때, 인류는 영국 사회뿐만 아니라 대체로 세계의 운명 속에서도 신의 섭리에 의해 새로운 작업체계를 성취하도록 예정된, 예의 그 엄청난 혁명을 알지 못했다. 본질적으로 일정하지 않고 일시적인 근력을 쓰는 노력에 더 이상 비례하지 않고, 지칠줄을 모르는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 매우 빠르게 규칙적으로 추진되는 기계손과 기계팔의 작업을 인도하는 작업으로만 구성될 적에, 인간의 일이 얼마나 엄청나게 생산적인 것이 될 것인가는, 오직 아크라이트만이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명민함과 열렬한 말로 그것을 예견할 수 있는 대담함을 지녔을 뿐이었다.”
 
이런 애국적인 기계 예찬론이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칼 마르크스를 거쳐 영국 산업혁명의 정통해석으로 이어진 것이다. 기계 예찬론의 애국주의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계의 사용을 영국과 근대 세계사의 관계라는 맥락, 또는 지구사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인도산 면직물과 수공기술

에드워드 베인스
에드워드 베인스

1835년 베인스는 영국 면공업의 역사에 관한 다량의 정보를 바탕으로 면방적 분야에서 기계류가 처음 도입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기계류의 확산은 16세기 이래 국제무역망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17, 18세기에 아메리카의 백인 농장주들이 설탕, 담배, 면화 플랜테이션 노동력으로 아프리카 흑인노예를 받아들이면서, 영국 노예상인들이 노예에게 입힐 의류용으로 인도 면직물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인도산 직물은 영국의 섬유류에 비해 가격이 싼 대신에 품질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이후 인도 면직물은 유럽인 사이에서도 매우 인기를 끌었다. 인도산 직물에 대한 유럽인의 열광에 대해 베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도산 머슬린, 진츠, 캘리코가 아름답고 값도 싸기 때문에 유럽 각국의 제조업자들이 인도 면직물과 경쟁으로 파멸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이들 면직물은 부녀자와 어린이 의상용은 물론, 커튼과 가구용으로도 매우 인기가 있었다. 심지어 질 낮은 캘리코 직물도 외투의 안감으로 쓰였다.”

1690년대 이후 머슬린, 캘리코, 진츠 등 인도산 직물은 더욱 더 대중화되었다. 영국에서 생산된 면사와 직물은 인도 면직물과 경쟁할 만큼 품질이 좋지 않았다. 인도 면직물이 홍수처럼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제 영국의 전통산업인 모직물공업 종사자들이 공공연하게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1678년에 인도산 직물 수입을 반대하는 최초의 항의가 나타났다. 맨체스터 인근 국내산업의 보호를 목적으로 인도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대규모 항의 이후에 의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인도산 직물에 물품세를 부과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1712년 의회는 수입 면직물(claico)에 대해 1평방 야드 당 3펜스의 물품세를 부과하고 2년 후에 6펜스로 인상한다.

18세기 벵골산 고급 면직물 의상을 차려 입은 인도 다카의 여성
18세기 벵골산 고급 면직물 의상을 차려 입은 인도 다카의 여성

 

그러나 이 같은 법령은 실효성이 없었다. 금지입법만으로 서민층 사이의 면직물 선호경향에 제동을 걸 수 없었다. 영국의 경우 다른 나라로 우회해 유입되는 면직물의 양만 증가했다. 역설적으로 이들 입법은 유럽 각국의 국내 섬유제조업에 자극을 주었다. 제조업자들은 인도 면직물과 경쟁하기 위해 가격, 디자인, 색상 면에서 이전보다 좀 더 향상된 제품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의 제조업자들은 인도의 수공기술에 주목을 기울였지만 상당 기간 인도산 직물에 필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그 돌파구를 발견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궁극적인 귀결은 방적분야의 기계를 발명하는 것이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산업혁명기의 지식인들이 왜 그렇게 방적기에 열광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 인도에서 구자라트(Gujarat) 지역은 특히 유럽에 수출할 면직물을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구자라트의 주된 수출품은 면업분야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그 당시 인도의 면직물 생산 조직은 유럽의 선대제(putting-out system)와 유사했다. 방적과 직조는 개별 농가의 부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농촌사회의 소수 중매인들이 그들에게 생산 원료를 공급하고 선대(先貸)했다. 염색과 디자인은 거대 중매상이 직접 경영하는 작업장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졌다. 

1613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산 면직물을 수입해 처음으로 경매에 내놓은 이래, 인도 면직물이 영국산 모직물과 경쟁하게 되었다. 인도 면직물이 영국의 아마포(linen)보다도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1684년 동인도회사가 수입한 면직물은 150만 필에 이를 정도였다. 차두리(K. N. Chaudhuri)에 따르면, 인도는 영국이 방적기와 역직기를 이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면직물 생산국이었다. 인도산 면제품은 오랫동안 아시아  및 아프리카 해외시장을 지배했으며, 18세기에 이르면 유럽인 또한 인도산 직물에 매료당했다. 베인스는 인도 대부분 지역에서 면화가 널리 재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18세기 면제품 수출분포

“인도의 면직물 제조는 일부 커다란 읍락 또는 한두 지역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면업은 어디서나 이루어진다. 면화 재배는 식량 생산만큼이나 일반적이다. 어느 곳에서나 부녀자는 실 뽑는 데 시간을 보낸다. 모든 마을마다 직조공이 있으며, 주민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백색면포를 공급하는 것이다.”
  
