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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아침 창을 열면서
가을아침 창을 열면서
  • 박순진 편집위원/대구대 경찰행정학
  • 승인 2018.10.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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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위원/대구대 경찰행정학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제법 바람이 차다. 지난여름 그렇게 무더웠는데, 개강 즈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더위가 물러가고 추석이 되니 계절은 어김없이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연구실로 출근했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하늘은 한층 높고 산색도 가을 채비를 하고 있다. 학교 초입에 심어진 은행나무는 잘 익은 은행을 연신 떨궈 낸다. 잠시 짬을 내어 차 한 잔을 들고 연구실 창을 열어본다. 신선한 바람을 한껏 들이킨다. 

참으로 오랜 만에 느끼는 여유다. 이런저런 세상사에 늘 쫓겨 지내는 것이 이즈음의 일상이었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해오던 익숙한 강의지만 매번 준비에 바쁘고 막상 강의를 하자면 살펴볼 것이 또 있다. 매년 수강생이 달라지지만 작년에 하던 그대로 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매일 새로운 연구가 쏟아져 나온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시민들의 주장이 활발하니 그에 따라 달라지는 법령과 정책도 살펴보기 바쁘다.

강의 내용도 그렇거니와 강의하는 방식도 돌이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교육자로 대학에 봉직하는 교수 가운데 제대로 된 교수법을 교육받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연구하는 일과 교육을 잘하는 일이 서로 무관하지 않지만 막상 해보면 다분히 독립적인 능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마땅한 공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 혁신이 화두가 된지 오래다. 작금의 우리 대학은 연구뿐만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데 있어서도 교수의 혁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여년 사이 대학마다 새로운 교수법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전담조직이 설치되고 이에 대한 교수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한 것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 대학에서 눈여겨 볼 신기한 변화라 할 만하다. 초기에는 막연한 거부감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교수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긍정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서도 새 학기 들어 찾아가는 교수법 강의가 있다는 내용이 공지되었기에 참석해보았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진행되는 강의가 인상적이었으며 강의실에서 곧바로 활용할 만한 내용도 많아 유익했다.

가끔 몇 사람이 모이면 예전 선배 교수들의 다소 낭만적이던 생활을 추억삼아 말하곤 한다. 일부에서는 교수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진다고들 한다. 특히 더 많은 연구가 더 우수한 강의를 노골적으로 요구받는 신진 교수들의 노력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연구와 강의를 위한 교수들의 노력이 더 많은 지원으로 든든하게 뒷받침되면 대학 교육이 크게 발전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더 많이 연구하고 더 잘 가르치기를 원하면서도 이를 위한 지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대학의 재정 위기가 대학의 발전 여력을 소진시키고 있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각종 복지제도와 복리후생은 우선적으로 조정되고 있으며 처우 개선은커녕 보수 삭감이 공공연히 논의되는 지경이다. 연구 지원이 크게 줄어들면서 대학의 연구역량과 학문 재생산 기반이 무너지는 징후가 뚜렷하다. 저마다의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불합리하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위기에 처한 대학을 이해하기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는 부당한 처사에 자존심이 상해 드러내놓고 말하기 꺼려하는 사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문득 가을을 맞이하니 지난여름을 돌이켜보게 된다. 금년 상반기 동안 우리 대학 사회는 유난히 일도 많고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전국의 모든 대학이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그런 시간을 지나오면서 대학이 좋아졌는가 묻는다면 누가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가을은 금방 지나가고 곧 긴 겨울이 닥쳐올 것이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는데 오늘 아침에 잠시나마 이 가을의 좋은 풍경을 즐기고 싶다.

 

박순진 편집위원/대구대 경찰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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