인도 가내수공업자들은 대부분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실을 뽑고 직물을 짰기 때문에 면업 분야에는 대자본이나 작업장 설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인도의 가내노동자들은 작고 조야한 맷돌이나 조면(繰綿)도구를 이용해 원면에서 씨앗을 떼어냈는데, 이 작업은 주로 부녀자의 일이었다. 손 맷돌은 두 개의 목제 롤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쪽에서 솜을 집어넣고 회전하는 롤러를 통해 빼냈다. 다음 작업은 원면을 두드려 티끌과 옹이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 다음에 성인노동자들이 방적과 직조작업에 매달렸다. 인도 가내수공업자들은 원시적인 도구와 설비를 가지고도 질 좋은 면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인도 면직물은 유럽산 직물보다 훨씬 더 좋은 품질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인도의 부녀자들이 그들의 손가락기술을 활용해 가늘고 질긴 실을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인스는 자신의 책 여러 곳에서 부녀자들의 손기술에 찬탄을 보낸다.

“아무런 소면(梳綿, carding) 과정도 없이 면화를 잘 손질하면, 여성이 실을 뽑는다. 조잡한 면사는 한 가닥만 잣는 무거운 물레를 돌려 뽑아내고, 좀 더 질 좋은 실은 금속 방추를 사용해 뽑아낸다. 때로는 실톳대를 이용하기도 한다. 손가락 촉감이 아주 민감하고 섬세한 인도여성들은 이 단순한 방식만으로 기계로 잣는 유럽산 면사 어느 것보다도 더 질이 좋고 훨씬 더 질긴 면사를 생산하는 것이다.”

“부녀자들은 직물 짜는 데 쓸 실을 뽑은 다음, 실을 남성에게 건넨다. 베틀에 걸 수 있도록 섬세하게 손끝으로 다듬는다. 유럽 사람들의 거칠고 투박한 손가락으로는 인도 노동자가 머슬린 한필을 짜는 데 사용한 도구와 장치만으로는 조잡한 천(canvas) 한필도 거의 만들 수 없다. 독특한 특색이 있는 직물은 모두가 특정한 지역의 생산물이며, 그 지역에서 그 직물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아마 여러 세기에 걸쳐 전수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관행이 완벽한 직물 제조에 이바지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인도 면직물에 대한 선호도는 질기고 가느다란 면사, 부드러운 면포의 질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제조업자들이 따라갈 수 없는 염색기술과 뛰어난 디자인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이 면직물의 경쟁력은 수공기술 이외에도 잘 발달된 농업과 관련된다. 인도 농업은 매우 생산력이 높아서 농산물 가격이 유럽의 경우보다 더 낮았다. 적어도 18세기까지 인도는 농업생산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노동 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으며, 면업분야의 경쟁력은 이런 유리한 조건의 결과이기도 했다.


방적기의 출현: 인도 면(綿)업과의 경쟁

영국 산업혁명기의 지식인들, 특히 앤드류 유어는 노동자의 저항에 대처하기 위해 자본의 노동과정 통제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노동자의 손기술이 생산에 효율적이지 않다고 결론 내린 후에, 공장제도에서 노동자의 수공에 의한 생산방식을 버리고 기계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어가 동력기나 증기기관보다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원료를 상품으로 바꾸는 기계”를 더 강조했음을 의미한다. 왜 그는 노동자들을 비효율적인 수단으로 생각했을까? 공장제도의 원대한 목적은 자본과 과학의 결합을 통해 노동자의 작업을 절감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해, 공장제도의 원리는 숙련노동자를 정확한 기계 메커니즘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그의 책에서 유어는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것에 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새뮤얼 크롬프턴의 뮬  방적기
새뮤얼 크롬프턴의 뮬 방적기

“공장, 즉 매뉴팩처(manufacture)는 언어의 변천에서 그 본래 의미와 정반대의 뜻을 갖게 된 단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제 사람의 손기술을 거의 또는 전혀 받지 않고 기계로만 만든 온갖 광범한 기술적 제조를 가리키며 그에 따라 가장 완벽한 매뉴팩처라면 손노동이 아주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남성의 작업 또는 훈련된 장인에 해당하는 일반 노동자의 작업을 여성과 아동의 노동으로 대체함으로써 인간 노동을 대신하거나 그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기계 개량의 항구적인 목적이자 경향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인도 면직물은 모직물시장의 수요를 잠식했다. 오랫동안 영국 국내 노동자들은 인도산 면사 못지않게 질 높은 실을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770년대 후반에 아크라이트의 수력방적기가 출현하면서 비로소 인도 면사와 경쟁할 수 있는 가늘고 질긴 실을 뽑아낼 수 있었다. 아크라이트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예찬은 바로 영국이 이제 그의 발명에 힘입어 경쟁력 있는 면직물을 생산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다. 영국 노동자들의 수공기술에 대한 동시대 지식인들의 실망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 하나는 작업기에 대한 과대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유어는 그 시대의 추세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그러나 방적기가 새로운 동력기, 즉 증기기관의 도움을 받을 경우에만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산업혁명은 그 이전시대의 기계화와 구별된다. 유어는 증기기관 그 자체보다도 방적기, 특히 자동 뮬 방적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후대의 지식인들 또한 자동 뮬 방적기에 관한 유어의 견해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도 유어의 해석을 받아들여 기계류 가운데서도 자동 뮬 방적기, 그리고 공장 제도를 강조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담론이 격변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요컨대, 산업화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태도는 인도산 직물, 넓게 말해서 인도에 대한 그들의 인식 및 경쟁의식과 깊이 관련된다. 
 

 

이영석 광주대·외국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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